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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코딩 대신 기획을 선택했을 때 얻는 것과 잃는 것

코딩 대신 기획을 선택했을 때 얻는 것과 잃는 것

엑셀 시트를 보며 생각했다 오늘 기획자가 공유한 로드맵 엑셀을 봤다. Q1, Q2, Q3로 나뉜 제품 일정. 각 기능의 우선순위. 예상 매출 영향도. "이거 재밌겠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6년간 코드만 짰는데, 저런 시야로 일하면 어떨까. 그리고 바로 다음 생각. "근데 나 알고리즘 다 까먹겠네."잃는 것: 기술적 깊이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획으로 가면 코딩 실력은 녹슬 것이다. 지금도 GPT 쓰면서 느낀다. 3개월 전엔 손으로 짰던 걸 지금은 프롬프트로 시킨다. 알고리즘 문제? 작년에 마지막으로 풀었다. 기획으로 가면 더 심해질 것이다. SQL 정도는 쓰겠지만, 새로운 프레임워크 공부는 안 할 것이다. 기술 블로그 읽는 시간에 시장 리포트를 읽을 것이다. 동기가 스타트업 CTO 됐다는 소식 들었다. 부럽긴 했다. 기술 리더로 가는 길. 나는 그 길을 포기하는 거다. "야, 넌 아직 FastAPI 신규 기능 다 알잖아." 팀장이 그랬다. 맞다. 아직은 안다. 근데 3년 뒤엔 모를 것이다. 기술 커뮤니티에서도 멀어질 것이다. 개발자 밋업 가면 뭔가 어색할 것이다. "나 이제 기획 쪽이야" 말하면 묘한 공기가 흐른다. 동료에서 외부인이 되는 느낌. 깊이를 잃는다. 전문성을 잃는다. 대신 뭘 얻는데? 얻는 것: 사업의 시야 어제 대표님과 회의했다. 신규 기능 개발 건. "이거 왜 만드는 거예요?" "사용자 요청이 많아서요." "근데 매출은 어떻게 늘어나는데요?" 대표님이 딱 그 표정 지으셨다. '이 친구 다르네' 하는 표정. 기획자는 이런 질문을 매일 한다. Why를 묻는다. 사용자는 왜 이걸 원하나. 경쟁사는 왜 저렇게 했나. 우리는 왜 이길 수 있나. 개발자는 How를 푼다. 어떻게 만드나. 어떻게 최적화하나. 두 개는 완전히 다른 근육이다.PM 하는 친구가 말했다. "넌 개발 6년 했으니까 유리해. 기술 한계 알잖아. 무리한 요구 안 해. 개발팀이 널 신뢰할 거야." 맞는 말이다. 순수 기획 출신은 가끔 황당한 요청을 한다. "이거 하루면 되죠?" 2주 걸리는 걸. 나는 그런 실수 안 할 것이다. 기술 부채 쌓이는 거 알고, 리팩토링 시간 필요한 거 알고, DB 마이그레이션 리스크 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제품 전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지라 티켓을 받는다. "로그인 API 성능 개선." 이게 전체 서비스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모른다. 그냥 한다. 기획은 다르다. 이 기능이 MAU를 얼마나 늘릴지 계산한다. 이탈률을 몇 %p 줄일지 예측한다. 3개월 뒤 OKR과 연결한다. 숲을 본다. 나무가 아니라. 돈 계산을 해봤다 현실적으로 따져봤다. 연봉. 지금: 6200만원. 개발 6년차 평균. 기획 전환 직후: 4500만원? 기획 신입 수준. 5년 뒤 개발자: 7500만원? (AI 영향 고려하면 불확실) 5년 뒤 PM: 8500만원? (시니어 PM, 프로덕트 오너) 계산이 맞나? 모른다. 변수가 너무 많다. 확실한 건, 단기적으론 손해다. 1700만원 줄어든다. 월 140만원. 적지 않다. 아내한테 말했다. "연봉 깎여도 괜찮아?" "5년 뒤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 5년 뒤를 봐야 한다. 근데 5년 뒤에 PM도 AI한테 대체되면? 그건 생각 안 하기로 했다. 그럼 답이 없다.정체성이 흔들린다 가장 어려운 건 이거다. 나는 6년간 "개발자"였다. 명함에도 그렇게 썼고, 자기소개할 때도 그랬다. "개발 뭐 해요?" "백엔드요, 파이썬." 이제 뭐라고 해야 하나. "기획 쪽으로 전환했어요." "아, 개발이 힘들어서요?" 아니, 힘들어서가 아니라... 설명하기 귀찮다. 주변 개발자들 반응도 묘하다. "야, 기획 가면 편하겠다. 코딩 안 해도 되잖아." 편해서 가는 게 아닌데. 다른 어려움이 있는데. 말해봐야 이해 못 한다. 부모님은 더 모르신다. "개발자가 좋은 거 아니야? 연봉도 높고." "요즘 AI가 대체한다니까요." "뭐? AI가 일을 해?" 설명 포기했다. 스스로도 헷갈린다. 나는 개발을 싫어하나? 아니다. 싫지 않다. 그냥 AI가 더 잘할 뿐이다. 기획을 좋아하나? 모른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 상상으로만 좋아한다. 이게 맞는 선택인가? 모른다. 3년 뒤에 알 것이다. 기술 vs 사업, 양립은 불가능한가 가끔 생각한다. 둘 다 할 수는 없나. 테크 PM. 기술 이해도 높고 사업 감각도 있는.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지금 회사 PM 중에 개발 출신이 한 명 있다. 3년 차. 코드는 이제 안 짠다. SQL만 가끔. 기술 회의 때 의견은 내지만, 디테일은 모른다. "예전엔 다 알았는데, 이젠 감만 있어." 그가 말했다. 솔직한 말이었다. 결국 Trade-off다. 깊이를 버리고 넓이를 얻는다. 개발자는 1미터를 10미터 깊이로 판다. 기획자는 10미터를 1미터 깊이로 판다. 둘 다 10미터 깊이로? 불가능하다. 24시간은 모두에게 똑같다. 10년 뒤를 상상해봤다 2034년. 시나리오 1: 개발자로 남았다. AI가 코드 90%를 짠다. 나는 검수하고 아키텍처를 짠다. 시니어 역할. 연봉은 비슷하거나 소폭 하락. 수요는 줄었지만 시니어는 필요하다. 안정적이지만 성장 정체. 시나리오 2: 기획으로 전환했다. 프로덕트 오너가 됐다. 팀을 이끈다. 사업 전략을 짠다. AI 도구를 활용하지만 방향은 내가 정한다. 연봉은 상승. 불확실하지만 가능성 있다. 시나리오 3: 둘 다 망했다. AI가 모든 걸 대체했다. 개발도 기획도 필요 없다. 세 번째는 생각 안 하기로 했다. 그럼 뭘 해도 의미 없다. 현실적으로 1번과 2번 중 선택이다. 1번은 안전하다. 익숙하다. 검증됐다. 2번은 도전이다. 불확실하다. 더 재밌을 수도. 난 2번을 선택하려 한다. 왜냐면, 이미 1번의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 기획 문서를 하나 썼다 퇴근 후 집에서 2시간 동안 기획안을 작성했다. 회사 신규 기능 제안서. 문제 정의, 타겟 사용자, 기대 효과, 개발 공수, 우선순위 근거. 완성하고 나니 뿌듯했다. 코드 짤 때와는 다른 만족감. '이게 실제로 만들어지면, 사용자가 쓰면, 매출이 늘면.' 상상만으로도 재밌었다. 내일 팀장한테 보여줄까 말까 고민 중이다. "야, 넌 개발자잖아. 왜 이런 거 써?" 그럴 수도 있다. 근데 언젠간 말해야 한다. 기획으로 가고 싶다고. 연봉 깎이는 건 감수한다. 정체성 혼란도 견딘다. 기술 깊이 잃는 것도 받아들인다. 대신 얻고 싶다. 제품 전체를 보는 시야. 사업의 흐름을 읽는 감각. 사용자의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그게 앞으로 10년, 더 가치 있을 거라 믿는다. 틀릴 수도 있다. 3년 뒤 후회할 수도 있다. 근데 지금 이 자리에 그냥 있다간, 확실히 후회할 것 같다.내일 팀장한테 커피 한잔 하자고 할까. 진지하게 얘기 좀 하자고.

