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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 03 Dec, 2025
아내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했지만, 부모님은 '개발자 좋은 거 아니야?'라고 하셨다
아내와의 대화 저녁 먹고 설거지하면서 말했다. "나 기획으로 갈까 봐." 아내가 그릇 닦다가 손을 멈췄다. 3초 정도. "왜?" "GPT가 코드 다 짠다. 내가 할 게 없어." 아내는 웃었다. "그래서?" "기획이 더 안전할 것 같아. AI가 대체 못 할 것 같고." 아내가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그게 다였다. 질문도 없었다. 연봉 얼마나 깎이는지, 커리어 처음부터인지, 그런 거 안 물었다. "진짜?" "응. 네가 판단한 거면 괜찮아." 고맙다고 했다. 근데 좀 허무했다. 뭔가 더 심각하게 고민해줄 줄 알았는데. 아내는 마케터다. 1년 전 대행사에서 인하우스로 옮겼다. 연봉 300 올랐다. 자기 일 재밌어한다. 그날 밤 아내가 물었다. "근데 기획 하면 뭐가 좋은데?" "음... 사람이랑 일하는 거?" "지금도 하잖아." "아니 진짜로. 제품 만드는 거. 방향 정하는 거." "그거 재밌어?" "코딩보다는."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부모님 댁 방문 다음 주말. 부모님 댁에 갔다. 밥 먹으면서 말씀드렸다. "저 커리어 전환 생각 중이에요." 아버지가 반찬 집으시다가 멈추셨다. "뭐로?" "기획자요. 프로덕트 매니저." 어머니가 물으셨다. "그게 뭔데?" "개발팀 관리하고, 제품 방향 정하는 거요." 아버지가 젓가락을 내려놨다. "개발자 좋은 거 아니야?" "요즘 AI가 코드 다 짜요." "그래도 넌 6년 했잖아." "그게 문제예요. 6년 한 게 5년 뒤엔 의미 없을 수도 있어요." 침묵. 10초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 친구 재민이 개발자잖아. 잘만 다니던데." "재민이도 요즘 고민해요." 아버지가 한숨 쉬셨다. "안정적인 거 왜 버리려고 해." "지금은 안정적이에요. 5년 뒤는 모르죠." "그럼 기획은 안정적이야?" 대답 못 했다. 아버지는 대기업 다니셨다. 30년. 한 부서에서 20년 계셨다. 그분한테 '5년 뒤 직업 없을 수도'는 이해 안 되는 얘기다. 어머니가 물으셨다. "그럼 월급은?" "처음엔 좀 깎여요." "얼마나?" "한... 1000 정도?" "왜 그런 거 해?" 설명했다. AI 얘기, 개발자 시장 얘기, 기획자 수요 얘기. 20분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해. 근데 후회하지 마." 그게 지지인지 포기인지 모르겠다.세대 차이 집 가는 길에 아내한테 말했다. "부모님이 이해 못 하시네." "당연하지. 시대가 다른데." "그래도 좀..." "네가 이해시킬 필요 없어. 네 인생이야." 맞는 말이다. 근데 섭섭하다. 부모님 세대는 이랬다. 한 회사 30년. 승진. 퇴직금. 연금. 그게 성공이었다. 우리 세대는? 이직이 승진이다. 2년마다 옮기면 연봉 50% 오른다. 한 회사 10년 있으면 바보다. 부모님한테 '요즘은 AI가 코드 짜요'는 SF 영화 얘기처럼 들린다. ChatGPT 보여드렸다. "이게 뭐가 대단해?" 하셨다. 당연하다. 평생 손으로 장부 쓰시다가 엑셀 쓰신 분들이다. AI가 개발자 대체한다는 게 실감 안 나신다. 근데 이해는 한다. 아버지 회사 다니실 때 IMF 왔다. 동료들 짤렸다. 아버지는 살아남으셨다. '버티면 된다'가 생존 전략이었다. 나는? 버티면 죽는다. 시장이 사라지는데 뭘 버텨. 친구 재민이도 비슷하다. 얘 아버지는 공무원이시다. "공무원 해라" 하신다. 재민이는 프리랜서 개발자다. 세대가 다르다. 안정의 정의가 다르다. 부모님한테는 '대기업 개발자 6년차'가 최고다. 나한테는? '5년 뒤에도 필요한 사람'이 안정이다.아내의 관점 며칠 뒤 아내가 물었다. "부모님 뭐라 하셨어?" "이해 못 하시더라." "당연하지." "너는 왜 바로 이해해?" 