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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 04 Dec, 2025
지금 이직하면 연봉이 깎일 텐데, 5년 뒤 개발자 연봉은?
지금 이직하면 연봉이 깎일 텐데, 5년 뒤 개발자 연봉은? 퇴근길에 계산기를 켰다 지하철 안이다. 앉아서 폰 계산기를 켰다. 6200만원. 지금 연봉이다. PM으로 가면? 4500만원? 5000만원? 1700만원 차이다. 근데 5년 뒤는? 옆자리 사람이 쳐다봤다. 계산기에 숫자만 계속 쳐대고 있었나 보다. 폰을 내렸다.집에 와서 노트북을 켰다. 엑셀을 열었다. 시트 이름: "5년 계산.xlsx" 두 개 열을 만들었다.개발자 유지 PM 전환숫자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개발자 시나리오 2024년: 6200만원 (현재) 2025년: 6500만원 (올해 연봉 협상 예상치) 2026년: ? 여기서 막혔다. 상승할까? 정체될까? 하락할까? 작년에 채용 공고 100개 정도 봤다. 시니어 개발자. 6000~8000만원대. 작년이랑 별 차이 없었다. 근데 올해는? 공고를 열어봤다. 원티드, 로켓펀치, 점핏. 시니어 백엔드 개발자. 6000~7500만원. 작년이랑 비슷하다. 상한선이 약간 낮아졌나? 댓글을 봤다. "요즘 신입도 안 뽑는데", "우리 회사 동결", "주니어 짤림".블라인드를 열었다. "개발자 연봉 전망" 검색. 스레드를 10개쯤 읽었다. "GPT 나온 뒤로 주니어 TO 사라짐" "우리 회사 코파일럿 도입하면서 헤드카운트 축소" "시니어는 괜찮지 않아요?" "시니어도 3년 뒤엔 모름" 괜찮다는 댓글 찾았다. "시니어는 아키텍처 짜니까 필요함" "AI는 못 짜는 거 많음" "개발자 수요는 계속 늘어남"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근데 6개월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주니어가 GPT로 내 작업 하루 만에 끝내기 전까지는. 엑셀로 돌아갔다. 2026년: 6500만원 (동결 가정) 2027년: 6500만원 (유지) 2028년: 6000만원 (하락 시작?) 2029년: 5500만원 (...) 너무 비관적인가. 지웠다. 다시 썼다. 2026년: 6800만원 (약간 상승) 2027년: 7000만원 2028년: 7000만원 (정체) 2029년: 7000만원 5년 뒤 7000만원. 믿고 싶은 시나리오다. 근데 믿어지나? PM 시나리오 PM으로 전환하면. 경력 0년 취급이다. 개발 경력? 인정 안 해준다. 공고 보면 다 그렇다. "PM 경력 3년 이상" "프로덕트 오너 경험자 우대" 내가 넣을 수 있는 공고. "주니어 PM", "경력 무관". 연봉을 검색했다. "주니어 PM 연봉". 4000~5500만원. 1700만원 깎인다. 최소. 아내한테 말해야 하나. "여보, 연봉 1700 깎이는데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다. 나도 괜찮지 않다. 근데 5년 뒤는? 엑셀에 썼다. 2024년: 4800만원 (주니어 PM 시작) 2025년: 5200만원 2026년: 5800만원 2027년: 6500만원 (미드레벨) 2028년: 7200만원 2029년: 8000만원 (시니어) 5년 뒤 8000만원.희망적이다. 너무 희망적인가? PM 커뮤니티 들어갔다. "PM 연봉 상승률" 검색. 스레드를 읽었다. "3년 차에 7000 받아요" "5년 차 CPO 9500" "스타트업이면 스톡옵션도" 그래. PM은 상승 곡선이 가파르다. 천장도 높다. 근데 내가 PM을 잘할까? 잘하면 8000만원. 못 하면? 그냥 6000만원대에서 정체. 개발자랑 똑같다. 아니, 더 낮다. 개발 커리어는 버렸으니까. 계산기를 다시 켰다. 교차점을 찾다 두 시나리오를 겹쳐봤다. 개발자 유지: 5년 뒤 7000만원 PM 전환: 5년 뒤 8000만원 1000만원 차이. 근데 중간 과정을 보면. 1년 차: -1400만원 (PM이 낮음) 2년 차: -1300만원 3년 차: -700만원 4년 차: -300만원 5년 차: +1000만원 (PM이 높음) 4년 차에 역전된다. 그 전까지는 계속 손해다. 누적 손실을 계산했다. 5년간 개발자 총액: 3억 3500만원 5년간 PM 총액: 3억 1500만원 2000만원 손해다. 5년 동안. 