AI 시대에 개발자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중이다

AI 시대에 개발자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중이다

6년이 무너지는 속도 아침 9시. 출근했다. 슬랙 켰다. 주니어한테 메시지 왔다. "한기획님, 어제 말씀하신 API 만들었어요. 검토 부탁드려요." 어제 오후 5시에 요청한 거다. 내 예상은 이틀이었다. 코드 열어봤다. 깔끔하다. 에러 핸들링도 있다. 테스트 코드도 있다. "빨리 했네?" "GPT한테 물어봤어요. 30분 걸렸어요." 30분. 나는 6년 전에 이거 배우는 데 3개월 걸렸다.점심 먹으면서 생각했다. 저 주니어는 나만큼 실력 늘까? 아니, 실력이 뭔데? 퇴근길 지하철. 개발자 커뮤니티 봤다. "요즘 코딩 인터뷰 의미 있나요?" 댓글 200개. 절반은 "GPT 시대에 알고리즘 외울 필요 없다" 절반은 "기본기 없으면 GPT도 못 쓴다" 둘 다 맞는 말 같은데. 둘 다 틀린 말 같은데. 자존감의 근거가 사라진다 나는 개발자로 6년 먹고살았다. 연봉 6200만원. 동기들보다 많이 받는다. 부모님께 자랑했다. "아들 잘됐어요." 그 자랑의 근거는 뭐였나. "남들이 못하는 거 나는 한다." "코드를 쓴다. 서비스를 만든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을 이해한다." 지난주 금요일. CTO가 전체 회의에서 말했다. "앞으로 개발 생산성 3배 높일 겁니다." "GitHub Copilot 전사 도입합니다." 월요일부터 써봤다. 함수 이름 쓰면 본문이 자동 완성된다. 주석 쓰면 코드가 나온다. 내가 쓰려던 거 90% 맞춘다. 화요일. 코딩하다가 멈췄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AI가 쓴 코드 읽고 엔터 치는 거? 수요일. GPT한테 물었다. "FastAPI로 인증 시스템 만들어줘. JWT 쓰고, Redis 캐싱하고." 3분 만에 완성본 나왔다. 내가 3일 걸릴 거. GPT는 3분. 1440배 빠르다.목요일 저녁. 아내한테 말했다. "나 6년 동안 뭐 한 거 같아?" "무슨 소리야. 잘하고 있잖아." "잘한다는 게 뭔데. AI가 나보다 잘하는데." 아내는 마케터다. "마케팅도 AI 쓰는데. 근데 일은 사람이 하잖아." "개발은 다른 거 같아. 진짜 AI가 대체할 거 같아." 금요일. 팀장이 1:1 면담 신청했다. "요즘 힘들어 보여요." "아뇨. 괜찮습니다." "코드 리뷰 횟수가 줄었어요. 바쁜가요?" "아니요. 그냥... 예전보다 검토할 게 적어서요." 팀장은 눈치챘을 거다. 내가 정체성 잃어가는 거. 숫자로 증명되는 퇴색 Stack Overflow 트래픽 30% 감소. 작년 대비. 개발자들이 안 간다. GPT한테 물어본다. 내 검색 기록 봤다. 작년 1월: Stack Overflow 방문 120회 올해 1월: 18회 내 Cursor 에디터 사용 기록. 하루 평균 AI 코드 제안 수용: 87회 직접 작성: 43회 비율: 67% 6년 전 내 GitHub 커밋. 일주일에 평균 23개. 지금: 9개. 커밋 메시지도 짧아졌다. "fix", "update", "AI suggestion applied"도망치듯 기획으로 3개월 전부터 PM 책 읽는다. "인스파이어드", "크래킹 더 PM 인터뷰", "프로덕트 매니저 실무 가이드" 벌써 10권. 노션에 기획 포트폴리오 만들었다. 회사 프로젝트 중 하나 골라서. "만약 내가 PM이었다면" 시리즈. 사용자 플로우 그렸다. PRD 썼다. KPI 정의했다. 재밌었다. 코딩보다 재밌었다. 근데 이게 도망인가? 아니면 전환인가? 개발자 친구한테 말했다. "나 PM 준비하는 중이야." "미쳤어? 개발자가 얼마나 좋은데." "AI가 다 하잖아." "그래도 검수는 사람이 해야지." 검수. 검수라니. 나는 창조자였는데. 이제 검수자가 되는 건가. PM 하는 대학 동기한테 물었다. "개발자에서 PM 전환 어때?" "좋지. 너는 기술 이해하니까 유리해." "연봉은?" "처음엔 깎일 거야. 근데 5년 보면 괜찮아." 5년. 5년 뒤에 PM도 AI한테 밀리면? 그건 생각하기 싫다. 무너지는 게 나만은 아니다 커뮤니티 글 봤다. "8년 차 개발자인데 주니어랑 생산성 차이 안 나요" 공감 댓글 300개. "요즘 코딩 면접 볼 때 AI 사용 허용하나요?" 논쟁 500개. "개발자 채용 공고 줄었죠?" 통계 링크 달렸다. 작년 대비 신입 채용 40% 감소. 블라인드 들어갔다. "AI 시대 개발자 커리어 어떻게 준비하세요?" 답변들:"풀스택 + DevOps 공부 중" "도메인 전문성 쌓기" "AI 엔지니어로 전환" "솔직히 모르겠음"마지막 답변에 좋아요 제일 많다. 다들 모른다. 나만 불안한 게 아니다. 그게 위로가 되나? 안 된다. 남은 건 뭔가 주말에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 시작했다. "AI 시대 개발자 커리어 전환 플랫폼" 아이러니하다. AI 때문에 불안한데 AI 써서 만든다. 기획부터 했다. 타겟 유저: 3년 이상 개발자 페인 포인트: 기술 퇴색 불안, 전환 방향 모름 솔루션: 경험자 인터뷰, 전환 로드맵, 포트폴리오 템플릿 PRD 쓰는 데 4시간 걸렸다. 재밌었다. 코딩은 GPT한테 시켰다. 2시간 만에 MVP 나왔다. 비율이 역전됐다. 예전엔 기획 1시간, 코딩 20시간. 지금은 기획 4시간, 코딩 2시간. 이게 미래 아닐까?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사람. "어떻게 만들지"는 AI가. 그럼 나는 "무엇을" 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게 PM이다. 그게 기획자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이것도 확신은 없다. GPT한테 물어봤다. "기획도 AI가 대체할 수 있어?" 답변: "부분적으로 가능합니다. 데이터 분석 기반 의사결정, 사용자 플로우 설계, PRD 초안 작성 등은 AI가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해관계자 조율, 전략적 우선순위 결정, 조직 내 정치 등은..." 읽다가 껐다. "다만" 뒤에 나오는 것들. 그것들이 얼마나 오래 갈까. 정체성이란 게 개발자 정체성. 6년 동안 그게 나였다. 명함에 "백엔드 개발자" 링크드인 헤드라인 "Python Developer" 자기소개 "코드 쓰는 사람입니다" 이제 그게 뭔지 모르겠다. 코드 쓰는 사람? AI가 쓴 코드 검수하는 사람? GPT한테 좋은 질문 던지는 사람? 어제 팀 회식. 신입이 물었다. "선배님은 왜 개발자 되셨어요?" "음... 뭔가 만드는 게 좋아서?" "저도요! AI 덕분에 더 많이 만들 수 있어서 좋아요." 그 말에 아무 말 못 했다. 신입은 순수했다. 나는 냉소적이었다. '넌 아직 모르는구나. 네가 만드는 게 아니라 AI가 만드는 거라는 걸.' 근데 그게 맞나? GPT가 없으면 나도 못 만든다. 예전엔 스택오버플로우 없으면 못 만들었다. 그 전엔 책이 없으면 못 만들었다. 도구가 바뀐 건가? 아니면 본질이 바뀐 건가? 밤에 아내한테 물었다. "정체성이 뭐라고 생각해?" "왜 갑자기?" "내가 개발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개발자지. 회사 다니잖아." "그게 아니라 진짜로."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문제 해결하는 사람이잖아. 코드로 하든 기획으로 하든. 그게 정체성 아니야?" 그 말이 위로가 됐나? 잘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또 불안하다.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월급은 들어온다. 6200만원. 12로 나누면 516만원. 세전이다. 동기 중에 가장 많이 받는다. 자랑이었다. 이제는 불안이다. '이게 얼마나 갈까?' 채용 공고 검색했다. "시니어 백엔드 개발자" 작년 이맘때: 120개 지금: 73개 39% 감소. "프로덕트 매니저" 작년: 45개 지금: 58개 29% 증가. "AI Engineer" 작년: 12개 지금: 89개 641% 증가. 숫자는 명확하다. 시장이 말한다. "순수 개발자는 줄인다." "AI 다룰 줄 아는 사람 뽑는다." "만들 사람보다 방향 정할 사람 뽑는다." 내 이력서 봤다. "Python, Django, FastAPI, AWS" "RESTful API 설계 및 구현" "대용량 트래픽 처리 경험" 이제 이게 무기가 아니다. GPT도 한다. 주니어도 한다. 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PM 이력서 만들어봤다. "기술 이해도 높은 PM" "개발 경험 6년, 기획 전환" "사용자 중심 프로덕트 설계" 근데 경력란에 쓸 게 없다. "PM 경력 0년" 지원했다. 5곳. 서류 탈락. 5곳. "기획 경력 3년 이상 우대" 우대가 아니라 필수다.6년이 무너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도망일지 전환일지 아직 모르겠지만, 멈춰있을 수는 없다.

