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출신 PM 후기 블로그를 매일 읽는 이상증

개발자 출신 PM 후기 블로그를 매일 읽는 이상증

새벽 2시의 루틴

또 새벽이다.

“개발자 출신 PM 성공 후기” 검색했다. 오늘로 37일째다.

북마크 폴더를 열었다. “PM 전환 성공” 폴더. 글이 83개다. 다 읽었다. 근데 또 읽는다.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미디엄, 링크드인. 다 찾아봤다.

“개발 6년 차, PM으로 전환하고 연봉 2배” “코딩하다 기획으로 갈아탔더니 인생이…” “개발자였던 내가 PM 되기까지 1년의 기록”

제목만 봐도 클릭하게 된다.

아내가 자다 깼다.

“또 그거 봐?”

“응. 잠깐만.”

“어제도 봤잖아.”

할 말이 없다. 맞다.

근데 멈출 수가 없다. 한 줄이라도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들의 공통점을 찾는 중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PM 전환 성공 케이스 분석.xlsx”

항목은 이렇다.

  • 전 직장
  • 개발 경력
  • 전환 시기
  • 준비 기간
  • 전환 방법
  • 연봉 변화
  • 키포인트

83명의 데이터를 정리했다.

카카오 출신 7명. 네이버 출신 12명. 쿠팡 3명. 스타트업 출신 48명.

개발 경력 평균 5.2년. 나는 6년. 비슷하다.

준비 기간 평균 8개월. 나는 6개월. 좀 더 해야 한다.

패턴이 보인다.

  1. 회사 내 이동이 제일 쉽다. 당연하다.
  2.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 경험을 어필했다. 나도 해야 한다.
  3. “개발 이해도 높은 PM” 이게 무기였다. 내 강점이다.

근데 이상한 건 있다.

다들 성공했다. 실패한 사람은 없다. 블로그에 실패담을 쓰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 생각이 들자마자 멈췄다.

‘나는 어떤 케이스지?‘

그의 길이 내 길일까

가장 많이 본 블로그가 있다.

“개발 7년 차, PM 전환 1년 만에 팀장”

이 사람 글을 15번 읽었다.

그는 토스에 있었다. 나는 중견 회사다. 그는 사내 이동했다. 나는 이직해야 한다. 그는 CTO가 밀어줬다. 나는 아무도 모른다.

조건이 다 다르다. 근데 자꾸 읽는다.

“그는 어떻게 설득했을까” “그는 첫 기획 문서를 어떻게 썼을까” “그는 면접에서 뭐라고 했을까”

댓글을 봤다.

“저도 PM 준비 중인데 도움 됐어요!” “개발자 출신 PM 최고예요!” “저도 곧 도전합니다!”

다들 준비 중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근데 실제로 전환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블로그 주인에게 DM을 보냈다. 3일 전이다.

“안녕하세요. 저도 개발자인데 PM 전환 준비 중입니다. 혹시 조언 구할 수 있을까요?”

아직 답 없다. 당연하다. 바쁘겠지.

근데 계속 DM 확인한다.

성공 사례 중독

유튜브도 봤다.

“개발자에서 프로덕트 오너로” “백엔드 개발자의 PM 이직기” “코딩 그만두고 기획으로 간 이유”

다 봤다. 구독했다. 알림 켜놨다.

영상마다 공통점이 있다.

“힘들었지만 잘 선택했어요” “개발 지식이 PM에 도움 돼요” “연봉은 처음엔 내려갔지만 결국 올랐어요”

긍정적이다. 다들 잘됐다.

근데 왜 나는 불안할까.

아내가 물었다.

“왜 맨날 성공한 사람만 찾아봐?”

“그게 도움이 되니까.”

“실패한 사람 얘기는 안 봐?”

”…없어. 그런 글.”

“있을 거 아냐. 안 쓰는 거지.”

맞는 말이다.

PM 전환 실패한 사람. 다시 개발로 돌아간 사람. 전환했는데 후회하는 사람.

분명 있다. 근데 글은 없다.

성공한 사람만 글을 쓴다. 당연하다.

나는 생존 편향에 빠진 거다.

그들과 나의 차이

냉정하게 비교했다.

블로그 주인공: 네이버 출신, PM 제안 받음 나: 중견 회사, 아무도 모름

블로그 주인공: 개발팀장 경험, 협업 검증됨 나: 시니어지만 팀장 아님

블로그 주인공: 회사 내 기획 프로젝트 참여 나: 혼자 노션에 문서 씀

차이가 크다.

근데 자꾸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이게 희망일까 착각일까.

회사에서 기획팀 사람이랑 얘기했다.

“형 PM 관심 있으세요?”

