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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전환
- 03 Dec, 2025
기획 경력 0년인데 PM 공고는 '3년 이상'만 있네요
기획 경력 0년인데 PM 공고는 '3년 이상'만 있네요 오늘도 서류 탈락 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메일함 확인했다. 어제 넣었던 PM 포지션 지원. "귀하의 지원에 감사드립니다만..." 탈락이다. 이번 주만 세 번째다. 샤워하면서 생각했다. 개발 6년 했는데 왜 기획 서류도 못 뚫을까. 학벌도 나쁘지 않고, 대기업은 아니어도 중견 플랫폼 회사 다니는데. 프로젝트도 여러 개 했고, 서비스 로직도 다 안다. 근데 공고는 죄다 '기획 경력 3년 이상'. 좀 낮은 데는 '2년 이상'. 신입 PM 공고는 거의 안 보인다. 있어도 '스타트업, 연봉 협의(대충 많이 깎인다는 뜻)'. 출근길 지하철에서 또 검색했다. "개발자 PM 전환", "개발자 출신 기획자". 블로그 후기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현재 회사에서 서서히 기획 업무 맡았어요", "사내 이동 했어요". 그게 안 되니까 고민인데.6년이 0년 된다는 게 점심시간에 채용공고 10개 더 봤다. PM, PO, 서비스 기획자. 다 똑같다. "자격 요건: 서비스 기획 경력 3년 이상". 우대사항에 "개발 백그라운드 보유 시 우대". 그래서 넣으면 탈락이다. 경력 0년이니까. 개발 6년은 카운트가 안 된다. 내가 설계한 API가 몇 개인데. 데이터베이스 구조 짜고, 서비스 로직 짜고, 배포 파이프라인 만들고. 이게 기획이랑 뭐가 다른데. 아 다르긴 하지. 기획은 와이어프레임 그리고, PRD 쓰고, 이해관계자 조율하고. 나도 안다. 책으로 10권 읽었으니까. 근데 실무 경력이 없다. 그게 문제다. 동료 개발자한테 넌지시 물어봤다. "너 혹시 PM 하고 싶다는 생각 해봤어?" "왜? 너 하려고?" "아니 그냥." "개발이 낫지. PM은 욕만 먹잖아. 개발팀한테도 욕먹고 경영진한테도 욕먹고." 맞긴 하다. 근데 내가 보기엔 PM이 개발자보다 덜 대체될 것 같은데. AI한테. 사내 이동은 불가능 우리 회사 PM팀은 5명이다. 다들 경력 5년 이상. 대부분 다른 회사에서 기획자로 경력 쌓고 왔다. 3개월 전에 CTO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봤었다. "PM 쪽도 관심 있는데, 사내 이동 가능할까요?" "지금 개발팀도 사람 부족한데 왜?" "AI 시대에 개발자 역할이 어떻게 변할지 고민돼서요." "한기획씨 실력이면 괜찮을 건데. 요즘 시니어 개발자 구하기도 어려워. 그리고 PM 쪽은 지금 인원 충분해." 그게 3개월 전이다. 지금은 더 물어볼 수가 없다. 부서 이동 얘기 꺼내면 '쟤 나갈 생각하나 봐' 소문난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 회사 PM 포지션은 별로 매력 없다. 연봉도 개발자보다 낮고, 승진도 더 막혀 있다. 차라리 이직하면서 전환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근데 이직은 더 막막하다. 경력 0년이니까.주니어 PM 공고의 함정 주니어 PM 공고를 찾았다. 정확히는 '경력 1년 이상'. 요구사항 읽어봤다. "사용자 리서치 경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경험", "와이어프레임 툴 능숙(Figma, Sketch 등)", "SQL 활용 가능자", "애자일 방법론 이해". SQL은 한다. 개발자니까. 피그마도 좀 만져봤다.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하면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도 해봤다. A/B 테스트 결과 보고 기능 수정한 적 있다. 근데 "기획 경력 1년 이상"에서 걸린다. 자기소개서에 뭐라고 쓰지? "개발하면서 기획 마인드를 가지고 일했습니다"? 너무 뻔하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부터 개발까지 해봤습니다"? 