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도피인가

기획 전환은 도피인가 진화인가

기획 전환은 도피인가 진화인가

기획 전환은 도피인가 진화인가 오전 10시, 코드 리뷰 주니어가 올린 PR을 본다. 200줄짜리 함수. 근데 잘 짰다. "GPT한테 물어봤어요." 3일 걸릴 걸 하루 만에. 내가 짰으면 더 오래 걸렸을 거다. 코멘트 단다. "수정 없음. Approve."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뭔가 이상하다. 나는 뭘 한 거지?점심, 기획자 앞에서 PM 지혜가 말한다. "이번 기능, 개발 일정 얼마나 걸려요?" "3주요." "2주 안에 안 돼요? 경쟁사가..." 짜증 난다. 근데 반박할 말이 없다. GPT 쓰면 2주 맞다. "2주 해볼게요." 식당 나오면서 생각한다. 저 사람은 AI한테 안 빼앗길까? 기획은 '왜'를 고민한다. AI는 '어떻게'만 안다. 그런가?오후 3시, 검색 "PM 연봉" "개발자 출신 PM" "AI 시대 기획자 전망" 탭이 12개 열려 있다. 다 비슷한 내용이다. 어떤 글: "기획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글: "GPT가 PRD도 씁니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브런치 하나 더 연다. 개발자에서 PM 전환한 사람. "제 선택은 옳았습니다. 코딩은 AI가 하고..." 닫는다. 너무 희망적이다. 불안하다. 오후 5시, 회의 기획 리뷰 회의. 지혜가 발표한다. "사용자 페인 포인트는 이거고요, 그래서 이 기능을..." 논리가 약하다. 데이터도 부족하다. 말하려다 참는다. 너 일이잖아. 근데 계속 생각난다. 저거 왜 안 물어봤지? 저 지표 의미 없는데? 회의 끝나고 지혜한테 슬랙 보낸다. "저 부분 데이터 더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답장: "오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기분이 이상하다. 좋으면서 찝찝하다. 나는 왜 기획자 일을 신경 쓰지?퇴근길, 지하철 유튜브 숏츠 본다. "AI가 대체 못 하는 직업 TOP 5" 기획자가 3위다. 이유: "전략적 사고" 댓글 본다. "ㅋㅋ 기획서도 GPT가 써주는데" 누가 맞는 거야. 옆자리 사람 본다. 노트북 켜고 코딩한다. Python이다. 동질감 느낀다. 그리고 허무함. 우리 다 똑같이 불안하구나. 집 도착한다. 현관문 열면서 생각한다. 나는 도망치는 건가, 준비하는 건가. 밤 10시, 아내와 대화 "오늘도 기획 생각했어?" "응." "하고 싶어?" "모르겠어. 하고 싶은 건지, 개발이 무서운 건지." 아내가 웃는다. "그게 뭐가 달라?" "...뭐?" "무서우니까 다른 거 찾는 거고, 다른 거 하고 싶으니까 지금이 무서운 거지." 말이 된다. 근데 답은 아니다. "전환하면 연봉 깎여." "얼마나?" "500? 1000?" "감당 가능하잖아." "응. 근데..." "근데?" "기획도 나중엔 AI한테 밀리면?" 아내가 한숨 쉰다. "그럼 그때 또 찾으면 되지." 쉽게 말한다. 근데 틀린 말은 아니다. 새벽 1시, 노션 'PM 전환 계획' 페이지를 연다. 3개월째 업데이트 중이다. 3개월 차 목표: 사내 프로젝트 기획서 1개 작성 PM 인터뷰 3명 프로덕트 관련 책 5권2개 했다. 인터뷰를 못 했다. 무섭다. 거절당할까 봐. 새 페이지 만든다. 제목: '왜 기획인가' 타이핑한다. "AI가 코드를 짜는 시대. 나는 뭘 하고 싶은가?" 지운다. "개발이 재미없어졌다. 그게 AI 때문인가, 원래 그랬나?" 지운다. "기획이 좋아서인가, 개발이 싫어서인가?" 답이 안 나온다. 노션 닫는다. 유튜브 킨다. "개발자 커리어 고민" 검색. 영상 10개 본다. 다 다르게 말한다. 어떤 사람: "개발 끝까지 파세요." 어떤 사람: "빨리 전환하세요." 2시가 넘었다. 자야 하는데. 한 영상 더 본다. 제목: "도피와 성장의 차이" "도피는 뒤를 보고, 성장은 앞을 본다." 진부하다. 근데 멈춘다. 나는 뭘 보고 있지? 다음 날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생각한다. 어제 그 질문. 나는 'AI한테 밀리기 싫어서' 도망치나? 아니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가나? 둘 다인 것 같다. 회사 도착한다. 엘리베이터 탄다. 동료가 말한다. "어제 GPT한테 시킨 코드, 버그 10개 나왔어. 