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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의 40%가 'GPT한테 물어보고 복붙하고 수정'이 되던 날부터

업무의 40%가 'GPT한테 물어보고 복붙하고 수정'이 되던 날부터

업무의 40%가 'GPT한테 물어보고 복붙하고 수정'이 되던 날부터 알람이 울린다. 7시. 침대에서 나온다. 출근한다. 회사 도착. 9시 반. '오늘 뭐 할 거야?' 슬랙 메시지 확인. PM이 보낸 요구사항 3개. '어. 이거 복잡하네. 일단 GPT한테 물어봐야겠다.' 노트북 켠다. ChatGPT 탭 켠다. 프롬프트 입력한다. "Django에서 Elasticsearch 연동해서 사용자 검색 API 짜는데, 필터링은 카테고리별로, 정렬은 최신순, 캐싱은 Redis로 해 줄 수 있어?" 엔터. 엔터. 30초. 1분. 코드가 나온다. 완벽한 보일러플레이트. 에러 처리도 있고, 타입 힌팅도 있고. 내가 3시간에 걸쳐서 짜던 것. 아니, 내가 2년 전에 짜던 것. 요즘은 30초면 된다.그게 3시간이었고, 지금은 10분이다. 복붙한다. IDE에 붙인다. '이 부분은 좀 다르니까 수정하자.' 엔터. 탭. 대괄호 몇 개 바꾼다. 프롬프트 한 번 더 날린다. "그런데 여기 부분에서 대량 요청이 들어오면 Elasticsearch가 터질 수 있으니까, 대기열 처리 해 주고, 로깅도 넣어 줄래?" 엔터. 또 나온다. 문장이 아니라 완성된 코드. 내 손가락은 아무것도 안 한다. 읽기만 한다. 확인만 한다. '어, 이건 좀 이상한데' 하면서 또 프롬프트 한 줄 날린다. 30분이면 끝난다. 내가 일하고 있나? 이게 뭐 하는 건가?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하게는 6개월 전이다. 회사에 신입이 들어왔다. 24살. 대학교 다니면서 로또처럼 CS 공부했다는 애. 개발 경력 0년. '여기 신경망 개선해 줄 수 있어?' 내가 물었다. '네 다 해봤는데 이것도 안 되네.' 신입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구글링도 못 해본 것 같던 애. 아침 10시. 오후 3시. 저녁 5시까지 사라져 있었다. '뭐 하냐고?' 내가 물었다. 'GPT랑 작업하고 있습니다.' 신입의 대답. 내가 코드를 봤다. 완벽했다. 아니, 나보다 나았다. 예외 처리도 있고, 성능 최적화도 있고. 내가 처음에는 생각 못 한 부분까지. '이거 다 혼자 했어?' '아뇨. 프롬프트로 했어요.' 그 순간이다. 내 뇌가 느려진 게 느껴졌다. 마치 핸드폰이 버벅거릴 때처럼. '...아.' 그날부터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한 게.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이제 내 일의 구성은 대략 이렇다.GPT에 물어보고 복붙하고 수정: 40% 다른 사람 코드 리뷰: 30% 회의: 20% 실제로 머리 쓰면서 코딩: 10%40%라고 했지만 솔직하면 그때는 정말 "일"인가?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붙여넣는 게 일인가? Google Translate 검수하는 것도 일인가? 내가 이 정도면 '프롬프트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거 같다. 개발자가 아니라. 엔지니어가 아니라. 프롬프트. 엔지니어."코드를 이해하고 있는 거야?" 팀원이 물었다. 의도는 좋은 거 같았다. 근데 질문이 날 죽였다. "글쎄. 그 부분은 GPT가 이렇게 짰고, 내가 이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고쳤다." 지가 지금 뭐 설명하고 있는 건가? 내가 짠 코드인데, 내가 설명할 때 "GPT가"라는 주어가 나온다. 이상한가? 이상하다. 근데 계속된다. 회의실에서. "그래서 이 로직이 왜 이렇게 짜여 있어?" PM의 질문. "어... GPT가 이렇게 제안했고..." I don't know anymore. 나는 코드를 복사-붙여넣기 했을 뿐이다. 버그를 고쳤고. 테스트를 돌렸고. 프로덕션에 올렸다. 근데 왜? 