개발자 출신 PM 후기 블로그를 매일 읽는 이상증

개발자 출신 PM 후기 블로그를 매일 읽는 이상증

새벽 2시의 루틴 또 새벽이다. "개발자 출신 PM 성공 후기" 검색했다. 오늘로 37일째다. 북마크 폴더를 열었다. "PM 전환 성공" 폴더. 글이 83개다. 다 읽었다. 근데 또 읽는다.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미디엄, 링크드인. 다 찾아봤다. "개발 6년 차, PM으로 전환하고 연봉 2배" "코딩하다 기획으로 갈아탔더니 인생이..." "개발자였던 내가 PM 되기까지 1년의 기록" 제목만 봐도 클릭하게 된다.아내가 자다 깼다. "또 그거 봐?" "응. 잠깐만." "어제도 봤잖아." 할 말이 없다. 맞다. 근데 멈출 수가 없다. 한 줄이라도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들의 공통점을 찾는 중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PM 전환 성공 케이스 분석.xlsx" 항목은 이렇다.전 직장 개발 경력 전환 시기 준비 기간 전환 방법 연봉 변화 키포인트83명의 데이터를 정리했다. 카카오 출신 7명. 네이버 출신 12명. 쿠팡 3명. 스타트업 출신 48명. 개발 경력 평균 5.2년. 나는 6년. 비슷하다. 준비 기간 평균 8개월. 나는 6개월. 좀 더 해야 한다.패턴이 보인다.회사 내 이동이 제일 쉽다. 당연하다.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 경험을 어필했다. 나도 해야 한다. "개발 이해도 높은 PM" 이게 무기였다. 내 강점이다.근데 이상한 건 있다. 다들 성공했다. 실패한 사람은 없다. 블로그에 실패담을 쓰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 생각이 들자마자 멈췄다. '나는 어떤 케이스지?' 그의 길이 내 길일까 가장 많이 본 블로그가 있다. "개발 7년 차, PM 전환 1년 만에 팀장" 이 사람 글을 15번 읽었다. 그는 토스에 있었다. 나는 중견 회사다. 그는 사내 이동했다. 나는 이직해야 한다. 그는 CTO가 밀어줬다. 나는 아무도 모른다. 조건이 다 다르다. 근데 자꾸 읽는다."그는 어떻게 설득했을까" "그는 첫 기획 문서를 어떻게 썼을까" "그는 면접에서 뭐라고 했을까" 댓글을 봤다. "저도 PM 준비 중인데 도움 됐어요!" "개발자 출신 PM 최고예요!" "저도 곧 도전합니다!" 다들 준비 중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근데 실제로 전환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블로그 주인에게 DM을 보냈다. 3일 전이다. "안녕하세요. 저도 개발자인데 PM 전환 준비 중입니다. 혹시 조언 구할 수 있을까요?" 아직 답 없다. 당연하다. 바쁘겠지. 근데 계속 DM 확인한다. 성공 사례 중독 유튜브도 봤다. "개발자에서 프로덕트 오너로" "백엔드 개발자의 PM 이직기" "코딩 그만두고 기획으로 간 이유" 다 봤다. 구독했다. 알림 켜놨다. 영상마다 공통점이 있다. "힘들었지만 잘 선택했어요" "개발 지식이 PM에 도움 돼요" "연봉은 처음엔 내려갔지만 결국 올랐어요" 긍정적이다. 다들 잘됐다. 근데 왜 나는 불안할까. 아내가 물었다. "왜 맨날 성공한 사람만 찾아봐?" "그게 도움이 되니까." "실패한 사람 얘기는 안 봐?" "...없어. 그런 글." "있을 거 아냐. 안 쓰는 거지." 맞는 말이다. PM 전환 실패한 사람. 다시 개발로 돌아간 사람. 전환했는데 후회하는 사람. 분명 있다. 근데 글은 없다. 성공한 사람만 글을 쓴다. 당연하다. 나는 생존 편향에 빠진 거다. 그들과 나의 차이 냉정하게 비교했다. 블로그 주인공: 네이버 출신, PM 제안 받음 나: 중견 회사, 아무도 모름 블로그 주인공: 개발팀장 경험, 협업 검증됨 나: 시니어지만 팀장 아님 블로그 주인공: 회사 내 기획 프로젝트 참여 나: 혼자 노션에 문서 씀 차이가 크다. 근데 자꾸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이게 희망일까 착각일까. 회사에서 기획팀 사람이랑 얘기했다. "형 PM 관심 있으세요?" "어 좀. 요즘 공부하는 중이야." "아 저도 블로그 봤어요. 개발자 출신 PM 좋다던데." "응. 근데 이직은 좀 어려울 것 같아." "왜요?" "경력이 없으니까." "블로그엔 다들 성공했던데요?" "...그렇긴 해." 그 사람도 블로그 봤다. 나랑 똑같은 걸 본 거다. 다들 본다. 근데 다들 실행하진 않는다. 밤마다 여는 폴더 북마크 폴더를 또 열었다. 제일 위에 있는 글. "개발 5년에서 PM으로, 내 선택" 이 글을 20번도 넘게 읽었다. 그의 스토리가 좋다. 그의 결정이 멋있다. 그의 결과가 부럽다. 근데 그가 나는 아니다. 새 글을 찾았다. "개발자 출신 CPO가 된 이유" CPO. 최고 제품 책임자. 더 높다. 클릭했다. 읽었다. 북마크했다. 84개가 됐다. 내일도 읽을 거다. 모레도 읽을 거다. 이게 준비일까 회피일까. 행동하지 않는 이유 솔직히 안다. 블로그만 읽고 있다. 실제론 아무것도 안 했다. 이력서는 5개 넣었다. 다 떨어졌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노션만 만들었다. 기획은 안 썼다. 사내 이동은 눈치만 봤다. 말은 안 했다. 그냥 성공한 사람들 글만 읽는다. 왜 읽을까. 위안을 받으려고. "나도 할 수 있어"를 확인하려고. 근데 읽으면서 동시에 생각한다. "저 사람은 조건이 좋았어" "나는 좀 다르니까" "조금만 더 준비하고" 핑계다. 다 핑계다. 블로그 읽기가 준비가 된 거다. 착각이다. 댓글을 달았다 용기를 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PM 전환 준비 중입니다." 15분 뒤에 답글이 달렸다. "화이팅입니다!" 끝이다. 이게 끝이다. 기대한 게 뭐였지. 구체적 조언? 멘토링 제안? 없다. 그냥 "화이팅"이다. 다른 블로그에도 댓글 달았다. "혹시 개발자 출신 PM 채용하는 곳 아시나요?" 답글 없다. 또 다른 블로그에 물었다. "저는 경력이 없는데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답글 왔다. "저도 그냥 부딪혀봤어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도움이 안 된다. 당연하다. 그들은 모른다. 내 상황을. 같은 길은 없다 깨달았다. 그들의 길이 내 길이 아니다. 토스 출신의 방법이 내 방법이 아니다. 네이버 출신의 타이밍이 내 타이밍이 아니다. 사내 이동 성공담이 내 이직 전략이 아니다. 조건이 다르다. 환경이 다르다. 사람이 다르다. 그런데도 자꾸 읽는다. "그래도 힌트는 있지 않을까" "그래도 참고는 되지 않을까" 힌트는 있다. 근데 답은 없다. 참고는 된다. 근데 해결책은 없다. 내가 만들어야 한다. 내 길을. 오늘도 검색했다 "개발자 PM 전환 성공" 새 글이 올라왔다. "개발 4년 차, 스타트업 PM 합격 후기" 클릭했다. 읽었다. 북마크했다. 85개가 됐다. 내일이면 90개가 될 것 같다. 아내가 또 물었다. "그래서 언제 할 건데?" "...준비하고 있잖아." "블로그 읽는 게 준비야?" 할 말이 없다. 맞다. 이건 준비가 아니다. 준비하는 척이다. 안전하게 동경하는 거다. 86번째 글 새벽 3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봤다. "개발자에서 PM 도전했다가 실패한 썰" 제목이 다르다. 실패 얘기다. 드디어 나왔다. 찾았다. 근데 클릭을 못 하겠다.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 왜 안 누를까. 무섭다. 실패 얘기가. 성공 얘기는 희망을 준다. 실패 얘기는 현실을 준다. 나는 희망이 필요했다. 현실은 필요 없었다. 5분을 고민했다. 결국 안 눌렀다. 북마크 폴더를 닫았다. 그 글은 저장 안 했다. 그래도 또 읽을 거다 노트북을 껐다.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면접 준비를 해야 한다. 기획 문서를 써야 한다. 사내 이동을 타진해야 한다. 근데 아마 내일도 블로그부터 열 것 같다. "개발자 출신 PM" 이 키워드를 검색하는 게 익숙하다. 그들의 성공을 읽는 게 편하다. 내 실패를 마주하는 것보다.블로그는 87개가 됐다. 내 이력서는 5개에서 멈췄다.

