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라고 말했을 때의 감정

아내가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라고 말했을 때의 감정

그날 밤

아내가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고마웠다. 진심으로.

근데 동시에 뭔가 더 무거워졌다.

저녁 먹고 설거지하다가 꺼냈다. “나 진짜 기획으로 넘어갈까 봐.”

아내는 “응, 알아. 요즘 그 생각 많이 하는 거” 했다.

들켰다. 맨날 퇴근하고 PM 영상 보는 거.

“연봉 깎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우리 먹고살 만해.”

그 말이 고마웠다. 진짜로.

근데 그 순간 느꼈다. 아, 이제 진짜 결정해야 하는구나.

지지는 독

이상하다. 반대하면 더 하고 싶어질 텐데.

지지하니까 더 무섭다.

실패하면 누구 탓도 못 한다. 아내는 지지했으니까. 부모님은 반대했으니까. 친구들은 몰랐으니까.

결국 내 선택이다.

다음 날 출근했다. 코드를 짰다. GPT한테 물어보고 복붙했다.

‘이거 5년 뒤에도 할 거야?’

점심시간에 기획자 선배한테 물어봤다. “PM 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나요?”

“경험이죠. 일단 해봐야 해요.”

“근데 경력 없으면 안 뽑잖아요.”

“그러니까 먼저 내부에서 기획 업무 좀 해보시든가.”

결국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오후에 코드 리뷰했다. 주니어가 GPT로 짠 코드. 3일 걸릴 거 하루 만에.

‘아 나도 기획하면서 이렇게 AI 활용하면 되는 거 아냐?’

퇴근하고 집에 왔다. 아내가 물었다. “어땠어?”

“음… 그냥.”

“결정했어?”

“아직.”

아내는 더 묻지 않았다. 저녁 먹고 각자 일했다.

나는 노션을 켰다. ‘PM 포트폴리오 만들기’ 페이지.

한 줄도 못 썼다.

책임의 무게

6200만원이다. 지금 연봉.

기획으로 가면 5000 초반? 4500?

계산했다. 월 100만원 차이. 1년에 1200.

아내 연봉이랑 합치면 괜찮다. 먹고는 산다.

근데 애 낳으면? 집 사면?

주말에 부모님 댁 갔다. 아버지가 물었다. “요즘 일은 어때?”

“괜찮아요.”

“개발자 좋은 거 아니냐. 너희 세대는.”

“네, 좋긴 한데요.”

기획 얘기는 안 했다. 설명해도 이해 못 하실 거다.

‘개발자가 왜 기획을 해? 개발자가 더 잘 벌지.’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은.

5년 뒤는? 10년 뒤는?

AI가 코드 다 짜면 개발자 연봉도 떨어진다. 당연하다.

근데 기획도 AI한테 대체되면?

그건… 좀 더 나중 아닐까?

아닐 수도 있다. 모른다.

결국 베팅이다. 어느 쪽이 덜 위험한지.

집에 오는 길에 아내한테 물었다. “나 진짜 해도 돼?”

“뭘?”

“기획 전환.”

“내가 하고 싶으면 해.”

또 그 말이다.

“근데 실패하면?”

“그럼 다시 개발하든가.”

“6년 경력 공백 생기는 건데.”

“그래도 네가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지 않아?”

맞다. 근데 해보고 후회할 수도 있다.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

월요일 아침이다. 출근했다.

팀 회의가 있었다. 신규 기능 논의.

기획자가 발표했다. “사용자 니즈가 이래서요…”

나는 생각했다. ‘저 데이터 근거가 약한데. 저거 개발하면 아무도 안 쓸 텐데.’

말은 안 했다. 내 업무 아니니까.

개발 시작했다. GPT한테 물어봤다. 복붙했다. 수정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

점심시간에 PM 채용공고 봤다. ‘기획 경력 3년 이상.’

내 이력서는 ‘개발 경력 6년.’

숫자만 봐도 안 맞다.

근데 사내 이동은? 팀장한테 말해볼까?

‘야 나 기획팀 가고 싶은데요.’

‘왜? 개발 안 맞아?’

‘아니요. 그냥… AI 때문에…’

설명할 자신이 없다.

오후에 코드 짰다. 또 GPT.

저녁 7시. 퇴근했다.

집에 와서 아내한테 말했다. “나 아직 결정 못 했어.”

“응.”

“미안.”

“뭐가?”

“널 고민하게 해서.”

“나는 안 고민해. 네가 하는 거니까.”

그 말이 제일 무섭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밤 11시다. 아내는 잤다.

나는 노션을 켰다. PM 포트폴리오 페이지.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안’이라고 썼다.

제목만 있다. 3주째.

왜 못 쓸까? 진짜 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개발이 싫은 건가?

아니면 AI한테 지는 게 싫은 건가?

GPT를 켰다. 물어봤다.

“개발자가 기획으로 전환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답이 나왔다. 그럴싸하다.

근데 이런 거 물어보는 것도 우습다. AI한테 내 인생을.

창을 닫았다.

노션을 봤다. 빈 페이지.

한 줄 썼다.

“왜 기획을 하고 싶은가?”

답을 모르겠다.

개발이 싫어서? 반만 맞다.

기획이 좋아서? 해본 적 없다.

AI 때문에? 핑계일 수도.

그럼 진짜 이유는?

타이핑을 멈췄다.

이유를 모르면서 전환하려는 건가?

아니면 이유를 찾으려고 전환하려는 건가?

창을 닫았다.

침대에 누웠다.

아내가 자면서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잠꼬대다. 근데 또 그 말이다.

고맙다. 진짜로.

근데 나는 아직 모른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그래도 내일은 온다

화요일 아침이다.

출근했다. 코드를 짠다.

점심시간에 PM 영상을 본다.

저녁에 집에 온다.

노션을 킨다. 빈 페이지.

한 줄 쓴다. 지운다. 다시 쓴다.

아내가 묻는다. “결정했어?”

“아직.”

“괜찮아.”

괜찮다. 아직은.

근데 언제까지 아직이지?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다.

개발을 계속하는 결정.

AI 시대에 뒤처지는 결정.

아니면 신중한 결정?

모른다.

그냥 내일도 출근한다.

GPT한테 코드 물어본다.

퇴근하고 PM 영상 본다.

노션에 한 줄 쓴다.

이게 답일까?

아니다. 근데 지금은 이게 전부다.

아내의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는 고맙다.

근데 그 말이 부담이다.

자유는 무겁다.

지지는 책임이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솔직하게 말하면.

기획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개발이 불안한 것뿐일 수도.

AI한테 지는 게 싫은 것뿐일 수도.

그래도 찾아야 한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시간이 걸려도.


아내는 기다려준다. 나는 아직 결정 못 한다. 그게 지금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