그건 개발자 누구나 하는 건데. 연봉도 문제다. 이 공고는 "3000~4000만원". 지금 6200만원 받는데 거의 반 토막이다. 아내한테 말했다. "PM으로 가려면 연봉 많이 깎일 것 같아." "얼마나?" "한 2000만원?" "...그래도 네가 하고 싶으면 해." 고맙긴 한데, 현실적으로 2000만원 차이는 크다. 전세 대출 이자만 월 80만원이다. 개발자 출신 PM의 역설 유튜브에서 개발자 출신 PM 영상 봤다. 10만 조회수 넘는 거. "개발자 출신이 PM 하면 좋은 점: 1) 개발팀과 소통 원활, 2) 기술적 제약 이해, 3) 데이터 분석 능력". 다 맞는 말이다. 나도 그래서 PM 하고 싶은 건데. 댓글 읽어봤다. "근데 어떻게 전환하셨어요?" 질문 엄청 많다. 유튜버 답변: "저는 현재 회사에서 서서히 기획 업무를 맡으면서 전환했어요." 또 그 답이다. 다른 영상도 봤다. 네이버 출신 PM. "저는 주니어 때부터 기획 문서를 적극적으로 작성했고, 팀장님께 기획 쪽 관심 있다고 어필했어요. 그러다 PM 포지션 생겼을 때 바로 지원했죠." 대기업이니까 가능한 얘기다. 스타트업 PM 인터뷰도 봤다. "저는 스타트업 창업했다가 접고, 그 경험으로 PM이 됐어요." 창업까지 해야 하나. 역설이다. PM 되려면 PM 경력이 필요한데, PM 경력 쌓으려면 PM이 돼야 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기획 포트폴리오 만들기의 민망함 주말에 노션 켰다. 기획 포트폴리오 만들기로 했다. "프로젝트 1: 쇼핑몰 개선 기획안". 현재 회사 서비스 분석해서 개선안 만들어보는 거다. 실제로 실행은 안 되지만. 문제 정의부터 썼다. "현재 장바구니 이탈률 37%". 데이터는 사내 대시보드에서 몰래 봤다. "경쟁사 대비 10% 높은 수치". 해결 방안 작성했다. "1단계: 장바구니 UI 개선. 2단계: 추천 알고리즘 도입. 3단계: 쿠폰 전략 수정". 와이어프레임도 그렸다. 피그마로. 3시간 걸렸다. 개발자 눈에 보기에도 괜찮다. 근데 이걸 이력서에 어떻게 쓰지? "개인 프로젝트로 기획안 작성"? 면접관이 보면 "실행은 안 해봤네요" 할 거다. 좀 민망하다. 6년차가 포트폴리오 만드는 것도 그렇고. 실무 경험이 아니라 연습 프로젝트인 것도. 신입 개발자 때 코딩 포트폴리오 만들던 게 생각났다. 그때도 민망했었다. "투두 리스트 앱", "날씨 앱". 지금 보면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걸로 취직했었다. 지금도 그때처럼 해야 하나. 32살에. 에이전시 PM은 어떨까 개발자 커뮤니티에 글 올렸다. "개발자에서 PM 전환하신 분 계신가요?" 답글 몇 개 달렸다. "저 전환했어요. 근데 에이전시로 갔습니다. SI 같은 데요. PM 경력 쌓기엔 괜찮아요." 에이전시. 생각 못 해봤다. 검색해봤다. 개발 에이전시, IT 컨설팅 회사. PM 공고가 꽤 있다. "경력 무관", "개발 경험자 우대". 공고 하나 자세히 읽었다. "클라이언트 요구사항 분석, 프로젝트 일정 관리, 개발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을 것 같다. 연봉은 "4000~5500만원". 지금보다 낮지만, 주니어 PM 치곤 나쁘지 않다. 근데 에이전시 PM은 진짜 PM인가? 후기 찾아봤다. "에이전시는 PM이 아니라 그냥 개발 일정 관리자예요. 진짜 기획은 클라이언트가 하고." 다른 후기: "에이전시에서 1년 경력 쌓고 인하우스로 이직했어요. 나쁘지 않은 루트." 징검다리로는 쓸 만할 것 같다. 근데 인생을 우회하는 기분이다. 개발 6년 했는데, PM 경력 쌓으려고 또 우회로로. 현실적 계산 엑셀 켰다. 시뮬레이션 돌려봤다. 시나리오 1: 개발자 유지현재 연봉: 6200만원 5년 뒤 예상: 8500만원 (연 7% 상승) 리스크: AI 대체로 연봉 상승률 둔화 가능성. 또는 일자리 감소.시나리오 2: PM 전환 (에이전시)1년차 연봉: 4500만원 (1700만원 감소) 2년차 인하우스 이직: 5500만원 5년 뒤 예상: 7500만원 손실: 5년간 누적 약 5000만원시나리오 3: 개발자 유지하며 준비현재 연봉 유지하며 기획 스터디 사내에서 기회 엿보기 기회 오면 전환 리스크: 기회가 안 올 수도. 시간만 흐를 수도.