근데 6년 차부터는? PM이 더 빠르게 오른다. 그래프가 그렇다. 희망적으로 그리면. 10년 뒤를 계산해봤다. 개발자: 7000만원 (정체) PM: 1억? 1억 2000? CPO까지 가면 그렇다. 안 가면? 지웠다. 변수: AI 이 계산엔 AI가 없다. AI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개발자 수요. 줄어든다. 확실하다. 주니어부터 시작해서. 주니어가 안 뽑히면 3년 뒤 주니어가 없다. 시니어만 남는다. 시니어들끼리 경쟁. 연봉 협상력 떨어진다. 그럼 내 7000만원 시나리오는? 6000만원으로 내려간다. 5500만원일 수도. PM은? AI가 기획을 할까? 못 한다. 아직은. GPT한테 물어봤다. "너 PRD 써줘". 쓴다. 근데 쓰레기다. 맥락이 없다. 사용자를 모른다. PM은 사람을 만나고, 데이터를 보고, 의사결정을 한다. AI는 그걸 못 한다. 아직은. 3년 뒤에도 못 할 것 같다. 5년 뒤는? 모르겠다. 근데 개발보다는 오래 걸린다. 계산기에 AI 변수를 넣었다. 개발자 (AI 고려): 2029년: 5500만원 PM (AI 고려): 2029년: 7500만원 2000만원 차이. 이게 맞나? 모르겠다. 근데 이게 내 베팅이다. 다른 사람 계산 블로그를 찾았다. "개발자에서 PM 전환". 5개 정도 읽었다. 한 명은 연봉 2000만원 깎이고 시작했다. 3년 뒤 원래 연봉 회복. 5년 뒤 1.5배. 한 명은 실패했다. PM 2년 하다가 개발자로 복귀. "내 적성이 아니었다". 한 명은 연봉은 비슷한데 만족도가 올랐다. "코딩보다 재밌다". 숫자는 다 다르다. 케바케다. 내 케이스는? 개발 6년 차. 코딩 실력 중상. PM 경력 0년. 열정은 있음. 성공 확률 몇 프로? 70%? 아니면 50%? 모르겠다. 로또는 아니다. 근데 확실한 것도 아니다. 엑셀에 시나리오를 하나 더 추가했다. PM 실패 케이스: 2029년: 5500만원 (PM으로 정체) 개발자 유지보다 낮다. 최악이다. 확률을 곱했다. PM 성공 (70%): 7500만원 PM 실패 (30%): 5500만원 기댓값: 6900만원 개발자 유지: 5500만원 기댓값으로는 PM이 낫다. 근데 30% 확률로 최악이다. 나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나? 집값 계산 아내랑 집을 사려고 한다. 3년 뒤쯤. 대출을 받으려면 소득이 있어야 한다. PM 전환하면 1년 차에 소득 감소. 대출 한도도 준다. 3억짜리 집. 대출 2억 필요. 개발자 연봉 6500만원: 대출 한도 2억 2000만원 PM 연봉 5000만원: 대출 한도 1억 8000만원 4000만원 차이. 집을 늦춰야 한다. 아니면 포기하거나. 아내한테 말했다. "PM 전환하면 집 늦춰질 수도 있어". "괜찮아. 천천히 하자". 고맙다. 근데 미안하다. 계산기를 다시 켰다. 집을 2년 늦추면. 그동안 전세 이자. 월 60만원. 2년이면 1440만원. 이것도 비용이다. PM 전환 총비용:연봉 감소 누적: 2000만원 집 구매 지연 비용: 1440만원 합계: 3440만원3440만원 투자해서 5년 뒤 더 높은 연봉. 회수 가능한가? 가능하다. 10년 보면. 근데 실패하면 3440만원 날린다. 나이 계산 지금 32살이다. PM 전환하면 33살에 주니어 PM. 35살에 미드레벨. 37살에 시니어. 37살 시니어 PM. 괜찮다. 개발자로 가면? 37살 시니어 개발자. 8년 차. 근데 37살 개발자 시장은? 지금 37살 개발자들 본다. 회사에 몇 명 있다. 연봉 7000~8000만원대. 팀장급. 근데 5년 뒤 37살 개발자는? AI 시대의. 모르겠다. 그때 가봐야 안다. 37살 PM은? CPO 트랙 타면 1억대. 숫자가 더 크다. 가능성이.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 전환해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주니어 시작이 어렵다. 35살에 주니어 PM? 힘들다. 32살은 ギリギリ괜찮다. 후회 계산 전환 안 하고 5년 뒤. 개발자로 7000만원 받는다. 안정적이다. 근데 매일 코파일럿 쓰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생각한다. 후회할 것 같다. '그때 전환할 걸'. 전환하고 5년 뒤. 실패해서 5500만원 받는다. 후회할 것 같다. '개발자 할 걸'. 