아내가 웃었다. "나도 작년에 옮겼잖아." 맞다. 아내는 대행사 3년 하다가 인하우스로 옮겼다. 부모님 반대하셨다. "거기 안정적이잖아." "근데 옮겼잖아." "응. 내 판단이었으니까." "후회 안 해?" "전혀. 거기 더 있었으면 번아웃 왔을 거야." 아내는 다르다. 걱정 안 한다. 정확히는 다르게 걱정한다. 부모님: "안정적인 거 왜 버려?" 아내: "네가 원하는 거 맞아?" 부모님: "월급 깎이면 어떡해?" 아내: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거야?" 질문 자체가 다르다. 아내가 말했다. "부모님은 네 걱정하는 거야. 근데 1980년대 방식으로." "그게 문제지." "문제 아니야. 그분들 시대엔 그게 맞았어." "근데 지금은 아니잖아." "응. 그러니까 네가 판단해야지." 아내는 실용적이다. 감정적 지지보다 현실적 분석. 내가 뭘 원하는지, 리스크는 뭔지, 플랜B는 뭔지. "만약에 기획 안 맞으면?" "다시 개발하면 되지." "그게 되나?" "왜 안 돼? 6년 경력 어디 안 가." 단순하다. 근데 설득력 있다. 부모님한테는 '커리어 전환'이 큰 결단이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아내한테는? 실험이다. 안 맞으면 다른 거 하면 된다. 32살이다. 실험할 나이다. 아내 말이 맞다. 지지의 종류 생각해봤다. 부모님도 날 지지한다. 방식이 다를 뿐. 부모님 지지: "위험한 거 하지 마. 안전하게 살아." 아내 지지: "네가 원하는 거 해. 책임져." 둘 다 맞다. 둘 다 사랑이다. 부모님은 내가 다치는 거 못 본다. 실패하는 거 못 본다. 그래서 안정을 바란다. 아내는 내가 후회하는 거 못 본다. 불행한 거 못 본다. 그래서 도전을 지지한다. 누가 맞나? 둘 다 맞다. 시대가 다를 뿐. 부모님 시대는 '살아남기'였다. IMF, 구조조정, 명퇴. 버티는 게 승리였다. 지금은? '의미 찾기'다. 연봉만으로는 안 된다. 재밌어야 한다. 5년 뒤에도 필요한 일이어야 한다. 친구 준호도 비슷하다. 얜 의사다. 부모님이 원하셨다. 본인은 음악 하고 싶었다. 지금? 피곤해한다. 연봉은 높다. 근데 매일 죽고 싶어한다. "부모님 말 들을 걸 그랬어?" "아니. 내 말 들을 걸 그랬어." 준호는 35살이다. 의사 10년차다. 지금 그만두면? 10년이 아깝다. 그래서 못 그만둔다. 나는 32살이다. 개발 6년차다. 지금 전환하면? 6년이 아깝다. 근데 10년 될 때까지 기다리면? 더 못 바꾼다. 부모님 시대는 '한우물을 파라'였다. 지금은? '우물이 마르면 옮겨라'다. 결론 아닌 결론 어제 부모님께 문자 보냈다. "제 선택 존중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가 답하셨다. "네 인생이니까. 후회만 하지 마라." 어머니는 전화하셨다. "그래도 조심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고맙다. 이해 못 하셔도 존중하신다. 아내한테 말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네." "당연하지. 부모잖아." "너는 안 걱정돼?" "걱정되지. 근데 네가 결정한 거면 괜찮아." 다르다. 근데 둘 다 필요하다. 부모님의 걱정은 안전망이다. '너무 위험하게 가지 마'라는 신호. 아내의 지지는 추진력이다. '네가 원하는 거 가'라는 신호. 둘 다 있어야 한다. 안전망 없이 뛰면 죽는다. 추진력 없이 서 있으면 굶는다. 세대 차이는 당연하다. 시대가 다르니까. 부모님 시대는 '한 우물'이 정답이었다. 지금은? '마른 우물에서 나오는 게' 정답이다. 결국 내가 판단해야 한다. 32살이다. 부모님 말도 듣고, 아내 말도 듣고. 근데 결정은 내가 한다. 다음 주에 PM 포지션 면접 있다. 준비하고 있다. 떨어지면? 다시 준비한다. 부모님은 걱정하실 거다. 아내는 응원할 거다. 나는? 해볼 거다. 그게 다다.지지의 모양은 다르다. 근데 방향은 같다. 내가 잘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