“어 좀. 요즘 공부하는 중이야.”

“아 저도 블로그 봤어요. 개발자 출신 PM 좋다던데.”

“응. 근데 이직은 좀 어려울 것 같아.”

“왜요?”

“경력이 없으니까.”

“블로그엔 다들 성공했던데요?”

”…그렇긴 해.”

그 사람도 블로그 봤다. 나랑 똑같은 걸 본 거다.

다들 본다. 근데 다들 실행하진 않는다.

밤마다 여는 폴더

북마크 폴더를 또 열었다.

제일 위에 있는 글. “개발 5년에서 PM으로, 내 선택”

이 글을 20번도 넘게 읽었다.

그의 스토리가 좋다. 그의 결정이 멋있다. 그의 결과가 부럽다.

근데 그가 나는 아니다.

새 글을 찾았다.

“개발자 출신 CPO가 된 이유”

CPO. 최고 제품 책임자. 더 높다.

클릭했다. 읽었다. 북마크했다.

84개가 됐다.

내일도 읽을 거다. 모레도 읽을 거다.

이게 준비일까 회피일까.

행동하지 않는 이유

솔직히 안다.

블로그만 읽고 있다. 실제론 아무것도 안 했다.

이력서는 5개 넣었다. 다 떨어졌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노션만 만들었다. 기획은 안 썼다. 사내 이동은 눈치만 봤다. 말은 안 했다.

그냥 성공한 사람들 글만 읽는다.

왜 읽을까.

위안을 받으려고. “나도 할 수 있어”를 확인하려고.

근데 읽으면서 동시에 생각한다.

“저 사람은 조건이 좋았어” “나는 좀 다르니까” “조금만 더 준비하고”

핑계다. 다 핑계다.

블로그 읽기가 준비가 된 거다. 착각이다.

댓글을 달았다

용기를 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PM 전환 준비 중입니다.”

15분 뒤에 답글이 달렸다.

“화이팅입니다!”

끝이다. 이게 끝이다.

기대한 게 뭐였지. 구체적 조언? 멘토링 제안?

없다. 그냥 “화이팅”이다.

다른 블로그에도 댓글 달았다.

“혹시 개발자 출신 PM 채용하는 곳 아시나요?”

답글 없다.

또 다른 블로그에 물었다.

“저는 경력이 없는데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답글 왔다.

“저도 그냥 부딪혀봤어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도움이 안 된다. 당연하다. 그들은 모른다. 내 상황을.

같은 길은 없다

깨달았다.

그들의 길이 내 길이 아니다.

토스 출신의 방법이 내 방법이 아니다. 네이버 출신의 타이밍이 내 타이밍이 아니다. 사내 이동 성공담이 내 이직 전략이 아니다.

조건이 다르다. 환경이 다르다. 사람이 다르다.

그런데도 자꾸 읽는다.

“그래도 힌트는 있지 않을까” “그래도 참고는 되지 않을까”

힌트는 있다. 근데 답은 없다.

참고는 된다. 근데 해결책은 없다.

내가 만들어야 한다. 내 길을.

오늘도 검색했다

“개발자 PM 전환 성공”

새 글이 올라왔다.

“개발 4년 차, 스타트업 PM 합격 후기”

클릭했다. 읽었다. 북마크했다.

85개가 됐다.

내일이면 90개가 될 것 같다.

아내가 또 물었다.

“그래서 언제 할 건데?”

”…준비하고 있잖아.”

“블로그 읽는 게 준비야?”

할 말이 없다.

맞다. 이건 준비가 아니다.

준비하는 척이다. 안전하게 동경하는 거다.

86번째 글

새벽 3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봤다.

“개발자에서 PM 도전했다가 실패한 썰”

제목이 다르다. 실패 얘기다.

드디어 나왔다. 찾았다.

근데 클릭을 못 하겠다.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

왜 안 누를까.

무섭다. 실패 얘기가.

성공 얘기는 희망을 준다. 실패 얘기는 현실을 준다.

나는 희망이 필요했다. 현실은 필요 없었다.

5분을 고민했다.

결국 안 눌렀다.

북마크 폴더를 닫았다. 그 글은 저장 안 했다.

그래도 또 읽을 거다

노트북을 껐다.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면접 준비를 해야 한다. 기획 문서를 써야 한다. 사내 이동을 타진해야 한다.

근데 아마 내일도 블로그부터 열 것 같다.

“개발자 출신 PM”

이 키워드를 검색하는 게 익숙하다.

그들의 성공을 읽는 게 편하다.

내 실패를 마주하는 것보다.


블로그는 87개가 됐다. 내 이력서는 5개에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