숫자로 보니까 더 막막하다. 5000만원 차이면 전세 대출 다 갚는 돈이다. 근데 5년 뒤 개발자 연봉이 정말 8500만원일까? AI가 주니어 개발자 다 대체하면, 시니어한테 몰빵할까? 아니면 시니어도 연봉 깎일까? 확실한 건 없다. 그냥 불안하다. 아내와의 대화 저녁 먹으면서 아내한테 또 말했다. "나 진짜 PM 해볼까 봐." "응, 좋아." "근데 연봉 많이 깎여." "알아." "2000만원 정도. 처음엔." "음..." 아내가 젓가락 놓았다. "근데 오빠, 5년 뒤를 생각해봐. PM 해서 행복할 것 같아? 개발 계속하면서 불안할 것 같아?" "...둘 다 불안해." "그럼 덜 불안한 쪽." "PM이 덜 불안할 것 같긴 해. AI한테 덜 대체될 것 같아서." "그럼 하는 거지 뭐." "근데 돈이." "나도 일하잖아. 2000만원 정도는 버틸 수 있어. 1~2년 정도는." 고마운데, 미안하다. 내가 번 돈으로 아내 연봉 보충해주고 싶었는데. 거꾸로 됐다. "그리고 오빠 요즘 코딩할 때 표정 안 좋아." "...그래?" "응. 재미없어 보여. 예전엔 즐거워했는데." 맞다. 요즘은 코딩이 재미없다. GPT한테 시키고, 복붙하고, 수정하고. 내가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기획 문서 쓸 때가 제일 재밌다. 사용자 시나리오 그리고, 기능 정의하고. 그게 더 창의적이다. PM 경력의 대안들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제 PM 영상만 추천한다. "개발자 없이 PM 되는 법" 영상 봤다. 방법 1: MBA 가기. 돈도 시간도 없다. 패스. 방법 2: 프로덕트 부트캠프. 12주 과정에 500만원. 수료하면 "프로덕트 매니저 준비 완료" 자격증? 근데 이게 실무 경력으로 인정될까? 방법 3: 스타트업 창업 후 피봇. 실패해도 경험은 남는다. 근데 실패 확률 90%. 현실적이지 않다. 방법 4: 프리랜서 PM. 작은 프로젝트 몇 개 하면서 경력 쌓기. 크몽, 숨고 같은 데서. 이건 좀 가능할 것 같다. 크몽 들어가봤다. "앱 서비스 기획서 작성해드립니다" 20만원. "PRD 문서 작성" 30만원. 리뷰 읽어봤다. "전문적이에요", "개발자와 소통 잘 되게 작성해주셨어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발자니까 개발팀 관점도 알고. 주말에 해볼까? 월 1~2건만 해도 용돈벌이 되고, 포트폴리오도 쌓인다. 근데 이것도 "기획 경력"으로 인정될까? 면접관이 보면 "프리랜서로 조금 해봤네요" 정도 아닐까. 코딩하는 PM vs 기획하는 개발자 회사에서 기획자랑 회의했다. 신기능 개발 건. 기획자가 PRD 공유했다. 읽어보니까 로직이 이상하다. "결제 실패 시 자동으로 재시도" 부분. "이거 무한 루프 될 수 있는데요." "아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재시도 횟수 제한하고, 시간 간격 둬야죠." "아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문서 수정할게요." 이런 거 보면 개발자 출신 PM이 유리하긴 하다. 기술 로직을 이해하니까. 근데 우리 회사 PM들은 반대다. 기획은 잘하는데 기술 이해도가 낮다. 그래서 개발팀이 자주 짜증낸다. "이거 기술적으로 안 돼요" 말하면, "왜 안 되는데요?" 한다. 내가 PM 되면 그런 건 안 할 텐데. 근데 생각해보면, 난 지금 "기획하는 개발자"다. 코딩도 하고 기획 마인드도 있고. 이게 좋은 포지션 아닐까? 아니다. 이건 직무가 아니다. 그냥 업무 스타일일 뿐. 직무는 개발자다. 경력도 개발자로만 쌓인다. 5년 뒤에도 "기획 마인드 있는 개발자"로 남을 거다. PM은 못 된다. 경력이 없으니까. 3년 경력의 벽 채용공고 100개 분석해봤다. PM, PO, 서비스 기획자.경력 3년 이상: 68% 경력 2년 이상: 18% 경력 1년 이상: 9% 경력 무관: 5%경력 무관은 대부분 스타트업. 연봉 낮고, 복지 없고, 야근 많고. 왜 3년일까? PM 커뮤니티에서 물어봤다. "왜 PM 공고는 죄다 3년 이상인가요?" 답글: "3년이면 프로젝트 처음부터 끝까지 2~3번 해본 거니까요. 문제 해결 경험이 쌓여 있어요." 다른 답글: "실무에서 PM은 시행착오 겪을 여유가 없어요. 바로 투입돼서 성과 내야 하니까 경력자 뽑죠." 