주말에 노션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부터 시작한 이유

주말에 노션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부터 시작한 이유

토요일 오전 11시, 노션 페이지 커피 만들었다. 세 번째다. 노트북 켰다. VS Code 아니고 Notion. 뭔가 이상하다. 6년 만에 처음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코드부터 안 짠다. '사용자 페르소나'라고 제목 쓴다. 타이핑이 어색하다. import React 치던 손이 '30대 직장인 남성'을 친다.아내가 거실에서 본다. "오늘 코딩 안 해?" "응. 기획한다." "...진짜 전환하려나 보네." 나도 놀랐다. 진심인가 보다. 왜 이걸 하냐면 월요일에 있었다. 회의가. 주니어가 물었다. "이번 기능 어떻게 만들까요?" 나는 바로 답했다. "일단 API 구조 짜고..." 옆에서 기획자가 말했다. "잠깐. 사용자가 왜 이 기능을 원하는지부터 정리해요." 정적. 나는 6년 동안 '어떻게'만 생각했다. '왜'는 생각 안 했다. 그날 밤 검색했다. "프로덕트 기획 프로세스". 첫 페이지에 나왔다. "문제 정의 → 페르소나 → 유저 스토리 → 와이어프레임". 코드는 맨 끝이었다.충격받았다. 6년 동안 맨 끝만 했다. 이제 처음부터 하고 싶다. 노션 템플릿 찾기 검색했다. "Product planning template Notion". 100개 넘게 나왔다. 30분 동안 비교했다. PRD, User Story Map, Feature Roadmap. 개발할 땐 안 그랬다. 그냥 Django 켜고 models.py 짰다. 지금은 다르다. 기획 템플릿 고르는 게 재밌다. 하나 골랐다. "Lean Product Planning Kit". 49달러. 결제했다. 개발 강의는 무료만 봤는데. 변했다. 템플릿 복사했다. 페이지 12개다.Problem Statement Target User User Journey Map Feature Prioritization Success Metrics Technical Feasibility (이건 내가 잘하지)빈칸 채우기 시작했다. 오후 1시였다. 점심 안 먹었다. 첫 페이지: Problem Statement "해결하려는 문제가 뭔가?" 30분 동안 한 문장 못 썼다. 사이드 프로젝트 아이디어는 있었다. "개발자 커뮤니티 플랫폼". 근데 왜 필요한지는 몰랐다. '그냥 만들면 안 돼?' 안 된다. 기획은 '왜'부터다.GPT한테 물어봤다. "개발자 커뮤니티가 필요한 이유를 분석해줘." 3초 만에 답 왔다. 5개 포인트. 복붙했다. 그러다 멈췄다. '이거 내 생각 아니잖아.' 지웠다. 전부. 다시 썼다. 내 경험으로. "Stack Overflow는 AI 시대에 답 없다. 인간의 맥락이 필요하다." 한 시간 걸렸다. 한 문장에. 근데 이게 내 문장이다. 페르소나 만들기 "김개발, 29세, 주니어 백엔드 개발자." 사진 넣고 싶었다. 미드저니 켰다. 프롬프트 짰다. "young korean developer, tired, laptop, coffee". 4번 돌렸다. 마음에 안 들었다. 디테일 추가했다. "wearing hoodie, messy hair, dark circles, realistic". 나왔다. 나 같았다. 노션에 붙였다. 그 아래 적었다. "고민: AI가 코드 짜면 나는 뭐 하지?" "니즈: 같은 고민 하는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다." "행동: 퇴근 후 커뮤니티 검색, 근데 원하는 곳 없음." 적다 보니 알았다. 이게 나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게 내가 필요한 거다. 개발할 땐 몰랐다. 기능만 생각했으니까. 기획하니까 보인다. 사람이. 오후 4시, 와이어프레임 피그마 켰다. 처음 써본 건 3개월 전이다. 유튜브 보고 배웠다. "피그마 기초 30분 완성". 사각형 그렸다. 헤더다. 버튼 만들었다. "로그인". 레이아웃 잡았다. 3단 구조. 1시간 만에 메인 페이지 나왔다. 예전엔 이걸 코드로 바로 짰다. Bootstrap 긁어서. 지금은 그림부터 그린다. 신기하다. 코드 없이도 뭔가 만들어진다. 아내가 봤다. "오, 괜찮은데? 이거 진짜 만들 거야?" "응. 근데 코딩은 나중에." "...너 맞아?" 나도 모르겠다. 저녁 7시, 기술 검토 개발자 습관이 나왔다. "Technical Feasibility" 페이지 열었다.Backend: FastAPI (내가 제일 잘함) Frontend: React (할 줄 암) DB: PostgreSQL Infra: AWS (회사에서 써봄)적다가 멈췄다. '이거 지금 중요한가?' 중요하긴 하다. 근데 첫 번째는 아니다. 첫 번째는 "이게 정말 필요한가?"였다. 섹션 순서 바꿨다. Technical Feasibility를 맨 뒤로. Problem Statement를 맨 앞으로. 저장했다. 마음이 편했다. 밤 10시, 회고 8개 페이지 채웠다. 코드는 한 줄도 안 짰다. 근데 뭔가 만들어졌다. 프로덕트의 윤곽이. 예전 사이드 프로젝트는 달랐다. models.py 짜고, API 만들고, 프론트 붙이고. 3일 만들고 일주일 방치하고 삭제.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다. '왜'가 없었으니까. 그냥 '만들기'만 했으니까. 이번엔 다르다. 노션에 12페이지 기획서가 있다. 아직 코드는 없다. 근데 확신은 있다. 이거 만들어야 한다고. 누가 필요로 한다고. 나라도 필요로 한다고. 일요일 아침, 변명 사실 인정하기 싫었다. '기획'이 재밌다는 거. 개발자는 코딩이 제일 재밌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토요일 8시간 동안 제일 재밌었던 순간은 뭐였나. 페르소나 쓸 때였다. 문제 정의할 때였다. 코드 칠 때가 아니었다. 변명하고 싶다. "아직 개발이 좋아. 이건 그냥 새로워서 재밌는 거야." 근데 거짓말이다. 6개월 전부터 알았다. 코딩보다 기획이 재밌다는 거. 인정 안 했을 뿐이다. 6년 했는데 버리기 아깝잖아. 근데 버리는 게 아니다. 쌓는 거다. 개발 6년 + 기획 경험 = 더 나은 PM. 스스로 설득했다. 진심인지 합리화인지는 모르겠다. 노션 vs GitHub 예전 사이드 프로젝트는 GitHub부터였다. Repository 만들고, README 쓰고, 첫 커밋. 이번엔 Notion이 먼저다. GitHub는 아직 안 만들었다. 만들 거다. 언젠가. 근데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기획이다. 문서다. 생각이다. 컴퓨터 폴더 봤다. "Projects" 폴더에 30개 있다. 다 React나 Django 프로젝트다. README 보면 다 "TODO: Add description"이다. 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엔 다르다. Notion에 "Why this project exists" 섹션이 있다. 500자 채웠다. 이게 README보다 먼저다. 코드보다 먼저다.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노션 켰다. 기획서 읽었다. 내가 쓴 거. 뿌듯했다. 이상했다. 옆 사람이 봤을 거다. 노션 보고 웃는 이상한 사람. 회사 도착했다. VS Code 켰다. PR 리뷰 3개. 코드 봤다. 주니어가 짠 거. "이거 왜 이렇게 짰어요?" 주니어가 답했다. "GPT가 이렇게 하래서요." 나는 물었다. "근데 이게 사용자한테 어떤 경험이야?" 주니어가 멈칫했다. 팀장이 봤다. 나를. "한기획 씨, 요즘 관점이 바뀌었네요?" "...네?" "좋은 거예요. PM 마인드." 가슴이 뛰었다. 인정받았다. 아직 전환도 안 했는데. 이유 왜 이제 기획부터 시작하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코드는 AI가 짠다. 이미. 기획은 아직 사람이 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사용자를 이해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이건 GPT가 못 한다. 아직은. 5년 뒤는? 모른다. 근데 개발보다는 늦을 거다. 그리고 솔직히. 기획이 재밌다. 코딩보다. 만드는 것보다 정의하는 게 재밌다. "어떻게"보다 "왜"가 재밌다. 인정한다. 나는 개발자에서 기획자로 가고 싶다. 이 노션 페이지가 신호탄이다.토요일 8시간, 코드 0줄, 노션 12페이지. 이게 내 새로운 시작이다.