결국 내가 다 고쳤지 뭐." 웃는다. "그래도 밑작업은 해주잖아." "그게 고마운 건지 슬픈 건지." 동감한다. 자리에 앉는다. 슬랙 확인한다. 지혜가 보낸 메시지: "어제 말씀하신 데이터, 보니까 인사이트 나왔어요. 회의 때 공유할게요. 감사합니다!" 기분 좋다. 그리고 확신한다. 나 이거 좋아하는구나. 점심, 결심 식당에서 밥 먹는다. 지혜가 옆에 앉는다. "한기획 님, PM 관심 있으세요?" 심장이 뛴다. "어떻게 알았어요?" "요즘 질문하시는 거 보면... 개발자 질문이 아니라 기획자 질문이에요." "아..." "우리 팀 PM 하나 더 뽑는다는데, 지원해 보세요." "개발 경력만 있는데 될까요?" "개발 아는 PM이 제일 좋은데요?" 말이 된다. 근데 무섭다. "생각해 볼게요." "빨리 해요. 다음 주 지원 마감이래요." 사무실 돌아온다. 생각한다. 이게 기회인가, 함정인가. 오후, GPT와 대화 ChatGPT 킨다. 질문 친다. "개발자에서 PM 전환, 어떻게 생각해?" 답이 온다. 장점 3개, 단점 3개, 조언. 다 아는 얘기다. 다시 친다. "내가 도망치는 건지 성장하는 건지 어떻게 알아?" 답: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새로운 역할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현재 역할에서 무엇이 불만인지..." 뻔하다. 근데 맞다. 탭 닫는다. 오후 4시, 동료와 커피 개발팀 선배 민수 형이랑 커피 간다. 경력 10년차. "형, 요즘 개발 어때요? AI 나오고." "글쎄. 편하긴 한데, 실력은 안 늘어." "그쵸? 저도 그게..." "너 PM 생각하지?" "...어떻게 아세요?" "회의 때 보면 알지. 눈빛이 달라." 부끄럽다. "이상해요? 6년 했는데..." "아니. 나도 생각했어. 근데 안 했어." "왜요?" "무서워서. 새로 시작하는 게." "후회해요?" "글쎄. 근데 너는 해봐. 아직 젊잖아." 32살이 젊나? 근데 10년차한테는 젊다. "도망치는 것 같아서..." "도망이면 어때.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말이 된다. 사무실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형도 불안하구나. 오후 6시, 지원서 사내 공고를 다시 본다. "프로덕트 매니저 (PM) 경력직/신입" 요구 사항:사용자 중심 사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개발 프로세스 이해 우대마지막 거. 나한테 유리하다. 지원서 쓴다. "왜 PM이 되고 싶나요?" 1시간 쓴다. 지운다. 다시 쓴다. "개발을 하면서 '왜'를 묻게 되었습니다. 이 기능이 왜 필요한지, 사용자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코드는 '어떻게'를 다루지만, 저는 '왜'를 다루고 싶습니다." 진부하다. 근데 진심이다. 제출 버튼 앞에서 멈춘다. 10분 고민한다. 누른다. 밤, 집 아내한테 말한다. "지원했어. 사내 PM." "오! 잘했다." "떨어지면?" "그럼 또 지원하면 되지." "계속 개발자면?" "그것도 괜찮잖아." "근데 AI가..." 아내가 끊는다. "야. 5년 뒤 걱정은 5년 뒤에 해." 맞다. 일주일 후, 면접 1차 면접 통과했다. 2차는 실무진. 면접관 셋. 기획팀장, PM 두 명. "개발에서 기획으로 가려는 이유가 뭔가요?" 준비한 답: "사용자 관점에서..." 실제 답: "솔직히 말하면, AI가 나오면서 개발이 불안해졌습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제가 개발하면서 제일 재밌었던 게 '왜 이 기능이 필요한가' 고민하는 거였어요. 그게 기획이더라고요." 정적. 망했나? 팀장이 웃는다. "솔직하네요. 좋습니다." "기획도 AI한테 대체될 텐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르겠습니다. 근데 개발보다는 나을 것 같아요. AI는 데이터 분석은 잘해도, 사람 마음은 아직 모르니까요." "아직은요?" "네. 아직은." 또 웃는다. "합격하면 연봉 협상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획 신입이면..." "깎이는 거 알아요. 근데 1~2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습니다." "장기적으론?" "3년 안에 지금 연봉 회복하고 싶습니다." "자신 있어요?" "개발 6년 했는데, 배우는 건 자신 있습니다." 