또 다른 답글: "솔직히 주니어 PM 키울 여력 없어요. 스타트업도 시니어 PM 원하고." 결론: PM은 주니어를 안 뽑는다. 다들 경력자를 원한다. 그럼 경력은 어디서 쌓나? 답이 없다. 개발자는 그나마 낫다. 주니어 개발자 공고 많다. 부트캠프 나와서 취업하는 사람도 많다. 6개월 공부하면 취직 가능하다. PM은 부트캠프 나와도 취직 안 된다. 실무 경력을 원하니까. 실험: 경력 조작해보기 나쁜 생각이 들었다. 이력서에 "기획 경력 2년" 이렇게 써볼까? 개발하면서 기획 업무도 했다고. 실제로 PRD도 썼고, 회의도 주도했고. 거짓말은 아니지 않나? 근데 이건 경력 사기다. 면접에서 걸린다. "어떤 프로젝트에서 PM 하셨어요?" 물어보면 대답 못 한다. 레퍼런스 체크하면 더 문제다. "이 사람 개발자였는데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냥 정직하게 가자. 근데 정직하게 가면 서류 탈락이다. 무한 루프. 링크드인 실험 링크드인 프로필 수정했다. 기존: "Backend Developer | Python, Django, AWS" 수정: "Backend Developer transitioning to Product Management | 6 years of development experience with product mindset" 자기소개도 수정했다. "Seeking opportunities to leverage my technical background in a PM role." 이력 부분에 기획 관련 항목 추가했다. "- Led product requirement discussions for 3 major features" "- Created PRDs and user stories for development team" "- Collaborated with design and business teams on product strategy"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했다. 횟수는... 부풀렸지만. 저장하고 기다렸다. PM 리쿠르터가 연락 올까? 일주일 지났다. 리쿠르터 연락 0건. 조회수만 좀 늘었다. 링크드인도 소용없다. 결국 경력이 문제다. 현타의 순간 어제 GPT한테 물어봤다. "개발자가 PM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GPT 답변: "1. 현재 회사에서 기획 업무 경험 쌓기 2. 사이드 프로젝트로 PM 역할 해보기 3. PM 관련 자격증 취득 4. 네트워킹으로 기회 찾기 5. 주니어 PM 포지션 지원" 다 아는 얘기다. 책에도 나오고, 블로그에도 나온다. 근데 실제로는 안 된다. 1번은 회사가 허락 안 한다. 2번은 포트폴리오로 인정 안 된다. 3번은 자격증이 경력 대체 안 된다. 4번은 인맥이 없다. 5번은 주니어 PM 공고가 없다. AI한테 다시 물어봤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은데?" GPT: "경력 전환은 쉽지 않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기회가 올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위로는 고맙지만, 해결책은 아니다. 모니터 끄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개발도 애매하게 하고, 기획도 애매하게 준비하고. 6년 경력은 리셋되고, PM 경력은 0년이고. 32살. 이럴 나이가 아닌데. 그래도 준비는 한다 주말에 노션 다시 켰다. 기획 포트폴리오 계속 만들기로 했다. 민망해도, 효과 없어 보여도, 할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다. "프로젝트 2: 배달앱 사용자 이탈 분석 및 개선안". 공개 데이터 찾아서 분석하고, 개선 방안 제시하는 거다. "프로젝트 3: AI 기능 추가 기획". 요즘 트렌드니까. GPT API 활용한 기능 기획. 크몽에도 프로필 만들었다. "개발자 출신 기획자, PRD 작성해드립니다". 가격은 일단 15만원으로 낮게 잡았다. 주문 들어올까? 모르겠다. 일단 올렸다. 링크드인에서 PM들 팔로우했다. 10명. 가끔 댓글 달면서 존재감 어필할 생각이다. PM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슬랙, 디스코드. 아직은 조용히 글만 읽는다. 효과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안 하면 더 후회할 것 같다. 6년이 의미 없는 게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개발 6년이 정말 의미 없나? 아니다. PM 할 때 무기가 된다. 개발자 출신 PM의 강점:기술 로직 이해도 높음