회의실에서 '그거 GPT한테 시키면 되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의 기분

회의실에서 '그거 GPT한테 시키면 되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의 기분

회의실에서 '그거 GPT한테 시키면 되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의 기분 오늘도 했다. 회의실에서 기획자가 '이 기능은 개발 공수 얼마나 나올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거 GPT한테 시키면 하루 만에 나올 것 같은데요'라고 답했다. 순간 공기가 싸해졌다. 기획자는 '아... 네...'라고만 했다. 옆자리 선배 개발자가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이 '너 또 그러네'였다. 회의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나 지금 도움 주는 건가, 분위기 깨는 건가.6개월 전부터 버릇처럼 이 말을 하기 시작한 게 6개월쯤 됐다. 처음엔 진짜 도움 주려고 했다. 'GPT 쓰면 빠를 것 같아요'는 기획자가 일정 짤 때 도움 되는 정보 아닌가. 개발 공수 줄어든다는 건 좋은 거 아닌가. 근데 회의 때마다 이 말이 나오니까 이상해졌다. '이 기능 구현 가능한가요?' - '네, GPT 쓰면요.' 'API 연동 복잡할까요?' - '아뇨, GPT한테 물어보면 돼요.' '테스트 코드 작성은?' - '그것도 GPT가 짜줘요.' 내가 듣기에도 이상했다. 마치 '나 필요 없어요'라고 광고하는 느낌.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왜냐면 사실이니까. 진짜로 GPT가 하루 만에 짜준다. 내가 3일 걸릴 거 주니어가 GPT 쓰고 하루 만에 끝낸 거 봤다. 그걸 아는데 어떻게 '3일 걸립니다'라고 말하나. 근데 이게 도움인가.기획자의 표정 오늘 회의 끝나고 기획자가 말 걸었다. '한기획 님, 요즘 회의 때... 음... GPT 얘기 많이 하시는데...' 조심스러웠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 '아 네, 제가 요즘 GPT 많이 써서요. 도움 되시라고...' '아니 도움은 돼요. 근데 제가... 기획할 때 좀 위축되는 것 같아요.' 그 말 듣고 멈칫했다. '제가 뭘 제안해도 "그거 GPT 쓰면 되는데"라고 하시면, 그럼 제가 이걸 왜 고민한 건가 싶기도 하고... 아 이게 불만은 아니고요. 그냥 제 마음이 그렇다는...' 기획자는 말을 흐렸다. 나는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근데 속으론 생각했다. '그래도 사실인데.' 자리로 돌아와서 한 시간 동안 일이 안 됐다. 마우스만 움직였다 멈췄다 했다. 내가 도움 준 건가, 기획자 자존감 깎은 건가. 더 정확히는, 내가 도움을 주려고 한 건가, 내 불안을 전염시킨 건가.개발자의 방어기제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내가 회의 때마다 'GPT 쓰면 된다'고 말하는 이유. 하나. 진짜 GPT가 빠르다. 이건 사실. 둘. 기획자가 일정 짤 때 도움 된다. 이것도 맞다. 셋. ...내가 불안하다. 이게 진짜. 솔직히 말하면, 나는 GPT 얘기를 할 때마다 '나도 알아요, 나도 이거 쓴다고요, 나 도태 안 됐어요'라고 증명하고 싶은 거다. 기획자한테 말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말하는 거다. '저 개발자, 아직도 손으로 일일이 다 짜네'라고 생각될까 봐 무서워서, 먼저 'GPT 씁니다'를 선언하는 거다. 방어기제였다. 근데 그게 회의실에서 기획자한테 '당신 아이디어는 GPT면 충분해요'처럼 들렸다면. 내 불안이 남의 불안이 된 거다. 기술 지적이 아니라 불안 전파 문제는 이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개발자 단톡방 보면 비슷한 얘기 많다. '오늘 기획자가 ㅇㅇ 기능 제안했는데 나 GPT한테 시켜서 2시간 만에 끝냈음 ㅋㅋ' '기획 회의 때 "이거 AI 쓰면 되는데요?" 했더니 분위기 싸해짐' '요즘 기획자들 AI 모르나? 나만 아는 거 같음' 다들 비슷하다. 개발자가 기획자한테 'GPT 쓰면 된다'고 말하는 건, 기술 조언이 아니다. 불안 전파다. '나도 AI 알아요, 나 아직 쓸모있어요'를 증명하려다가, 기획자한테 '당신 일도 AI면 충분할지 몰라요'를 전염시킨다. 도움 주려던 게 방해가 된다. 냉정하게 보면, 기획자는 'GPT가 코드 짜준다는 거' 이미 안다. 모를 리가 없다. 뉴스에 매일 나오는데. 그럼 내가 회의 때마다 'GPT 쓰면 된다'고 말하는 건, 정보 전달이 아니다. 불안 확인이다. '나도 불안해요. 당신도 불안하죠?' 이걸 공유하면 뭐가 나아지나. 아무것도. 도움과 방해의 경계 그럼 뭐가 도움이고 뭐가 방해인가. 생각을 정리해봤다. 도움: '이 기능은 라이브러리 ㅇㅇ 쓰면 빠를 것 같아요.' 방해: '이거 GPT 쓰면 되는데요?' 도움: '개발 공수 줄일 수 있는 방법 찾아볼게요.' 방해: '요즘 다들 GPT 쓰는데 우리도 써야죠.' 도움: 구체적 대안 제시. 방해: 추상적 불안 공유. 차이는 명확했다. 도움은 '어떻게'를 말하고, 방해는 '왜'를 흔든다. 'GPT 쓰면 된다'는 '어떻게'가 아니다. '당신 고민 무의미할 수도'라는 '왜' 흔들기다. 기획자가 3일 고민해서 만든 기획안에, 내가 '그거 GPT 10분이면 되는데요?'라고 하면. 기획자는 듣는다. '내가 3일 고민한 게 10분짜리였어?' 이게 도움일 리 없다. 내가 바꿔야 할 것 오늘 저녁에 그 기획자한테 메신저 보냈다. '오늘 말씀하신 거 생각해봤어요. 제가 회의 때 GPT 얘기 너무 많이 했네요. 죄송합니다. 도움 주려던 건데 오히려 불편하게 해드린 것 같아요.' 답장 왔다. '아니에요. 한기획 님이 나쁘게 하신 건 아니에요. 저도 요즘 AI 때문에 좀... 예민했나 봐요. 근데 한기획 님 말씀 들으면 항상 기술적으로 배우는 게 있어요. 앞으로도 조언 부탁드려요.' 착한 사람이다. 근데 나는 안다. 내 조언 중 절반은 조언이 아니라 불안이었다는 걸. 앞으로 바꿀 것. 회의 때 'GPT 쓰면 된다'는 말 줄이기. 대신 '이렇게 하면 빠를 것 같다' 구체적으로 말하기. 기획자 아이디어에 기술 지적하기 전에, '이거 왜 이렇게 기획하셨어요?' 먼저 물어보기. 내 불안을 남한테 전염시키지 않기. 불안하면 혼자 끙끙대기. 단톡방에 푸념하지 말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기획 전환 준비하면서, 개발자 정체성 흔들리는 걸 기획자한테 풀지 않기. 내 진로 고민은 내가 해결할 문제다. 기획자는 내 심리 상담사가 아니다. PM 되려는 사람이 아이러니한 건, 나 지금 PM 준비한다고 기획 공부하는데. 정작 기획자 마음은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기획자가 아이디어 내면 기술적 가능성부터 따지고, 'GPT 쓰면 된다'며 중요도 낮추고, 개발 공수로만 판단하고. 이게 개발자 마인드다. PM은 반대여야 한다. 기획자 의도 먼저 이해하고, 기술은 그 다음에 고민하고, 'GPT 쓰면 된다'는 해결책이지 평가가 아니고. 나는 6개월 동안 PM 책 10권 읽으면서, 정작 옆자리 기획자 마음은 한 번도 안 읽었다. 웃긴다. 개발자 출신 PM이 강점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개발자 출신이라 극복해야 할 것투성이다. 기술 아는 게 장점이 아니라, 기술로 모든 걸 재단하는 게 단점이다. 'GPT 쓰면 된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PM이 아니라 개발자다. PM이 되려면 'GPT 쓰면 뭐가 더 좋아질까?'를 물어야 한다. 아직 멀었다. 내일 회의 내일도 기획 회의 있다. 이번엔 다르게 해보려고 한다. 기획자가 '이 기능 개발 가능할까요?'라고 물으면, 'GPT 쓰면 된다' 대신 '어떤 목적으로 이 기능 넣으셨어요?'부터 물어볼 거다. 기획 의도 들어보고, 그 다음에 '이렇게 하면 빠를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제안할 거다. 'GPT'는 해결책으로만 쓰고, 평가로는 안 쓸 거다. 그리고 입 다물 타이밍 연습. 모든 기획에 기술 지적할 필요 없다. 내가 아는 걸 다 말할 필요도 없다. 가끔은 그냥 '좋네요'라고만 해도 된다. 이게 개발자한테는 어색하다. 우린 문제 찾는 게 습관이니까. 근데 PM은 문제보다 가능성을 먼저 봐야 한다고 한다. 어제 읽은 PM 책에 나왔다. 내일 연습해본다. 실패할 것 같긴 하다. 6개월 습관이 하루에 안 바뀐다. 그래도 시도는 해본다. 일단 회의 들어가기 전에 포스트잇 하나 써서 노트북에 붙여놓을 거다. 'GPT 언급 금지.' 유치하지만 필요하다.도움 주려다가 불안 전염시키는 건, 나도 남도 불행하다.