어느 쪽 후회가 더 클까. 안 한 후회가 더 크다. 보통은. 시도하고 실패한 건 받아들인다. 안 하고 후회하는 건 평생 간다. 나는 어떨까? 모르겠다. 근데 요즘 회사 오면 재미가 없다. 코딩이 재미없다. GPT한테 시키고 검수하는 게 재미있나? 아니다. 기획 문서 쓸 때가 제일 재밌다. 사용자 생각하고, 플로우 짜고. 그럼 답은 나온 거 아닌가? 근데 돈이다. 3440만원이다. 최종 계산 노트에 정리했다. 개발자 유지:안정적 6500만원 5년 뒤 불확실 재미 없음 후회 가능성 높음PM 전환:1700만원 감소 5년 뒤 높은 상승 가능성 재미 있을 것 같음 실패 리스크 30%숫자만 보면 애매하다. 근데 숫자가 다가 아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 출근하기 싫다' vs '오늘 뭐 하지?' 이게 5년이면 1825일이다. 하루에 만원씩 차이 나면 1825만원이다. 행복도 계산하면 PM이 이긴다. 내 경우엔. 근데 확실한가? 확실하진 않다. 결론 대신 엑셀을 닫았다. 계산기를 닫았다. 답은 안 나온다. 숫자로는. 근데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 안 하면 평생 궁금해한다. '그때 PM 했으면 어땠을까?' 그 궁금증이 3440만원보다 비싸다. 다음 주에 이력서 넣는다. PM 공고 10개. 서류 떨어지면? 다시 10개 넣는다. 일단 시작한다. 계산은 여기까지다.숫자로 안 풀리면 그냥 해봐야 한다. 후회는 안 한 게 더 오래 남는다.
- 02 Dec, 2025
회의 때 기획자를 보면서 '저거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생각한 횟수
회의실에서 깨달은 것들 출근했다. 월요일 아침 10시. 데일리 회의. 개발팀이 만든 신규 기능에 대해 기획팀이 설명 중이었다. 로그인 플로우 개선 건이었나. 담당 기획자가 화면 흐름을 설명하는데, 첫 슬라이드에서 뭔가 이상했다. "어? 저건 사용자가 뒤로 가기를 누르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기획자가 한 박자 쉬었다. "아... 그건..." 그 다음은 개발 리드가 설명했다. 좋다.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이런 생각을 처음 한 건 3개월 전이었나. 지금은 거의 매 회의다.숫자로 세어본 것 지난주 회의만 해도 5번이었다. 5번. 월요일 스프린트 계획 회의에선 "이 기능 순서 이상한데요" 했고, 수요일 사용자 테스트 결과 리뷰에선 로그 분석으로 기획자 가설이 틀렸다는 걸 지적했다. 목요일 신입 기획자가 발표한 온보딩 플로우는 5초 만에 3개 버그를 찾았다. 사용자 관점으로 생각하면 명백했다. 첫 화면에서 필수 정보 입력을 했는데 다시 돌아오면 초기화된다? 나쁜 UX다. 그때마다 나는 발언했다. 자연스럽게. "저기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사용자 입장에선 이게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데이터로 봤을 때 이 가설은 검증이 필요해 보여요". 매번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생각했다. 나 지금 기획하고 있는 거 아니야? 지난달부터 슬랙에서 자발적으로 프로젝트 기획 문서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어떨까요?" 형식으로. 팀장이 대게 좋아했다. 나는 개발자인데 기획 문서를 쓰고, 그걸 읽고 받아들이는 것. 경계가 흐릿해졌다. 명확히는 이랬다. 코딩과 기획은 다른 근육인데, 요즘 난 기획 근육을 쓸 때가 더 재밌다는 거다. 세 가지 신호 신호 1: 로직 오류를 찾고 있다 회의 중에 발표되는 기능 플로우를 보면, 내 뇌는 자동으로 엣지 케이스를 찾는다. 사용자가 이걸 누르면? 인터넷이 끊기면? 중복 클릭하면? 뒤로 가기 버튼이라도 눌리면? 개발자로서 6년간 길들여진 습관이다. 모든 시나리오를 대비하는. 그런데 회의실에서 이걸 꺼내면, 기획자들이 못 본 구멍이 보인다. 그리고 그걸 지적할 때 뭔가 쾌감이 있다. 코드 리뷰할 때는 있는 쾌감. 근데 좀 다르다. 사람들이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다. 