- 03 Dec, 2025
아내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했지만, 부모님은 '개발자 좋은 거 아니야?'라고 하셨다
아내와의 대화 저녁 먹고 설거지하면서 말했다. "나 기획으로 갈까 봐." 아내가 그릇 닦다가 손을 멈췄다. 3초 정도. "왜?" "GPT가 코드 다 짠다. 내가 할 게 없어." 아내는 웃었다. "그래서?" "기획이 더 안전할 것 같아. AI가 대체 못 할 것 같고." 아내가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그게 다였다. 질문도 없었다. 연봉 얼마나 깎이는지, 커리어 처음부터인지, 그런 거 안 물었다. "진짜?" "응. 네가 판단한 거면 괜찮아." 고맙다고 했다. 근데 좀 허무했다. 뭔가 더 심각하게 고민해줄 줄 알았는데. 아내는 마케터다. 1년 전 대행사에서 인하우스로 옮겼다. 연봉 300 올랐다. 자기 일 재밌어한다. 그날 밤 아내가 물었다. "근데 기획 하면 뭐가 좋은데?" "음... 사람이랑 일하는 거?" "지금도 하잖아." "아니 진짜로. 제품 만드는 거. 방향 정하는 거." "그거 재밌어?" "코딩보다는."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부모님 댁 방문 다음 주말. 부모님 댁에 갔다. 밥 먹으면서 말씀드렸다. "저 커리어 전환 생각 중이에요." 아버지가 반찬 집으시다가 멈추셨다. "뭐로?" "기획자요. 프로덕트 매니저." 어머니가 물으셨다. "그게 뭔데?" "개발팀 관리하고, 제품 방향 정하는 거요." 아버지가 젓가락을 내려놨다. "개발자 좋은 거 아니야?" "요즘 AI가 코드 다 짜요." "그래도 넌 6년 했잖아." "그게 문제예요. 6년 한 게 5년 뒤엔 의미 없을 수도 있어요." 침묵. 10초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 친구 재민이 개발자잖아. 잘만 다니던데." "재민이도 요즘 고민해요." 아버지가 한숨 쉬셨다. "안정적인 거 왜 버리려고 해." "지금은 안정적이에요. 5년 뒤는 모르죠." "그럼 기획은 안정적이야?" 대답 못 했다. 아버지는 대기업 다니셨다. 30년. 한 부서에서 20년 계셨다. 그분한테 '5년 뒤 직업 없을 수도'는 이해 안 되는 얘기다. 어머니가 물으셨다. "그럼 월급은?" "처음엔 좀 깎여요." "얼마나?" "한... 1000 정도?" "왜 그런 거 해?" 설명했다. AI 얘기, 개발자 시장 얘기, 기획자 수요 얘기. 20분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해. 근데 후회하지 마." 그게 지지인지 포기인지 모르겠다.세대 차이 집 가는 길에 아내한테 말했다. "부모님이 이해 못 하시네." "당연하지. 시대가 다른데." "그래도 좀..." "네가 이해시킬 필요 없어. 네 인생이야." 맞는 말이다. 근데 섭섭하다. 부모님 세대는 이랬다. 한 회사 30년. 승진. 퇴직금. 연금. 그게 성공이었다. 우리 세대는? 이직이 승진이다. 2년마다 옮기면 연봉 50% 오른다. 한 회사 10년 있으면 바보다. 부모님한테 '요즘은 AI가 코드 짜요'는 SF 영화 얘기처럼 들린다. ChatGPT 보여드렸다. "이게 뭐가 대단해?" 하셨다. 당연하다. 평생 손으로 장부 쓰시다가 엑셀 쓰신 분들이다. AI가 개발자 대체한다는 게 실감 안 나신다. 근데 이해는 한다. 아버지 회사 다니실 때 IMF 왔다. 동료들 짤렸다. 아버지는 살아남으셨다. '버티면 된다'가 생존 전략이었다. 나는? 버티면 죽는다. 시장이 사라지는데 뭘 버텨. 친구 재민이도 비슷하다. 얘 아버지는 공무원이시다. "공무원 해라" 하신다. 재민이는 프리랜서 개발자다. 