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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Dec, 2025
AI 시대에 개발자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중이다
6년이 무너지는 속도 아침 9시. 출근했다. 슬랙 켰다. 주니어한테 메시지 왔다. "한기획님, 어제 말씀하신 API 만들었어요. 검토 부탁드려요." 어제 오후 5시에 요청한 거다. 내 예상은 이틀이었다. 코드 열어봤다. 깔끔하다. 에러 핸들링도 있다. 테스트 코드도 있다. "빨리 했네?" "GPT한테 물어봤어요. 30분 걸렸어요." 30분. 나는 6년 전에 이거 배우는 데 3개월 걸렸다.점심 먹으면서 생각했다. 저 주니어는 나만큼 실력 늘까? 아니, 실력이 뭔데? 퇴근길 지하철. 개발자 커뮤니티 봤다. "요즘 코딩 인터뷰 의미 있나요?" 댓글 200개. 절반은 "GPT 시대에 알고리즘 외울 필요 없다" 절반은 "기본기 없으면 GPT도 못 쓴다" 둘 다 맞는 말 같은데. 둘 다 틀린 말 같은데. 자존감의 근거가 사라진다 나는 개발자로 6년 먹고살았다. 연봉 6200만원. 동기들보다 많이 받는다. 부모님께 자랑했다. "아들 잘됐어요." 그 자랑의 근거는 뭐였나. "남들이 못하는 거 나는 한다." "코드를 쓴다. 서비스를 만든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을 이해한다." 지난주 금요일. CTO가 전체 회의에서 말했다. "앞으로 개발 생산성 3배 높일 겁니다." "GitHub Copilot 전사 도입합니다." 월요일부터 써봤다. 함수 이름 쓰면 본문이 자동 완성된다. 주석 쓰면 코드가 나온다. 내가 쓰려던 거 90% 맞춘다. 화요일. 코딩하다가 멈췄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AI가 쓴 코드 읽고 엔터 치는 거? 수요일. GPT한테 물었다. "FastAPI로 인증 시스템 만들어줘. JWT 쓰고, Redis 캐싱하고." 3분 만에 완성본 나왔다. 내가 3일 걸릴 거. GPT는 3분. 1440배 빠르다.목요일 저녁. 아내한테 말했다. "나 6년 동안 뭐 한 거 같아?" "무슨 소리야. 잘하고 있잖아." "잘한다는 게 뭔데. AI가 나보다 잘하는데." 아내는 마케터다. "마케팅도 AI 쓰는데. 근데 일은 사람이 하잖아." "개발은 다른 거 같아. 진짜 AI가 대체할 거 같아." 금요일. 팀장이 1:1 면담 신청했다. "요즘 힘들어 보여요." "아뇨. 괜찮습니다." "코드 리뷰 횟수가 줄었어요. 바쁜가요?" "아니요. 그냥... 예전보다 검토할 게 적어서요." 팀장은 눈치챘을 거다. 내가 정체성 잃어가는 거. 숫자로 증명되는 퇴색 Stack Overflow 트래픽 30% 감소. 작년 대비. 개발자들이 안 간다. GPT한테 물어본다. 내 검색 기록 봤다. 작년 1월: Stack Overflow 방문 120회 올해 1월: 18회 내 Cursor 에디터 사용 기록. 하루 평균 AI 코드 제안 수용: 87회 직접 작성: 43회 비율: 67% 6년 전 내 GitHub 커밋. 일주일에 평균 23개. 지금: 9개. 커밋 메시지도 짧아졌다. "fix", "update", "AI suggestion applied"도망치듯 기획으로 3개월 전부터 PM 책 읽는다. "인스파이어드", "크래킹 더 PM 인터뷰", "프로덕트 매니저 실무 가이드" 벌써 10권. 노션에 기획 포트폴리오 만들었다. 회사 프로젝트 중 하나 골라서. "만약 내가 PM이었다면" 시리즈. 사용자 플로우 그렸다. PRD 썼다. KPI 정의했다. 재밌었다. 코딩보다 재밌었다. 근데 이게 도망인가? 아니면 전환인가? 개발자 친구한테 말했다. "나 PM 준비하는 중이야." "미쳤어? 개발자가 얼마나 좋은데." "AI가 다 하잖아." "그래도 검수는 사람이 해야지." 검수. 검수라니. 나는 창조자였는데. 이제 검수자가 되는 건가. PM 하는 대학 동기한테 물었다. "개발자에서 PM 전환 어때?" "좋지. 너는 기술 이해하니까 유리해." "연봉은?" "처음엔 깎일 거야. 근데 5년 보면 괜찮아." 5년. 5년 뒤에 PM도 AI한테 밀리면? 그건 생각하기 싫다. 무너지는 게 나만은 아니다 커뮤니티 글 봤다. "8년 차 개발자인데 주니어랑 생산성 차이 안 나요" 공감 댓글 300개. "요즘 코딩 면접 볼 때 AI 사용 허용하나요?" 논쟁 500개. "개발자 채용 공고 줄었죠?" 통계 링크 달렸다. 작년 대비 신입 채용 40% 감소. 블라인드 들어갔다. "AI 시대 개발자 커리어 어떻게 준비하세요?" 