면접 끝. 복도 나오면서 다리 떨린다. 이틀 후, 결과 슬랙 온다.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심장 터질 것 같다. 연봉: 5200만원. 1000만원 내려간다. 고민한다. 10분. 수락한다. 아내한테 전화한다. "붙었어." "진짜? 축하해!" "근데 천만 원 깎여."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거잖아." "응." 끊고 나서 생각한다. 나 진짜 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도망친 건가. 아직도 모르겠다. 한 달 후, PM 첫 출근 개발팀 자리 정리한다. 6년 쓴 책상. 동료들이 온다. "축하해." "연락하자." "잘하겠지." 민수 형이 마지막으로 온다. "잘하고." "형도요." "나는 뭐... 그냥 여기 있을 거 같다." "형도 할 수 있는데." "됐어. 나는 이게 편해." 악수한다. 기획팀 자리로 간다. 지혜 옆자리. "환영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노트북 켠다. 슬랙 채널이 바뀌었다. #dev에서 #product로. 첫 업무: "신규 기능 사용자 리서치" 코드는 한 줄도 없다. 데이터와 인터뷰만 있다. 낯설다. 그리고 떨린다. 점심시간. 지혜가 묻는다. "어때요? 후회 안 해요?" "모르겠어요. 아직." "언제 알 것 같아요?" "한 1년?" "그때까지 버텨요." 웃는다. "네." 3개월 후, 첫 기획 내가 기획한 기능이 배포됐다. "사용자 맞춤 알림" 개발은 내 전 팀이 했다. 코드 리뷰 요청 온다. 보고 싶다. 근데 참는다. 내 일이 아니다. 배포 후 지표 본다. 클릭률 12%. 목표는 10%. 성공이다. 근데 기분이 이상하다. 뿌듯한데, 허전하다. 직접 짠 게 아니라서? 아니면 원래 기획이 이런 건가? 지혜한테 묻는다. "기획하면 항상 이래요? 뭔가 한 거 같은데 안 한 거 같은 느낌?" "맞아요. 개발자는 결과물이 코드잖아요. 우리는 결과물이 '변화'거든요. 눈에 안 보여요." "적응돼요?" "시간 걸려요. 근데 어느 순간 보여요. 사용자가 행복해하는 게." 그날 밤. 앱 리뷰 본다. "알림 기능 좋아요! 딱 필요한 것만 와요." 별 다섯 개. 기분 좋다. 처음으로 확신한다. 나 제대로 온 거 같다. 6개월 후, 회고 노션 킨다. 6개월 전에 쓴 글. "기획이 좋아서인가, 개발이 싫어서인가?" 답 쓴다. "둘 다였다. 그리고 둘 다 괜찮다." 연봉은 5200만원. 1000만원 낮다. 근데 행복은? 측정 못 한다. 확실한 건:아침에 일어나기 편해졌다 회의가 지루하지 않다 GPT 쓰는데 죄책감 없다 (기획서 초안 시킬 뿐)불확실한 건:5년 뒤 PM도 AI한테 밀리나? 개발 안 하니까 실력 줄어드나? 이게 맞는 선택이었나?근데 알았다. 정답은 없다. 도피든 진화든, 움직인 게 중요하다. 멈춰 있었으면 더 불안했을 거다. 1년 후, 민수 형 연락 민수 형한테 연락 온다. "밥 먹자." 만난다. 형이 먼저 말한다. "나도 이직했어." "어디요?" "PM으로." "진짜요?" "너 보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웃는다. "잘하셨어요." "너 덕분이야. 용기 났어." "아니에요." "진짜야. 너 움직이는 거 보고, 나도 멈춰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어." 뭐라 대답할지 모르겠다. 형이 묻는다. "후회 안 해?" "가끔요. 근데 안 했으면 더 후회했을 것 같아요." "나도 그럴 것 같아." 헤어지면서 생각한다. 내 선택이 누군가한테 용기가 됐구나. 지금, 이 글 새벽 2시. 노션에 쓴다. "기획 전환은 도피인가 진화인가" 1년 고민한 질문. 답은: 둘 다다. 그리고 둘 다 아니다. 도피 같을 때도 있다. 개발이 무서워서 도망친 거 같을 때. 진화 같을 때도 있다. 내가 더 잘하는 걸 찾았을 때. 근데 중요한 건: 움직였다는 것. 멈춰서 '이게 맞나?' 고민하는 것보다, 일단 가보고 '아니면 돌아오지 뭐' 하는 게 나았다. AI 시대에 정답은 없다. 개발자도 불안하고, PM도 불안하고, 다 불안하다. 그럼 뭐 하지? 내가 덜 불안한 쪽으로 가는 거다. 나한테는 그게 기획이었다. 너한테는? 모른다. 네가 찾아야 한다.도피든 진화든, 움직이면 답이 보인다. 아직 안 보여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