세대가 다르다. 안정의 정의가 다르다. 부모님한테는 '대기업 개발자 6년차'가 최고다. 나한테는? '5년 뒤에도 필요한 사람'이 안정이다.아내의 관점 며칠 뒤 아내가 물었다. "부모님 뭐라 하셨어?" "이해 못 하시더라." "당연하지." "너는 왜 바로 이해해?" 아내가 웃었다. "나도 작년에 옮겼잖아." 맞다. 아내는 대행사 3년 하다가 인하우스로 옮겼다. 부모님 반대하셨다. "거기 안정적이잖아." "근데 옮겼잖아." "응. 내 판단이었으니까." "후회 안 해?" "전혀. 거기 더 있었으면 번아웃 왔을 거야." 아내는 다르다. 걱정 안 한다. 정확히는 다르게 걱정한다. 부모님: "안정적인 거 왜 버려?" 아내: "네가 원하는 거 맞아?" 부모님: "월급 깎이면 어떡해?" 아내: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거야?" 질문 자체가 다르다. 아내가 말했다. "부모님은 네 걱정하는 거야. 근데 1980년대 방식으로." "그게 문제지." "문제 아니야. 그분들 시대엔 그게 맞았어." "근데 지금은 아니잖아." "응. 그러니까 네가 판단해야지." 아내는 실용적이다. 감정적 지지보다 현실적 분석. 내가 뭘 원하는지, 리스크는 뭔지, 플랜B는 뭔지. "만약에 기획 안 맞으면?" "다시 개발하면 되지." "그게 되나?" "왜 안 돼? 6년 경력 어디 안 가." 단순하다. 근데 설득력 있다. 부모님한테는 '커리어 전환'이 큰 결단이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아내한테는? 실험이다. 안 맞으면 다른 거 하면 된다. 32살이다. 실험할 나이다. 아내 말이 맞다. 지지의 종류 생각해봤다. 부모님도 날 지지한다. 방식이 다를 뿐. 부모님 지지: "위험한 거 하지 마. 안전하게 살아." 아내 지지: "네가 원하는 거 해. 책임져." 둘 다 맞다. 둘 다 사랑이다. 부모님은 내가 다치는 거 못 본다. 실패하는 거 못 본다. 그래서 안정을 바란다. 아내는 내가 후회하는 거 못 본다. 불행한 거 못 본다. 그래서 도전을 지지한다. 누가 맞나? 둘 다 맞다. 시대가 다를 뿐. 부모님 시대는 '살아남기'였다. IMF, 구조조정, 명퇴. 버티는 게 승리였다. 지금은? '의미 찾기'다. 연봉만으로는 안 된다. 재밌어야 한다. 5년 뒤에도 필요한 일이어야 한다. 친구 준호도 비슷하다. 얜 의사다. 부모님이 원하셨다. 본인은 음악 하고 싶었다. 지금? 피곤해한다. 연봉은 높다. 근데 매일 죽고 싶어한다. "부모님 말 들을 걸 그랬어?" "아니. 내 말 들을 걸 그랬어." 준호는 35살이다. 의사 10년차다. 지금 그만두면? 10년이 아깝다. 그래서 못 그만둔다. 나는 32살이다. 개발 6년차다. 지금 전환하면? 6년이 아깝다. 근데 10년 될 때까지 기다리면? 더 못 바꾼다. 부모님 시대는 '한우물을 파라'였다. 지금은? '우물이 마르면 옮겨라'다. 결론 아닌 결론 어제 부모님께 문자 보냈다. "제 선택 존중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가 답하셨다. "네 인생이니까. 후회만 하지 마라." 어머니는 전화하셨다. "그래도 조심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고맙다. 이해 못 하셔도 존중하신다. 아내한테 말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네." "당연하지. 부모잖아." "너는 안 걱정돼?" "걱정되지. 근데 네가 결정한 거면 괜찮아." 다르다. 근데 둘 다 필요하다. 부모님의 걱정은 안전망이다. '너무 위험하게 가지 마'라는 신호. 아내의 지지는 추진력이다. '네가 원하는 거 가'라는 신호. 둘 다 있어야 한다. 안전망 없이 뛰면 죽는다. 추진력 없이 서 있으면 굶는다. 세대 차이는 당연하다. 시대가 다르니까. 부모님 시대는 '한 우물'이 정답이었다. 지금은? '마른 우물에서 나오는 게' 정답이다. 결국 내가 판단해야 한다. 32살이다. 부모님 말도 듣고, 아내 말도 듣고. 근데 결정은 내가 한다. 다음 주에 PM 포지션 면접 있다. 준비하고 있다. 떨어지면? 다시 준비한다. 부모님은 걱정하실 거다. 아내는 응원할 거다. 나는? 해볼 거다. 그게 다다.지지의 모양은 다르다. 근데 방향은 같다. 내가 잘 되길 바란다.
