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PM 인강을 보면서 든 생각: 이건 공부가 아니라 '도망'인가?

퇴근 후 PM 인강을 보면서 든 생각: 이건 공부가 아니라 '도망'인가?

9시 40분, 재생 버튼

퇴근하고 집 왔다. 8시 50분. 샤워하고 밥 먹고 9시 반. 노트북 켰다. PM 인강 사이트.

“프로덕트 로드맵 수립하기 - 3주차”

재생 버튼 눌렀다. 강사가 말한다. “우선순위 매트릭스를 그려보세요.” 나는 노션에 표 만든다.

근데 이상하다. 머리에 안 들어온다.

아니, 이해는 된다. 임팩트 크고 노력 적은 거 먼저 한다. 당연한 얘기다.

근데 왜 하고 있지?

질문이 생겼다

강의 일시정지. 창 밖 봤다.

나는 지금 공부하는 건가? 아니면 도망치는 건가?

이상한 질문이다. 공부가 도망일 리 없다. 자기계발 아닌가.

근데 자꾸 드는 생각.

“내일 회사 가면 또 코딩해야 하는데.” “그거 피하려고 이거 보는 거 아냐?”

6개월 전만 해도 달랐다. 퇴근하고 코딩 공부했다. 새 프레임워크, 알고리즘, 클린 코드.

그땐 즐거웠다. “이거 배우면 더 잘할 수 있어” 였다.

지금은?

“이거 배우면 개발 안 해도 돼” 다.

완전히 다르다.

불안의 정체

노트 꺼냈다. 적어봤다.

“왜 PM 공부하는가?”

  1. AI가 코딩 잘해서
  2. 5년 뒤 개발자 수요 줄 거 같아서
  3. 기획이 더 안전해 보여서
  4. 코딩이 재미없어져서

적고 나니 보인다.

전부 “~서” 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때문에”다.

그럼 도망 맞는 거 아냐?

강의 다시 재생했다. 강사가 말한다. “PM은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입니다.”

멈췄다.

나는 지금 문제를 정의하고 있나? 아니면 문제를 피하고 있나?

3주 전 일

회사에서 있었던 일.

주니어한테 기능 하나 시켰다. “이거 GPT 쓰면 하루 안에 될 거야.”

걔가 물었다. “한기획님은 어떻게 하세요?”

“나도 GPT 쓰지.”

“그럼 제가 하는 거랑 똑같은 거네요?”

”…”

할 말이 없었다.

퇴근하고 PM 인강 첫 강의 신청했다. 그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시작이었나 보다.

도망의 시작.

아내한테 물었다

침대에 누워서. 아내한테 물었다.

“여보, 나 요즘 이상해.”

“왜?”

“PM 공부하는데, 이게 진짜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아내가 옆으로 누웠다.

“그럼 왜 해?”

“개발이 불안해서.”

“개발이 싫어?”

“아니… 싫은 건 아닌데…”

“그럼?”

“GPT가 너무 잘해.”

아내가 웃었다. “그럼 GPT 못하는 거 하면 되지.”

“그게 뭔데?”

“몰라. 네가 찾아야지.”

잤다. 근데 잠이 안 왔다.

다음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GPT 못하는 거.

코드 짜기? 못하는 게 아니라 잘한다. 버그 찾기? 이것도 잘한다. 리팩토링? 나보다 깔끔하게 한다.

그럼 뭐가 남지?

“왜 이걸 만드는가” “누구를 위한 건가” “어떤 문제를 푸는가”

…PM이 하는 일이다.

아, 그래서 PM 공부하는 거구나.

근데 이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아남으려고”다.

회사 도착했다. 맥북 켰다. VSCode 열렸다.

보기 싫었다.

점심시간, 선배와

개발팀 선배랑 점심 먹었다. 14년차다.

“형, 요즘 AI 보면 어때요?”

“좋지. 일 빨리 끝나잖아.”

“근데 무섭지 않아요?”

“뭐가?”

“나중에 우리 필요 없을 수도 있잖아요.”

선배가 국 떴다.

“필요 없으면 다른 거 하지 뭐.”

“그게 쉬워요?”

“쉽지 않지. 근데 개발도 처음엔 쉽지 않았어.”

”…”

“너 지금 PM 공부한다며?”

“어떻게 알았어요?”

“맨날 노션에 기획 문서 만들잖아.”

들켰다.

“그거 도망치는 거 같아서요.”

선배가 웃었다.

“도망도 방향이 있으면 이동이야.”

그날 저녁

퇴근하고 집 왔다. 또 9시 반.

노트북 켰다. PM 인강 사이트.

재생 버튼 누르려다가, 멈췄다.

질문을 바꿔봤다.

“이게 도망인가?”가 아니라, “이게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인가?”

다르다.

도망이냐 아니냐는, 과거를 기준으로 묻는 거다. “코딩에서 벗어나려고?”

방향이냐 아니냐는, 미래를 기준으로 묻는 거다. “PM이 되고 싶어?”

노트에 적었다.

“PM이 하는 일”

  • 문제 정의
  • 우선순위 결정
  • 팀 조율
  • 사용자 이해

“내가 좋아하는 일”

  • 구조 설계
  • 로직 짜기
  • 문제 해결

잠깐.

문제 해결은 둘 다 있다. 방법만 다르다.

개발자는 “어떻게”를 푼다. PM은 “무엇을”을 정한다.

나는 뭘 더 좋아하지?

솔직해지기

노트 새 페이지.

“진짜 속마음”

코딩, 요즘 재미없다. 맞다. GPT가 해서? 반만 맞다.

사실은, 6년 했더니 비슷비슷하다. CRUD 반복이다. “또 이거네” 싶다.

그럼 PM은? 모른다. 안 해봐서.

근데 상상하면 재미있을 거 같다. “뭘 만들까” 생각하는 거. “왜 만들까” 정하는 거.

이게 도망일까?

아니면 그냥, 다음 단계일까?

인강 틀었다

재생 버튼 눌렀다.

“프로덕트 로드맵 수립하기 - 3주차”

이번엔 다르게 들렸다.

“이걸 배우면 개발 안 해도 돼” 가 아니라, “이걸 배우면 개발을 더 잘 쓸 수 있어” 였다.

PM은 개발을 안 하는 게 아니다. 개발을 “언제, 왜, 뭘” 할지 정하는 거다.

나는 6년간 “어떻게”만 했다. 이제 “무엇을” 해보고 싶다.

그게 도망인가?

모르겠다.

근데 도망이든 아니든, 가고 싶다.

새벽 1시

인강 3개 들었다. 3시간 반.

피곤하다. 근데 개운하다.

노트북 덮으면서 생각했다.

도망과 이동의 차이.

도망은 뒤를 본다. “저기서 벗어나야 해”

이동은 앞을 본다. “저기로 가고 싶어”

나는 뭘까?

솔직히, 반반이다.

개발이 무서워서 50%. PM이 궁금해서 50%.

근데 괜찮다. 반이라도 “가고 싶어서”면, 그건 도망이 아니다.

불안해서 시작했어도, 방향이 생기면 이동이다.

선배 말이 맞았다.


퇴근하고 인강 보는 나, 도망자일까 이주자일까. 반반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