왜 내 손이 키보드를 안 쳤을 때 나는 개발을 한 걸 느껴질까? 5년 뒤를 생각해 봤다. AI가 이 정도면 5년 뒤엔? 10배가 될 거다. 아니, 1000배. 그럼 내 일은? 없다. 주니어는 더더욱 없다. 아마도 SI 회사는 반 정도 없어질 거다. 스타트업은 개발자를 절반으로 줄일 거다. 그럼 내 선택지는?그냥 계속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산다. → 언제까지?다른 분야로 간다. → 어디로?더 깊이 파고든다. → 근데 이미 AI가 깊이 파고 있는데?기획으로 간다. → 아, 그게 있지.내 뇌가 멈춘 것 같다. 코딩할 때는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기획 문서 쓸 때는 뭔가 들어온다. 다른 사람의 코드를 보면 "이거 왜 이래?"가 나온다. 근데 내 코드를 짤 때는 아무것도 없다. GPT가 다 했으니까. 요즘 나는 이런 사람이다. 업무 중 가장 많이 하는 일: 채팅 업무 중 가장 재밌는 일: 기획 문서 작성 업무 중 가장 싫은 일: 실제 코딩 휴일에 하는 일: PM 인강 들음 저녁에 하는 일: 회사 프로젝트 기획 문서 작성 코딩은? 잘하기는 한다. 근데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면 AI가 더 잘하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AI와 비교가 되니까. 인간이 AI와 속도 경쟁을 하면? 지는 거다. 항상. 그래서 지는 대신 딴 길로 간다. 기획. 사람을 이해하는 것. 숫자로 설득하는 것. 미래를 예측하는 것. 아직 AI는 내 감을 못 따라온다. 아직이다.PM 공고를 본다. "기획 경력 3년 이상 우대." 내 경력은 0년이다. "프로덕트 마인드 강한 사람." 내 마인드는 뭐가 강한가. AI를 믿는 마음. "사용자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사용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나. 코딩만 했다. 근데 할 수는 있겠지. 개발자 출신 PM도 많잖아. 블로그 봤어. 링크드인 봤어. 트위터 봤어. 다 성공했다고 한다. 개발자 배경이 기획에서 무기가 된다고 한다. "이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부분의 영향도를 개발자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성능 최적화를 고려한 UX 설계입니다." 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불안하다. 이력서 냈어. 서류 떨어졌어. 왜냐면 기획 경력이 0년이었으니까. 회사는 기획 경력 3년을 원했으니까. "개발자 출신도 많고, 개발자가 기획을 배우는 건..." 아내가 말했다. "근데 너는 왜 시작을 못 하는 거야?" 그 질문이 제일 무섭다. 내일 아침. 알람이 울 거다. 7시. 침대에서 나올 거다. 샤워할 거다. 출근할 거다. 회사 도착. 9시 반. 슬랙 확인. "한기획님, 이 부분 코드 짜 줄 수 있어요?" "네. ChatGPT한테 물어봐 드리겠습니다." 웃음. 온라인상의 웃음. 나는 웃지 않는다.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붙여넣는다. 30분. 완성. "완료됐습니다." "빨라요." "네." 그리고 또 다음 일을 기다린다. 다음 프롬프트. 다음 복붙. 이게 5년인가. 10년인가. 언제까지인가. 기획 공고를 본다. 한 번 더. "기획 경력 3년 이상." 나는 여전히 0년이다. 개발자로 6년. 기획자로 0년. 둘 다 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6개월. 내일은 뭐가 될까. 내일도 GPT에 물어볼까. "내 커리어는 이대로 괜찮을까?"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뭐라고 할까. 아마 이럴 거다.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시작하세요." 근데 나는 시작하지 못한다. 왜냐면 그 조언도 AI한테 물어본 거라고 생각되니까.오늘도 버틴다. 내일도 GPT에 물어봐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