- 02 Dec, 2025
업무의 40%가 'GPT한테 물어보고 복붙하고 수정'이 되던 날부터
업무의 40%가 'GPT한테 물어보고 복붙하고 수정'이 되던 날부터 알람이 울린다. 7시. 침대에서 나온다. 출근한다. 회사 도착. 9시 반. '오늘 뭐 할 거야?' 슬랙 메시지 확인. PM이 보낸 요구사항 3개. '어. 이거 복잡하네. 일단 GPT한테 물어봐야겠다.' 노트북 켠다. ChatGPT 탭 켠다. 프롬프트 입력한다. "Django에서 Elasticsearch 연동해서 사용자 검색 API 짜는데, 필터링은 카테고리별로, 정렬은 최신순, 캐싱은 Redis로 해 줄 수 있어?" 엔터. 엔터. 30초. 1분. 코드가 나온다. 완벽한 보일러플레이트. 에러 처리도 있고, 타입 힌팅도 있고. 내가 3시간에 걸쳐서 짜던 것. 아니, 내가 2년 전에 짜던 것. 요즘은 30초면 된다.그게 3시간이었고, 지금은 10분이다. 복붙한다. IDE에 붙인다. '이 부분은 좀 다르니까 수정하자.' 엔터. 탭. 대괄호 몇 개 바꾼다. 프롬프트 한 번 더 날린다. "그런데 여기 부분에서 대량 요청이 들어오면 Elasticsearch가 터질 수 있으니까, 대기열 처리 해 주고, 로깅도 넣어 줄래?" 엔터. 또 나온다. 문장이 아니라 완성된 코드. 내 손가락은 아무것도 안 한다. 읽기만 한다. 확인만 한다. '어, 이건 좀 이상한데' 하면서 또 프롬프트 한 줄 날린다. 30분이면 끝난다. 내가 일하고 있나? 이게 뭐 하는 건가?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하게는 6개월 전이다. 회사에 신입이 들어왔다. 24살. 대학교 다니면서 로또처럼 CS 공부했다는 애. 개발 경력 0년. '여기 신경망 개선해 줄 수 있어?' 내가 물었다. '네 다 해봤는데 이것도 안 되네.' 신입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구글링도 못 해본 것 같던 애. 아침 10시. 오후 3시. 저녁 5시까지 사라져 있었다. '뭐 하냐고?' 내가 물었다. 'GPT랑 작업하고 있습니다.' 신입의 대답. 내가 코드를 봤다. 완벽했다. 아니, 나보다 나았다. 예외 처리도 있고, 성능 최적화도 있고. 내가 처음에는 생각 못 한 부분까지. '이거 다 혼자 했어?' '아뇨. 프롬프트로 했어요.' 그 순간이다. 내 뇌가 느려진 게 느껴졌다. 마치 핸드폰이 버벅거릴 때처럼. '...아.' 그날부터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한 게.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이제 내 일의 구성은 대략 이렇다.GPT에 물어보고 복붙하고 수정: 40% 다른 사람 코드 리뷰: 30% 회의: 20% 실제로 머리 쓰면서 코딩: 10%40%라고 했지만 솔직하면 그때는 정말 "일"인가?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붙여넣는 게 일인가? Google Translate 검수하는 것도 일인가? 내가 이 정도면 '프롬프트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거 같다. 개발자가 아니라. 엔지니어가 아니라. 프롬프트. 엔지니어."코드를 이해하고 있는 거야?" 팀원이 물었다. 의도는 좋은 거 같았다. 근데 질문이 날 죽였다. "글쎄. 그 부분은 GPT가 이렇게 짰고, 내가 이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고쳤다." 지가 지금 뭐 설명하고 있는 건가? 내가 짠 코드인데, 내가 설명할 때 "GPT가"라는 주어가 나온다. 이상한가? 이상하다. 근데 계속된다. 회의실에서. "그래서 이 로직이 왜 이렇게 짜여 있어?" PM의 질문. "어... GPT가 이렇게 제안했고..." I don't know anymore. 나는 코드를 복사-붙여넣기 했을 뿐이다. 버그를 고쳤고. 테스트를 돌렸고. 프로덕션에 올렸다. 근데 왜? 왜 내 손이 키보드를 안 쳤을 때 나는 개발을 한 걸 느껴질까? 5년 뒤를 생각해 봤다. AI가 이 정도면 5년 뒤엔? 10배가 될 거다. 아니, 1000배. 그럼 내 일은? 없다. 