코드는 잘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 기획은 논리가 일관되는 게 중요하다. 둘 다 좋지만, 후자가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는 느낌이다. 신호 2: 사용자 흐름을 먼저 본다 기획 발표 자료를 보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UI 플로우다. 누가 어떻게 이 기능을 쓸 텐데, 그 사람이 느낄 경험이 좋을까? 라는 질문. 예전엔 이런 생각을 안 했다. 개발자일 때는 "이 로직이 구현 가능한가"가 먼저였다. 지금은 "이 흐름이 자연스러운가"가 먼저다. 와이어프레임을 보면서 "여기 한 스텝 더 줄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다. 피그마를 열어서 내가 직접 고쳐본다. 그리고 슬랙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보낸다. 기획자 둘 다 좋다고 한다. 난 그걸 할 때 재밌다. 코드 짤 때보다 훨씬. 신호 3: 기획 이직공고를 본다 요즘 하루 종일 일을 하는데, 틈날 때마다 PM 이직 사이트를 본다. 연봉은? 요구 자격은? "기획 경력 3년 이상 또는 유사 경험". 여기서 뜨한다. 나는 유사 경험이 있나? 기술 회사에서 6년간 개발했다. 제품을 안다. 사용자 데이터도 본다. 스프린트 계획도 참여한다. 개발 팀장이 내 기획 문서를 "거의 PM 수준"이라고 했다. 그럼 될 거 아닐까? 서류를 넣어봤다. 4개 회사. 모두 탈락. 이유는 "보직 경험 부족". 신입처럼 봤다는 뜻이다. 그럼 내부에서 전환할까? 팀장한테 "제가 기획 역할 좀 더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봤다. "그럼 개발은?"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나요?" "음... 일단 현직무를 잘 하고."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아, 나 이 회사에선 절대 기획으로 안 가겠네.회의실에서 5번 본 것들 발표 1: 온보딩 플로우 (목요일) 신입 기획자가 만든 건데, 첫 화면은 휴대폰 번호 입력이었다. 그 다음이 인증 코드. 그 다음이 이름, 이메일, 나이, 직업. 매 화면마다 "다음" 버튼. 8 스텝. 8번 터치. 내가 손을 들었다. "혹시 한 화면에 관련 정보를 모아서 하면 안 될까요?" 기획자가 "그런데 모바일 화면은..." 했고, 난 노션을 켜서 와이어프레임을 그렸다. 휴대폰 인증 후 한 화면에 필수 정보 4개를 폼으로. 다음. 끝. 2 스텝. 회의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좋다고 했다. 기획자가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화이팅을 받았다. 그 느낌. 코드 리뷰에서는 거의 못 본 느낌. 누군가 내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걸로 무언가 더 나아진다는 느낌. 발표 2: 결제 플로우 (수요일) 기획팀이 신규 결제 방식을 설명했다. 사용자가 카드 등록 → 결제 진행 → 결과 확인. 좋아 보였다. 근데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혹시 결제 실패 케이스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사용자가 재시도하려면?" 기획자가 "아... 그건 개발팀이..." 했고, 난 "아니면 이렇게는 어떨까요?" 했다. 실패 화면에 "다시 시도" 버튼과 "다른 카드 등록" 옵션. 그리고 에러 메시지는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개발 리드가 "그게 훨씬 낫네"라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 지금 개발자로서 기획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기획자로서 플로우를 검토하고 있다. 발표 3: 추천 알고리즘 (월요일) 데이터 팀이 만든 추천 엔진을 기획팀이 발표했다. "사용자가 본 상품 기반으로 유사 상품을 추천합니다." 좋지만, 문제가 있었다. 추천 상품이 노출될 화면이 없었다. 