답변들:"풀스택 + DevOps 공부 중" "도메인 전문성 쌓기" "AI 엔지니어로 전환" "솔직히 모르겠음"마지막 답변에 좋아요 제일 많다. 다들 모른다. 나만 불안한 게 아니다. 그게 위로가 되나? 안 된다. 남은 건 뭔가 주말에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 시작했다. "AI 시대 개발자 커리어 전환 플랫폼" 아이러니하다. AI 때문에 불안한데 AI 써서 만든다. 기획부터 했다. 타겟 유저: 3년 이상 개발자 페인 포인트: 기술 퇴색 불안, 전환 방향 모름 솔루션: 경험자 인터뷰, 전환 로드맵, 포트폴리오 템플릿 PRD 쓰는 데 4시간 걸렸다. 재밌었다. 코딩은 GPT한테 시켰다. 2시간 만에 MVP 나왔다. 비율이 역전됐다. 예전엔 기획 1시간, 코딩 20시간. 지금은 기획 4시간, 코딩 2시간. 이게 미래 아닐까?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사람. "어떻게 만들지"는 AI가. 그럼 나는 "무엇을" 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게 PM이다. 그게 기획자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이것도 확신은 없다. GPT한테 물어봤다. "기획도 AI가 대체할 수 있어?" 답변: "부분적으로 가능합니다. 데이터 분석 기반 의사결정, 사용자 플로우 설계, PRD 초안 작성 등은 AI가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해관계자 조율, 전략적 우선순위 결정, 조직 내 정치 등은..." 읽다가 껐다. "다만" 뒤에 나오는 것들. 그것들이 얼마나 오래 갈까. 정체성이란 게 개발자 정체성. 6년 동안 그게 나였다. 명함에 "백엔드 개발자" 링크드인 헤드라인 "Python Developer" 자기소개 "코드 쓰는 사람입니다" 이제 그게 뭔지 모르겠다. 코드 쓰는 사람? AI가 쓴 코드 검수하는 사람? GPT한테 좋은 질문 던지는 사람? 어제 팀 회식. 신입이 물었다. "선배님은 왜 개발자 되셨어요?" "음... 뭔가 만드는 게 좋아서?" "저도요! AI 덕분에 더 많이 만들 수 있어서 좋아요." 그 말에 아무 말 못 했다. 신입은 순수했다. 나는 냉소적이었다. '넌 아직 모르는구나. 네가 만드는 게 아니라 AI가 만드는 거라는 걸.' 근데 그게 맞나? GPT가 없으면 나도 못 만든다. 예전엔 스택오버플로우 없으면 못 만들었다. 그 전엔 책이 없으면 못 만들었다. 도구가 바뀐 건가? 아니면 본질이 바뀐 건가? 밤에 아내한테 물었다. "정체성이 뭐라고 생각해?" "왜 갑자기?" "내가 개발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개발자지. 회사 다니잖아." "그게 아니라 진짜로."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문제 해결하는 사람이잖아. 코드로 하든 기획으로 하든. 그게 정체성 아니야?" 그 말이 위로가 됐나? 잘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또 불안하다.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월급은 들어온다. 6200만원. 12로 나누면 516만원. 세전이다. 동기 중에 가장 많이 받는다. 자랑이었다. 이제는 불안이다. '이게 얼마나 갈까?' 채용 공고 검색했다. "시니어 백엔드 개발자" 작년 이맘때: 120개 지금: 73개 39% 감소. "프로덕트 매니저" 작년: 45개 지금: 58개 29% 증가. "AI Engineer" 작년: 12개 지금: 89개 641% 증가. 숫자는 명확하다. 시장이 말한다. "순수 개발자는 줄인다." "AI 다룰 줄 아는 사람 뽑는다." "만들 사람보다 방향 정할 사람 뽑는다." 내 이력서 봤다. "Python, Django, FastAPI, AWS" "RESTful API 설계 및 구현" "대용량 트래픽 처리 경험" 이제 이게 무기가 아니다. GPT도 한다. 주니어도 한다. 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PM 이력서 만들어봤다. "기술 이해도 높은 PM" "개발 경험 6년, 기획 전환" "사용자 중심 프로덕트 설계" 근데 경력란에 쓸 게 없다. "PM 경력 0년" 지원했다. 5곳. 서류 탈락. 5곳. "기획 경력 3년 이상 우대" 우대가 아니라 필수다.6년이 무너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도망일지 전환일지 아직 모르겠지만, 멈춰있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