지금 이직하면 연봉이 깎일 텐데, 5년 뒤 개발자 연봉은?

지금 이직하면 연봉이 깎일 텐데, 5년 뒤 개발자 연봉은?

지금 이직하면 연봉이 깎일 텐데, 5년 뒤 개발자 연봉은? 퇴근길에 계산기를 켰다 지하철 안이다. 앉아서 폰 계산기를 켰다. 6200만원. 지금 연봉이다. PM으로 가면? 4500만원? 5000만원? 1700만원 차이다. 근데 5년 뒤는? 옆자리 사람이 쳐다봤다. 계산기에 숫자만 계속 쳐대고 있었나 보다. 폰을 내렸다.집에 와서 노트북을 켰다. 엑셀을 열었다. 시트 이름: "5년 계산.xlsx" 두 개 열을 만들었다.개발자 유지 PM 전환숫자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개발자 시나리오 2024년: 6200만원 (현재) 2025년: 6500만원 (올해 연봉 협상 예상치) 2026년: ? 여기서 막혔다. 상승할까? 정체될까? 하락할까? 작년에 채용 공고 100개 정도 봤다. 시니어 개발자. 6000~8000만원대. 작년이랑 별 차이 없었다. 근데 올해는? 공고를 열어봤다. 원티드, 로켓펀치, 점핏. 시니어 백엔드 개발자. 6000~7500만원. 작년이랑 비슷하다. 상한선이 약간 낮아졌나? 댓글을 봤다. "요즘 신입도 안 뽑는데", "우리 회사 동결", "주니어 짤림".블라인드를 열었다. "개발자 연봉 전망" 검색. 스레드를 10개쯤 읽었다. "GPT 나온 뒤로 주니어 TO 사라짐" "우리 회사 코파일럿 도입하면서 헤드카운트 축소" "시니어는 괜찮지 않아요?" "시니어도 3년 뒤엔 모름" 괜찮다는 댓글 찾았다. "시니어는 아키텍처 짜니까 필요함" "AI는 못 짜는 거 많음" "개발자 수요는 계속 늘어남"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근데 6개월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주니어가 GPT로 내 작업 하루 만에 끝내기 전까지는. 엑셀로 돌아갔다. 2026년: 6500만원 (동결 가정) 2027년: 6500만원 (유지) 2028년: 6000만원 (하락 시작?) 2029년: 5500만원 (...) 너무 비관적인가. 지웠다. 다시 썼다. 2026년: 6800만원 (약간 상승) 2027년: 7000만원 2028년: 7000만원 (정체) 2029년: 7000만원 5년 뒤 7000만원. 믿고 싶은 시나리오다. 근데 믿어지나? PM 시나리오 PM으로 전환하면. 경력 0년 취급이다. 개발 경력? 인정 안 해준다. 공고 보면 다 그렇다. "PM 경력 3년 이상" "프로덕트 오너 경험자 우대" 내가 넣을 수 있는 공고. "주니어 PM", "경력 무관". 연봉을 검색했다. "주니어 PM 연봉". 4000~5500만원. 1700만원 깎인다. 최소. 아내한테 말해야 하나. "여보, 연봉 1700 깎이는데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다. 나도 괜찮지 않다. 근데 5년 뒤는? 엑셀에 썼다. 2024년: 4800만원 (주니어 PM 시작) 2025년: 5200만원 2026년: 5800만원 2027년: 6500만원 (미드레벨) 2028년: 7200만원 2029년: 8000만원 (시니어) 5년 뒤 8000만원.희망적이다. 너무 희망적인가? PM 커뮤니티 들어갔다. "PM 연봉 상승률" 검색. 스레드를 읽었다. "3년 차에 7000 받아요" "5년 차 CPO 9500" "스타트업이면 스톡옵션도" 그래. PM은 상승 곡선이 가파르다. 천장도 높다. 근데 내가 PM을 잘할까? 잘하면 8000만원. 못 하면? 그냥 6000만원대에서 정체. 개발자랑 똑같다. 아니, 더 낮다. 개발 커리어는 버렸으니까. 계산기를 다시 켰다. 교차점을 찾다 두 시나리오를 겹쳐봤다. 개발자 유지: 5년 뒤 7000만원 PM 전환: 5년 뒤 8000만원 1000만원 차이. 근데 중간 과정을 보면. 1년 차: -1400만원 (PM이 낮음) 2년 차: -1300만원 3년 차: -700만원 4년 차: -300만원 5년 차: +1000만원 (PM이 높음) 4년 차에 역전된다. 그 전까지는 계속 손해다. 누적 손실을 계산했다. 5년간 개발자 총액: 3억 3500만원 5년간 PM 총액: 3억 1500만원 2000만원 손해다. 5년 동안. 근데 6년 차부터는? PM이 더 빠르게 오른다. 그래프가 그렇다. 희망적으로 그리면. 10년 뒤를 계산해봤다. 개발자: 7000만원 (정체) PM: 1억? 1억 2000? CPO까지 가면 그렇다. 안 가면? 지웠다. 변수: AI 이 계산엔 AI가 없다. AI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개발자 수요. 줄어든다. 확실하다. 주니어부터 시작해서. 주니어가 안 뽑히면 3년 뒤 주니어가 없다. 시니어만 남는다. 시니어들끼리 경쟁. 연봉 협상력 떨어진다. 그럼 내 7000만원 시나리오는? 6000만원으로 내려간다. 5500만원일 수도. PM은? AI가 기획을 할까? 못 한다. 아직은. GPT한테 물어봤다. "너 PRD 써줘". 쓴다. 근데 쓰레기다. 맥락이 없다. 