주말에 노션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부터 시작한 이유
- 12 Dec, 2025
토요일 오전 11시, 노션 페이지
커피 만들었다. 세 번째다.
노트북 켰다. VS Code 아니고 Notion.
뭔가 이상하다. 6년 만에 처음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코드부터 안 짠다.
‘사용자 페르소나’라고 제목 쓴다. 타이핑이 어색하다.
import React 치던 손이 ‘30대 직장인 남성’을 친다.

아내가 거실에서 본다.
“오늘 코딩 안 해?”
“응. 기획한다.”
”…진짜 전환하려나 보네.”
나도 놀랐다. 진심인가 보다.
왜 이걸 하냐면
월요일에 있었다. 회의가.
주니어가 물었다. “이번 기능 어떻게 만들까요?”
나는 바로 답했다. “일단 API 구조 짜고…”
옆에서 기획자가 말했다. “잠깐. 사용자가 왜 이 기능을 원하는지부터 정리해요.”
정적.
나는 6년 동안 ‘어떻게’만 생각했다. ‘왜’는 생각 안 했다.
그날 밤 검색했다. “프로덕트 기획 프로세스”.
첫 페이지에 나왔다. “문제 정의 → 페르소나 → 유저 스토리 → 와이어프레임”.
코드는 맨 끝이었다.

충격받았다. 6년 동안 맨 끝만 했다.
이제 처음부터 하고 싶다.
노션 템플릿 찾기
검색했다. “Product planning template Notion”.
100개 넘게 나왔다.
30분 동안 비교했다. PRD, User Story Map, Feature Roadmap.
개발할 땐 안 그랬다. 그냥 Django 켜고 models.py 짰다.
지금은 다르다. 기획 템플릿 고르는 게 재밌다.
하나 골랐다. “Lean Product Planning Kit”.
49달러. 결제했다.
개발 강의는 무료만 봤는데. 변했다.
템플릿 복사했다. 페이지 12개다.
- Problem Statement
- Target User
- User Journey Map
- Feature Prioritization
- Success Metrics
- Technical Feasibility (이건 내가 잘하지)
빈칸 채우기 시작했다.
오후 1시였다. 점심 안 먹었다.
첫 페이지: Problem Statement
“해결하려는 문제가 뭔가?”
30분 동안 한 문장 못 썼다.
사이드 프로젝트 아이디어는 있었다. “개발자 커뮤니티 플랫폼”.
근데 왜 필요한지는 몰랐다.
‘그냥 만들면 안 돼?’
안 된다. 기획은 ‘왜’부터다.