기획 단계에서 "어디에 띄울 건데?"를 못 정한 거다. 나는 "상품 상세 페이지 하단에 '비슷한 상품' 섹션 어떨까요? 아니면 장바구니 페이지?" 했다. 기획자가 후자를 택했다. 사용자 입장에선 더 자연스럽다고. 내가 제안한 UI 패턴을 기획자가 채택했다. 이걸 할 때 기분이 좋다. 코드 리뷰보다. 발표 4, 5: 기타 등등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기획 문서를 보고 "여기 문제다", "여기 개선할 수 있다", "사용자가 이렇게 쓸 텐데"라고 말한다. 대부분 받아들여진다. 리더도, 기획팀도, 개발팀도. 그리고 매번 내 뇌는 같은 신호를 보낸다. "야 한기획, 넌 이게 더 재밌구나."AI가 제일 먼저 닿은 부분 재밌는 건 이거다. AI가 코딩은 잘하는데, 기획은 못한다는 거. 아직. GPT한테 "버그 고치는 코드 짜줘"라고 하면 60초 안에 나온다. 근데 "사용자가 헷갈릴 온보딩 플로우를 만들어줘"라고 하면? GPT가 "일반적인 온보딩은..." 하면서 대충한다. 개성이 없다. 데이터를 봐야 한다. 사용자를 봐야 한다. 우리 회사의 맥락을 알아야 한다. 그건 AI가 못한다. 아직. 그래서 요즘 생각이 이거다. 개발자는 5년 뒤 위험하다. AI가 너무 잘한다. 기획자도 10년 뒤 위험할 수도. 근데 지금 전환하면? 기획은 좀 더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이드로 프로젝트 하나를 온전히 기획해봤다. "개발자를 위한 작은 도구"를 만들 거면, 어떤 기능이 필요할까? 어떤 순서로 만들까? 누가 쓸까? 왜 쓸까? 그걸 문서로 정리하는 데 3일이 걸렸다. 코딩은 1주일 걸렸다. 그런데 재밌은 건, 기획할 때가 더 오래 집중했다는 거다. 뇌가 다르게 돌아갔다. 현실은 이렇고 좋은 생각들만 있는 건 아니다. 첫째, 연봉이다. 기획 신입으로 시작하면 4500~5200만원 대. 지금 6200만원에서 1000만원을 버린다. 아내는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지만, 숫자를 보면 다르다. 둘째, 경력이 없다. 아무리 회의에서 기획을 해봐도, 공식 경력은 0년이다. 서류도 떨어진다. 면접도 못 본다. 신입 취급. 셋째, 버릴 거다. 6년을 쌓은 개발 경험. 팀에서의 신뢰. "이건 한기획이 하면 잘하겠는데" 이런 이미지. 전환하면 0에서 다시다. 넷째, 까일 거다. 개발자 친구들은 "왜 그래?"라고 할 거고, 기획팀은 "개발자 주제에 뭐하냐"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 회사에서 개발에서 기획으로 간 사람이 "처음엔 개발팀에서 왕따였다"고 했다. 다섯째, 실패할 수도 있다. 기획이 내 성향에 안 맞을 수도 있다. 회의에서 본 것만 좋았고, 실제 일은 다를 수도. 연봉 깎이고, 경력도 없고, 실패하면? 다시 개발로? 그럼 늦는다. 그럼 이대로 개발자로 남을까? [IMAGE_4] 마지막 숫자들 지난주 회의에서 기획을 건넸던 횟수: 7번. 서류 탈락한 PM 지원: 4곳. 내부 전환 제안했을 때 답변: "현직무부터". 코딩 경력: 6년. 기획 경력: 0년 3개월(비공식). 차이나는 연봉: 1000만원~1500만원. 회의에서 기획 발표할 때의 쾌감 점수(10점 만점): 8. 코드 리뷰할 때의 쾌감 점수: 5. AI가 내 기획을 대체할 확률(10년 뒤): 40%. AI가 내 코딩을 대체할 확률(5년 뒤): 80%. 숫자로는 답이 안 나온다. 내일의 회의 내일 회의는 신규 피처 기획 리뷰다. 나는 또 다시 앉을 거고, 또 다시 발표를 볼 거고, 또 다시 "저거 틀렸는데"라고 생각할 거다. 그리고 또 다시 손을 들거나, 슬랙에 의견을 올릴 거다. 그리고 또 다시 같은 생각을 할 거다. "나 이거 해야 하나?" 그건 "나 이거 할 수 있나?"가 아니다. "나 이거 해야 하나?"다. 다르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일은 다르다. 근데 최근 몇 달을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쪽에 있는 것 같다. 그럼 언제 점프를 할까? 커피를 마셨다. 네 번째다.회의실에서 "저거 내가 할 수 있겠는데"는 신호였고, 지금 그 신호가 패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