주니어는 더더욱 없다. 아마도 SI 회사는 반 정도 없어질 거다. 스타트업은 개발자를 절반으로 줄일 거다. 그럼 내 선택지는?그냥 계속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산다. → 언제까지?다른 분야로 간다. → 어디로?더 깊이 파고든다. → 근데 이미 AI가 깊이 파고 있는데?기획으로 간다. → 아, 그게 있지.내 뇌가 멈춘 것 같다. 코딩할 때는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기획 문서 쓸 때는 뭔가 들어온다. 다른 사람의 코드를 보면 "이거 왜 이래?"가 나온다. 근데 내 코드를 짤 때는 아무것도 없다. GPT가 다 했으니까. 요즘 나는 이런 사람이다. 업무 중 가장 많이 하는 일: 채팅 업무 중 가장 재밌는 일: 기획 문서 작성 업무 중 가장 싫은 일: 실제 코딩 휴일에 하는 일: PM 인강 들음 저녁에 하는 일: 회사 프로젝트 기획 문서 작성 코딩은? 잘하기는 한다. 근데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면 AI가 더 잘하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AI와 비교가 되니까. 인간이 AI와 속도 경쟁을 하면? 지는 거다. 항상. 그래서 지는 대신 딴 길로 간다. 기획. 사람을 이해하는 것. 숫자로 설득하는 것. 미래를 예측하는 것. 아직 AI는 내 감을 못 따라온다. 아직이다.PM 공고를 본다. "기획 경력 3년 이상 우대." 내 경력은 0년이다. "프로덕트 마인드 강한 사람." 내 마인드는 뭐가 강한가. AI를 믿는 마음. "사용자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사용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나. 코딩만 했다. 근데 할 수는 있겠지. 개발자 출신 PM도 많잖아. 블로그 봤어. 링크드인 봤어. 트위터 봤어. 다 성공했다고 한다. 개발자 배경이 기획에서 무기가 된다고 한다. "이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부분의 영향도를 개발자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성능 최적화를 고려한 UX 설계입니다." 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불안하다. 이력서 냈어. 서류 떨어졌어. 왜냐면 기획 경력이 0년이었으니까. 회사는 기획 경력 3년을 원했으니까. "개발자 출신도 많고, 개발자가 기획을 배우는 건..." 아내가 말했다. "근데 너는 왜 시작을 못 하는 거야?" 그 질문이 제일 무섭다. 내일 아침. 알람이 울 거다. 7시. 침대에서 나올 거다. 샤워할 거다. 출근할 거다. 회사 도착. 9시 반. 슬랙 확인. "한기획님, 이 부분 코드 짜 줄 수 있어요?" "네. ChatGPT한테 물어봐 드리겠습니다." 웃음. 온라인상의 웃음. 나는 웃지 않는다.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붙여넣는다. 30분. 완성. "완료됐습니다." "빨라요." "네." 그리고 또 다음 일을 기다린다. 다음 프롬프트. 다음 복붙. 이게 5년인가. 10년인가. 언제까지인가. 기획 공고를 본다. 한 번 더. "기획 경력 3년 이상." 나는 여전히 0년이다. 개발자로 6년. 기획자로 0년. 둘 다 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6개월. 내일은 뭐가 될까. 내일도 GPT에 물어볼까. "내 커리어는 이대로 괜찮을까?"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뭐라고 할까. 아마 이럴 거다.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시작하세요." 근데 나는 시작하지 못한다. 왜냐면 그 조언도 AI한테 물어본 거라고 생각되니까.오늘도 버틴다. 내일도 GPT에 물어봐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