사용자를 모른다. PM은 사람을 만나고, 데이터를 보고, 의사결정을 한다. AI는 그걸 못 한다. 아직은. 3년 뒤에도 못 할 것 같다. 5년 뒤는? 모르겠다. 근데 개발보다는 오래 걸린다. 계산기에 AI 변수를 넣었다. 개발자 (AI 고려): 2029년: 5500만원 PM (AI 고려): 2029년: 7500만원 2000만원 차이. 이게 맞나? 모르겠다. 근데 이게 내 베팅이다. 다른 사람 계산 블로그를 찾았다. "개발자에서 PM 전환". 5개 정도 읽었다. 한 명은 연봉 2000만원 깎이고 시작했다. 3년 뒤 원래 연봉 회복. 5년 뒤 1.5배. 한 명은 실패했다. PM 2년 하다가 개발자로 복귀. "내 적성이 아니었다". 한 명은 연봉은 비슷한데 만족도가 올랐다. "코딩보다 재밌다". 숫자는 다 다르다. 케바케다. 내 케이스는? 개발 6년 차. 코딩 실력 중상. PM 경력 0년. 열정은 있음. 성공 확률 몇 프로? 70%? 아니면 50%? 모르겠다. 로또는 아니다. 근데 확실한 것도 아니다. 엑셀에 시나리오를 하나 더 추가했다. PM 실패 케이스: 2029년: 5500만원 (PM으로 정체) 개발자 유지보다 낮다. 최악이다. 확률을 곱했다. PM 성공 (70%): 7500만원 PM 실패 (30%): 5500만원 기댓값: 6900만원 개발자 유지: 5500만원 기댓값으로는 PM이 낫다. 근데 30% 확률로 최악이다. 나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나? 집값 계산 아내랑 집을 사려고 한다. 3년 뒤쯤. 대출을 받으려면 소득이 있어야 한다. PM 전환하면 1년 차에 소득 감소. 대출 한도도 준다. 3억짜리 집. 대출 2억 필요. 개발자 연봉 6500만원: 대출 한도 2억 2000만원 PM 연봉 5000만원: 대출 한도 1억 8000만원 4000만원 차이. 집을 늦춰야 한다. 아니면 포기하거나. 아내한테 말했다. "PM 전환하면 집 늦춰질 수도 있어". "괜찮아. 천천히 하자". 고맙다. 근데 미안하다. 계산기를 다시 켰다. 집을 2년 늦추면. 그동안 전세 이자. 월 60만원. 2년이면 1440만원. 이것도 비용이다. PM 전환 총비용:연봉 감소 누적: 2000만원 집 구매 지연 비용: 1440만원 합계: 3440만원3440만원 투자해서 5년 뒤 더 높은 연봉. 회수 가능한가? 가능하다. 10년 보면. 근데 실패하면 3440만원 날린다. 나이 계산 지금 32살이다. PM 전환하면 33살에 주니어 PM. 35살에 미드레벨. 37살에 시니어. 37살 시니어 PM. 괜찮다. 개발자로 가면? 37살 시니어 개발자. 8년 차. 근데 37살 개발자 시장은? 지금 37살 개발자들 본다. 회사에 몇 명 있다. 연봉 7000~8000만원대. 팀장급. 근데 5년 뒤 37살 개발자는? AI 시대의. 모르겠다. 그때 가봐야 안다. 37살 PM은? CPO 트랙 타면 1억대. 숫자가 더 크다. 가능성이.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 전환해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주니어 시작이 어렵다. 35살에 주니어 PM? 힘들다. 32살은 ギリギリ괜찮다. 후회 계산 전환 안 하고 5년 뒤. 개발자로 7000만원 받는다. 안정적이다. 근데 매일 코파일럿 쓰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생각한다. 후회할 것 같다. '그때 전환할 걸'. 전환하고 5년 뒤. 실패해서 5500만원 받는다. 후회할 것 같다. '개발자 할 걸'. 어느 쪽 후회가 더 클까. 안 한 후회가 더 크다. 보통은. 시도하고 실패한 건 받아들인다. 안 하고 후회하는 건 평생 간다. 나는 어떨까? 모르겠다. 근데 요즘 회사 오면 재미가 없다. 코딩이 재미없다. GPT한테 시키고 검수하는 게 재미있나? 아니다. 기획 문서 쓸 때가 제일 재밌다. 사용자 생각하고, 플로우 짜고. 그럼 답은 나온 거 아닌가? 근데 돈이다. 3440만원이다. 최종 계산 노트에 정리했다. 개발자 유지:안정적 6500만원 5년 뒤 불확실 재미 없음 후회 가능성 높음PM 전환:1700만원 감소 5년 뒤 높은 상승 가능성 재미 있을 것 같음 실패 리스크 30%숫자만 보면 애매하다. 근데 숫자가 다가 아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 출근하기 싫다' vs '오늘 뭐 하지?' 이게 5년이면 1825일이다. 하루에 만원씩 차이 나면 1825만원이다. 행복도 계산하면 PM이 이긴다. 내 경우엔. 근데 확실한가? 확실하진 않다. 결론 대신 엑셀을 닫았다. 계산기를 닫았다. 답은 안 나온다. 숫자로는. 근데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 안 하면 평생 궁금해한다. '그때 PM 했으면 어땠을까?' 그 궁금증이 3440만원보다 비싸다. 다음 주에 이력서 넣는다. PM 공고 10개. 서류 떨어지면? 다시 10개 넣는다. 일단 시작한다. 계산은 여기까지다.숫자로 안 풀리면 그냥 해봐야 한다. 후회는 안 한 게 더 오래 남는다.