GPT한테 물어봤다.
“개발자 커뮤니티가 필요한 이유를 분석해줘.”
3초 만에 답 왔다. 5개 포인트.
복붙했다. 그러다 멈췄다.
‘이거 내 생각 아니잖아.’
지웠다. 전부.
다시 썼다. 내 경험으로.
“Stack Overflow는 AI 시대에 답 없다. 인간의 맥락이 필요하다.”
한 시간 걸렸다. 한 문장에.
근데 이게 내 문장이다.
페르소나 만들기
“김개발, 29세, 주니어 백엔드 개발자.”
사진 넣고 싶었다. 미드저니 켰다.
프롬프트 짰다. “young korean developer, tired, laptop, coffee”.
4번 돌렸다. 마음에 안 들었다.
디테일 추가했다. “wearing hoodie, messy hair, dark circles, realistic”.
나왔다. 나 같았다.
노션에 붙였다.
그 아래 적었다.
“고민: AI가 코드 짜면 나는 뭐 하지?” “니즈: 같은 고민 하는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다.” “행동: 퇴근 후 커뮤니티 검색, 근데 원하는 곳 없음.”
적다 보니 알았다. 이게 나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 내가 필요한 거다.
개발할 땐 몰랐다. 기능만 생각했으니까.
기획하니까 보인다. 사람이.
오후 4시, 와이어프레임
피그마 켰다. 처음 써본 건 3개월 전이다.
유튜브 보고 배웠다. “피그마 기초 30분 완성”.
사각형 그렸다. 헤더다.
버튼 만들었다. “로그인”.
레이아웃 잡았다. 3단 구조.
1시간 만에 메인 페이지 나왔다.
예전엔 이걸 코드로 바로 짰다. Bootstrap 긁어서.
지금은 그림부터 그린다.
신기하다. 코드 없이도 뭔가 만들어진다.
아내가 봤다.
“오, 괜찮은데? 이거 진짜 만들 거야?”
“응. 근데 코딩은 나중에.”
”…너 맞아?”
나도 모르겠다.
저녁 7시, 기술 검토
개발자 습관이 나왔다.
“Technical Feasibility” 페이지 열었다.
- Backend: FastAPI (내가 제일 잘함)
- Frontend: React (할 줄 암)
- DB: PostgreSQL
- Infra: AWS (회사에서 써봄)
적다가 멈췄다.
‘이거 지금 중요한가?’
중요하긴 하다. 근데 첫 번째는 아니다.
첫 번째는 “이게 정말 필요한가?”였다.
섹션 순서 바꿨다. Technical Feasibility를 맨 뒤로.
Problem Statement를 맨 앞으로.
저장했다.
마음이 편했다.
밤 10시, 회고
8개 페이지 채웠다.
코드는 한 줄도 안 짰다.
근데 뭔가 만들어졌다. 프로덕트의 윤곽이.
예전 사이드 프로젝트는 달랐다.
models.py 짜고, API 만들고, 프론트 붙이고.
3일 만들고 일주일 방치하고 삭제.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다.
‘왜’가 없었으니까. 그냥 ‘만들기’만 했으니까.
이번엔 다르다.
노션에 12페이지 기획서가 있다.
아직 코드는 없다. 근데 확신은 있다.
이거 만들어야 한다고.
누가 필요로 한다고.
나라도 필요로 한다고.
일요일 아침, 변명
사실 인정하기 싫었다.
‘기획’이 재밌다는 거.
개발자는 코딩이 제일 재밌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토요일 8시간 동안 제일 재밌었던 순간은 뭐였나.
페르소나 쓸 때였다. 문제 정의할 때였다.
코드 칠 때가 아니었다.
변명하고 싶다. “아직 개발이 좋아. 이건 그냥 새로워서 재밌는 거야.”
근데 거짓말이다.
6개월 전부터 알았다. 코딩보다 기획이 재밌다는 거.
인정 안 했을 뿐이다.
6년 했는데 버리기 아깝잖아.
근데 버리는 게 아니다. 쌓는 거다.
개발 6년 + 기획 경험 = 더 나은 PM.
스스로 설득했다.
진심인지 합리화인지는 모르겠다.
노션 vs GitHub
예전 사이드 프로젝트는 GitHub부터였다.
Repository 만들고, README 쓰고, 첫 커밋.
이번엔 Notion이 먼저다.
GitHub는 아직 안 만들었다.
만들 거다. 언젠가.
근데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기획이다. 문서다. 생각이다.
컴퓨터 폴더 봤다.
“Projects” 폴더에 30개 있다.
다 React나 Django 프로젝트다.
README 보면 다 “TODO: Add description”이다.
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엔 다르다.
Notion에 “Why this project exists” 섹션이 있다.
500자 채웠다.
이게 README보다 먼저다.
코드보다 먼저다.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노션 켰다.
기획서 읽었다. 내가 쓴 거.
뿌듯했다. 이상했다.
옆 사람이 봤을 거다. 노션 보고 웃는 이상한 사람.
회사 도착했다.
VS Code 켰다. PR 리뷰 3개.
코드 봤다. 주니어가 짠 거.
“이거 왜 이렇게 짰어요?”
주니어가 답했다. “GPT가 이렇게 하래서요.”
나는 물었다. “근데 이게 사용자한테 어떤 경험이야?”
주니어가 멈칫했다.
팀장이 봤다. 나를.
“한기획 씨, 요즘 관점이 바뀌었네요?”
”…네?”
“좋은 거예요. PM 마인드.”
가슴이 뛰었다.
인정받았다. 아직 전환도 안 했는데.
이유
왜 이제 기획부터 시작하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코드는 AI가 짠다. 이미.
기획은 아직 사람이 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사용자를 이해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이건 GPT가 못 한다. 아직은.
5년 뒤는? 모른다.
근데 개발보다는 늦을 거다.
그리고 솔직히.
기획이 재밌다. 코딩보다.
만드는 것보다 정의하는 게 재밌다.
“어떻게”보다 “왜”가 재밌다.
인정한다.
나는 개발자에서 기획자로 가고 싶다.
이 노션 페이지가 신호탄이다.
토요일 8시간, 코드 0줄, 노션 12페이지. 이게 내 새로운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