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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나
- 09 Dec, 2025
개발팀에서 '쟤 기획 가려나 봐' 소문 나면 어쩌지 불안증
조용히 준비하던 게 들킨 것 같다 오늘 팀장이 말을 걸었다. "한기획님, 요즘 기획팀 회의에 자주 참석하시네요?" 웃으면서 물었는데 왜 등골이 서늘했을까. "아 네, 그냥 업무상 필요해서요." 대충 얼버무렸다. 팀장 눈빛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 옆자리 동료가 물었다. "형, PM 되려고 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해?" "아 그냥요. 요즘 기획 문서 자주 쓰시길래." 조용히 준비하던 건데. 들켰다.신경 쓰이기 시작한 시선들 회의 때 내가 기획 의견을 내면.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오 한기획님 요즘 기획 마인드 좀 생기셨네요?" 누가 농담처럼 말한다. 다들 웃는다. 나도 웃는다. 근데 웃으면서 생각했다. '쟤네 나 기획팀 가려는 거 알고 있나?' 코드 리뷰 할 때도 그렇다. "이 부분 사용자 관점에서 보면요..."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 끼어든다. "앗 PM 같으시네~" 농담이다. 근데 왜 자꾸 신경 쓰이지. Slack에서 기획팀 채널에 반응 달았다. 개발팀 채널에서 누가 캡쳐해서 올렸다. "우리 한기획님 기획팀도 모니터링 중" 이모지 반응 10개. 웃긴 거 같은데. 웃기지 않다. 팀에서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해졌다 6개월 전만 해도 신경 안 썼다. '내 커리어인데 뭐 어때.' 그랬다. 근데 매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팀장, 시니어, 동료들. 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가. 갑자기 중요해졌다. 배신자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개발자로 받아놓고 기획 가려고?' 이렇게 생각하면 어쩌지. 아니면 실력 없어서 도망간다고 생각하나. '코딩 못 해서 기획으로 도피하는 거 아냐?' 이런 소리 뒤에서 하면. 스탠드업 미팅 때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이 기능 기획이 좀..." 이렇게 말하다가 멈췄다. '또 기획 타령하네' 이럴 것 같아서.조용히 준비하던 게 들키면 생기는 일들 실제로 몇 가지 변했다. 프로젝트 배정이 달라졌다. "한기획님은 이번 건 빠지셔도 될 것 같은데요?" 팀장이 말했다. "아 장기 프로젝트라서요. 혹시 이직하실 수도 있으니까." 이직이라고는 안 했다. 기획 전환이라고도 안 했다. 근데 다 안다. 동료가 코드 리뷰 요청을 덜 보낸다. "형 바쁘실 것 같아서요." 뭐가 바빠. 나 아직 개발자인데. 팀 회식 때도 느낀다. "한기획님은 다음 분기까지 계실 거예요?" 술 마시면서 누가 물었다. "왜요? 전 계속 있을 건데." "아 그냥요. 혹시 기획팀으로..." 말이 흐려진다. 다들 알고 있다. 내가 뭘 준비하는지.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환 실패 후 가장 무서운 건 이거다. 기획 전환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다시 개발팀으로 돌아오면. 그때 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역시 안 되더라고? 개발이나 하지.' 이렇게 생각하면. 매일 출근하는 게 지옥일 것 같다. 서류에서 떨어지면. "이번엔 안 됐어요." 팀에 말해야 한다. "계속 여기서 일할게요." 민망하다. 상상만 해도. 면접에서 떨어지면 더 심하다. "기획 경력이 없으셔서요." 이 말 듣고 돌아와서. 개발 업무 다시 하면. 동료들 눈빛이. '그래서 다시 왔구나.' 이럴 것 같다. 차라리 조용히 이직하는 게 나았을까. 전환 성공하고 나서 말하는 게. 더 나았을까.그래도 준비는 계속한다 소문 났으면 어쩔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졌다. 숨기느라 에너지 쓸 필요 없으니까. 기획 문서도 당당하게 쓴다. "이거 제가 한번 정리해봤는데요." 회의에서 공유한다. 어차피 다 안다. PM 책 읽는 것도 숨기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카페에서 읽는다. '프로덕트 오너십' 책 표지 보인다. 동료가 지나가면서 본다. "공부하시네요?" "네 요즘 관심 있어서요." "오 좋네요. 화이팅!"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다. 적어도 절반은 응원한다. "저도 전에 그런 생각 했었어요." "하고 싶은 거 하세요." 팀장도 결국 알게 됐다. 정확히는 내가 말했다. "사실 PM 전환을 준비 중입니다." "아 그렇구나. 잘 생각하셨어요. 개발자 출신 PM 좋죠." 악수해줬다. "준비 기간 동안 업무 조정 필요하면 말해요." 생각보다 세상은. 내 편이었다. 소문의 역설 소문 났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기획팀에서 먼저 연락 왔다. "한기획님 기획 관심 있으시다면서요?" "사이드로 프로젝트 하나 같이 해보실래요?" 개발팀 시니어가 조언해줬다. "나도 5년 전에 고민했었어. 결국 개발 계속했지만." "네 선택 존중해. 근데 서두르지는 마." HR에서도 면담 제안 왔다. "커리어 전환 관심 있으시다고요?" "내부 이동 프로그램 있어요." 소문이 기회가 됐다. 숨기고 있었으면. 이런 것들 몰랐을 것이다. 아내한테 말했다. "팀에서 다 안 것 같아." "그래서?" "생각보다 괜찮아." 아내가 웃었다. "네가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항상 안 일어나잖아." 맞다. 내 머릿속 상상이. 제일 무서웠던 거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 여전히 불안하다. 소문 난 건 사실이고. 실패하면 민망한 것도 사실이다. 근데 이제 돌아갈 수는 없다. 팀이 알고 있으니까. 내가 말했으니까. 오히려 책임감이 생겼다. '이제 진짜 해야겠다.' '중도 포기는 더 민망하다.' 이력서 다시 쓴다. PM 포지션으로. 개발 경력 6년을 어떻게 어필할지. 포트폴리오도 만든다. 노션에 기획했던 문서들 정리.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서도 추가. 링크드인 프로필도 수정. "Product Manager 지망" 이렇게 써놨다. 팀 채널에서 누가 물었다. "와 진짜 하시네요?" "네 진짜 합니다." 댓글 몇 개 달렸다. 응원 이모지들. "화이팅!" "잘 되길 바래요." 악플은 없었다. 내가 걱정했던. '도망간다', '실력 없다'. 그런 말 하는 사람 없었다. 결국 내 머릿속에만 있던 거다.소문 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소문이 날수록 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