회의 때 기획자를 보면서 '저거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생각한 횟수

회의 때 기획자를 보면서 '저거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생각한 횟수

회의실에서 깨달은 것들 출근했다. 월요일 아침 10시. 데일리 회의. 개발팀이 만든 신규 기능에 대해 기획팀이 설명 중이었다. 로그인 플로우 개선 건이었나. 담당 기획자가 화면 흐름을 설명하는데, 첫 슬라이드에서 뭔가 이상했다. "어? 저건 사용자가 뒤로 가기를 누르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기획자가 한 박자 쉬었다. "아... 그건..." 그 다음은 개발 리드가 설명했다. 좋다.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이런 생각을 처음 한 건 3개월 전이었나. 지금은 거의 매 회의다.숫자로 세어본 것 지난주 회의만 해도 5번이었다. 5번. 월요일 스프린트 계획 회의에선 "이 기능 순서 이상한데요" 했고, 수요일 사용자 테스트 결과 리뷰에선 로그 분석으로 기획자 가설이 틀렸다는 걸 지적했다. 목요일 신입 기획자가 발표한 온보딩 플로우는 5초 만에 3개 버그를 찾았다. 사용자 관점으로 생각하면 명백했다. 첫 화면에서 필수 정보 입력을 했는데 다시 돌아오면 초기화된다? 나쁜 UX다. 그때마다 나는 발언했다. 자연스럽게. "저기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사용자 입장에선 이게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데이터로 봤을 때 이 가설은 검증이 필요해 보여요". 매번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생각했다. 나 지금 기획하고 있는 거 아니야? 지난달부터 슬랙에서 자발적으로 프로젝트 기획 문서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어떨까요?" 형식으로. 팀장이 대게 좋아했다. 나는 개발자인데 기획 문서를 쓰고, 그걸 읽고 받아들이는 것. 경계가 흐릿해졌다. 명확히는 이랬다. 코딩과 기획은 다른 근육인데, 요즘 난 기획 근육을 쓸 때가 더 재밌다는 거다. 세 가지 신호 신호 1: 로직 오류를 찾고 있다 회의 중에 발표되는 기능 플로우를 보면, 내 뇌는 자동으로 엣지 케이스를 찾는다. 사용자가 이걸 누르면? 인터넷이 끊기면? 중복 클릭하면? 뒤로 가기 버튼이라도 눌리면? 개발자로서 6년간 길들여진 습관이다. 모든 시나리오를 대비하는. 그런데 회의실에서 이걸 꺼내면, 기획자들이 못 본 구멍이 보인다. 그리고 그걸 지적할 때 뭔가 쾌감이 있다. 코드 리뷰할 때는 있는 쾌감. 근데 좀 다르다. 사람들이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다. 코드는 잘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 기획은 논리가 일관되는 게 중요하다. 둘 다 좋지만, 후자가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는 느낌이다. 신호 2: 사용자 흐름을 먼저 본다 기획 발표 자료를 보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UI 플로우다. 누가 어떻게 이 기능을 쓸 텐데, 그 사람이 느낄 경험이 좋을까? 라는 질문. 예전엔 이런 생각을 안 했다. 개발자일 때는 "이 로직이 구현 가능한가"가 먼저였다. 지금은 "이 흐름이 자연스러운가"가 먼저다. 와이어프레임을 보면서 "여기 한 스텝 더 줄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다. 피그마를 열어서 내가 직접 고쳐본다. 그리고 슬랙에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보낸다. 기획자 둘 다 좋다고 한다. 난 그걸 할 때 재밌다. 코드 짤 때보다 훨씬. 신호 3: 기획 이직공고를 본다 요즘 하루 종일 일을 하는데, 틈날 때마다 PM 이직 사이트를 본다. 연봉은? 요구 자격은? "기획 경력 3년 이상 또는 유사 경험". 여기서 뜨한다. 나는 유사 경험이 있나? 기술 회사에서 6년간 개발했다. 제품을 안다. 사용자 데이터도 본다. 스프린트 계획도 참여한다. 개발 팀장이 내 기획 문서를 "거의 PM 수준"이라고 했다. 그럼 될 거 아닐까? 서류를 넣어봤다. 4개 회사. 모두 탈락. 이유는 "보직 경험 부족". 신입처럼 봤다는 뜻이다. 그럼 내부에서 전환할까? 팀장한테 "제가 기획 역할 좀 더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봤다. "그럼 개발은?"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나요?" "음... 일단 현직무를 잘 하고."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아, 나 이 회사에선 절대 기획으로 안 가겠네.회의실에서 5번 본 것들 발표 1: 온보딩 플로우 (목요일) 신입 기획자가 만든 건데, 첫 화면은 휴대폰 번호 입력이었다. 그 다음이 인증 코드. 그 다음이 이름, 이메일, 나이, 직업. 매 화면마다 "다음" 버튼. 8 스텝. 8번 터치. 내가 손을 들었다. "혹시 한 화면에 관련 정보를 모아서 하면 안 될까요?" 기획자가 "그런데 모바일 화면은..." 했고, 난 노션을 켜서 와이어프레임을 그렸다. 휴대폰 인증 후 한 화면에 필수 정보 4개를 폼으로. 다음. 끝. 2 스텝. 회의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좋다고 했다. 기획자가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화이팅을 받았다. 그 느낌. 코드 리뷰에서는 거의 못 본 느낌. 누군가 내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걸로 무언가 더 나아진다는 느낌. 발표 2: 결제 플로우 (수요일) 기획팀이 신규 결제 방식을 설명했다. 사용자가 카드 등록 → 결제 진행 → 결과 확인. 좋아 보였다. 근데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혹시 결제 실패 케이스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사용자가 재시도하려면?" 기획자가 "아... 그건 개발팀이..." 했고, 난 "아니면 이렇게는 어떨까요?" 했다. 실패 화면에 "다시 시도" 버튼과 "다른 카드 등록" 옵션. 그리고 에러 메시지는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개발 리드가 "그게 훨씬 낫네"라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 지금 개발자로서 기획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기획자로서 플로우를 검토하고 있다. 발표 3: 추천 알고리즘 (월요일) 데이터 팀이 만든 추천 엔진을 기획팀이 발표했다. "사용자가 본 상품 기반으로 유사 상품을 추천합니다." 좋지만, 문제가 있었다. 추천 상품이 노출될 화면이 없었다. 기획 단계에서 "어디에 띄울 건데?"를 못 정한 거다. 나는 "상품 상세 페이지 하단에 '비슷한 상품' 섹션 어떨까요? 아니면 장바구니 페이지?" 했다. 기획자가 후자를 택했다. 사용자 입장에선 더 자연스럽다고. 내가 제안한 UI 패턴을 기획자가 채택했다. 이걸 할 때 기분이 좋다. 코드 리뷰보다. 발표 4, 5: 기타 등등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기획 문서를 보고 "여기 문제다", "여기 개선할 수 있다", "사용자가 이렇게 쓸 텐데"라고 말한다. 대부분 받아들여진다. 리더도, 기획팀도, 개발팀도. 그리고 매번 내 뇌는 같은 신호를 보낸다. "야 한기획, 넌 이게 더 재밌구나."AI가 제일 먼저 닿은 부분 재밌는 건 이거다. AI가 코딩은 잘하는데, 기획은 못한다는 거. 아직. GPT한테 "버그 고치는 코드 짜줘"라고 하면 60초 안에 나온다. 근데 "사용자가 헷갈릴 온보딩 플로우를 만들어줘"라고 하면? GPT가 "일반적인 온보딩은..." 하면서 대충한다. 개성이 없다. 데이터를 봐야 한다. 사용자를 봐야 한다. 우리 회사의 맥락을 알아야 한다. 그건 AI가 못한다. 아직. 그래서 요즘 생각이 이거다. 개발자는 5년 뒤 위험하다. AI가 너무 잘한다. 기획자도 10년 뒤 위험할 수도. 근데 지금 전환하면? 기획은 좀 더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이드로 프로젝트 하나를 온전히 기획해봤다. "개발자를 위한 작은 도구"를 만들 거면, 어떤 기능이 필요할까? 어떤 순서로 만들까? 누가 쓸까? 왜 쓸까? 그걸 문서로 정리하는 데 3일이 걸렸다. 코딩은 1주일 걸렸다. 그런데 재밌은 건, 기획할 때가 더 오래 집중했다는 거다. 뇌가 다르게 돌아갔다. 현실은 이렇고 좋은 생각들만 있는 건 아니다. 첫째, 연봉이다. 기획 신입으로 시작하면 4500~5200만원 대. 지금 6200만원에서 1000만원을 버린다. 아내는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지만, 숫자를 보면 다르다. 둘째, 경력이 없다. 아무리 회의에서 기획을 해봐도, 공식 경력은 0년이다. 서류도 떨어진다. 면접도 못 본다. 신입 취급. 셋째, 버릴 거다. 6년을 쌓은 개발 경험. 팀에서의 신뢰. "이건 한기획이 하면 잘하겠는데" 이런 이미지. 전환하면 0에서 다시다. 넷째, 까일 거다. 개발자 친구들은 "왜 그래?"라고 할 거고, 기획팀은 "개발자 주제에 뭐하냐"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 회사에서 개발에서 기획으로 간 사람이 "처음엔 개발팀에서 왕따였다"고 했다. 다섯째, 실패할 수도 있다. 기획이 내 성향에 안 맞을 수도 있다. 회의에서 본 것만 좋았고, 실제 일은 다를 수도. 연봉 깎이고, 경력도 없고, 실패하면? 다시 개발로? 그럼 늦는다. 그럼 이대로 개발자로 남을까? [IMAGE_4] 마지막 숫자들 지난주 회의에서 기획을 건넸던 횟수: 7번. 서류 탈락한 PM 지원: 4곳. 내부 전환 제안했을 때 답변: "현직무부터". 코딩 경력: 6년. 기획 경력: 0년 3개월(비공식). 차이나는 연봉: 1000만원~1500만원. 회의에서 기획 발표할 때의 쾌감 점수(10점 만점): 8. 코드 리뷰할 때의 쾌감 점수: 5. AI가 내 기획을 대체할 확률(10년 뒤): 40%. AI가 내 코딩을 대체할 확률(5년 뒤): 80%. 숫자로는 답이 안 나온다. 내일의 회의 내일 회의는 신규 피처 기획 리뷰다. 나는 또 다시 앉을 거고, 또 다시 발표를 볼 거고, 또 다시 "저거 틀렸는데"라고 생각할 거다. 그리고 또 다시 손을 들거나, 슬랙에 의견을 올릴 거다. 그리고 또 다시 같은 생각을 할 거다. "나 이거 해야 하나?" 그건 "나 이거 할 수 있나?"가 아니다. "나 이거 해야 하나?"다. 다르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일은 다르다. 근데 최근 몇 달을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쪽에 있는 것 같다. 그럼 언제 점프를 할까? 커피를 마셨다. 네 번째다.회의실에서 "저거 내가 할 수 있겠는데"는 신호였고, 지금 그 신호가 패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