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Dec, 2025
6년 경력 개발자가 기획 신입이 되는 과정의 두려움
6년 경력 개발자가 기획 신입이 되는 과정의 두려움 오늘 이력서를 넣었다 PM 신입 공고에 이력서를 넣었다. 경력란에 "6년"을 썼다가 지웠다. 다시 "개발 6년, 기획 경력 無"라고 썼다. 제출 버튼 누르는 데 5분 걸렸다. 개발자 공고에 넣을 땐 이런 적 없었다. 클릭 한 번이면 끝이었다. 근데 오늘은 손가락이 안 움직였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6년을 날리는 기분이었다. 아니, 날리는 건 아니지. 근데 그렇게 느껴졌다.연차가 리셋된다는 것 회사에서 나는 시니어다. 주니어들이 물어보면 답해준다. 코드 리뷰할 때 내 의견이 반영된다. 회의에서 발언권이 있다. 근데 PM으로 가면? 신입이다. 1년차 기획자한테도 물어봐야 한다. "피그마는 어떻게 쓰는 건가요?" "와이어프레임 템플릿 있나요?" 상상만 해도 창피하다. 32살에 신입 교육 받는 거. 다른 신입들은 20대 중반일 텐데. 어제 PM 인강 보다가 강사가 말했다. "기획은 실무가 전부입니다. 책으로는 안 됩니다." 맞는 말이다. 근데 그 실무를 어디서 쌓지? 개발은 6년 했다. 그거 다 어디 가는 건가. 물론 개발 지식이 PM할 때 도움 된다고들 한다. 근데 그게 6년을 정당화할 만큼인가? 엑셀 잘하면 연봉 오른다는 말도 있잖아. 근데 엑셀 10년 해서 연봉 1억 받는 사람은 없다. 개발 지식도 그런 거 아닐까. 있으면 좋은데 그게 전부는 아닌.연봉 계산기를 돌렸다 지금 6200만원이다. PM 신입 공고를 보니 3500~4500만원이다. 적게는 1700만원, 많게는 2700만원이 날아간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40만원에서 225만원 차이. 세후로 따지면 한 달에 100~170만원 덜 받는다. 아내한테 말했다. "기획 가면 연봉 2000만원 깎인다." 아내가 말했다. "괜찮아. 나도 일하잖아." 근데 괜찮을까? 대출 이자가 월 80만원이다. 관리비 20만원. 통신비 10만원. 보험 15만원. 여기까지만 125만원이다. 연봉 깎이면 이거 내기도 빠듯하다. 물론 5년 뒤를 생각하면 다르다. PM으로 5년 차면 8000만원도 받는다던데. 개발자는? AI 시대에 6년 차 개발자 연봉이 지금만큼 보장될까? 근데 그건 5년 뒤 얘기다. 지금 당장 월세는 어떻게 내지? 솔직히 말하면 돈 때문에 못 옮기는 거다. 비전이 어떻고 AI가 어떻고 하는데, 진짜 이유는 통장 잔고다. 호칭이 바뀐다 지금은 "한 개발자님"이다. 메신저에서 개발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 회의에서도 "한기획 개발자님 의견은 어떠세요?" PM 가면? "한기획님"도 아니고 "기획님"도 아니다. 그냥 "한기획씨"다. 아니면 "신입분". 별거 아닌 것 같지? 근데 크다. 호칭은 위치를 말한다. "님"과 "씨"의 차이. 6년의 무게가 거기 있다. 더 웃긴 건 개발팀 후배들이다. 지금은 내가 선배다. 근데 PM 가면? 그 후배들한테 부탁해야 한다. "이거 개발 가능할까요?" "일정 언제쯤 될까요?" 관계가 역전된다. 아니, 역전도 아니다. 그냥 내가 낮은 위치로 가는 거다. 어제 회사 기획팀 막내가 개발팀한테 일정 물어보다가 쩔쩔맸다. 개발팀이 "그건 안 돼요"라고 하니까 할 말이 없더라.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6년 동안 쌓은 게 호칭만은 아니다. 근데 호칭이 무너지면 다른 것도 따라 무너진다. 그게 두렵다.전문성의 초기화 파이썬은 잘한다. Django, FastAPI 다 할 줄 안다. AWS 인프라 구축도 했다. DB 설계, API 개발, 배포 자동화까지. 근데 그게 PM한테 필수인가? 아니다. 있으면 좋은데 없어도 된다. PM한테 필요한 건 뭔가. 사용자 인터뷰. 데이터 분석. 우선순위 설정. 이해관계자 조율. 로드맵 작성. 하나도 안 해봤다. 책으로만 읽었다. 6년 동안 쌓은 전문성이 있다. 근데 그게 다음 직무에서 쓸모없다. 완전히 쓸모없는 건 아니지만, 핵심은 아니다. 친구가 물었다. "너 개발 잘하잖아. 그거 버리기 아깝지 않아?" 아깝다. 솔직히 아깝다. 근데 아까워서 붙잡고 있으면 10년 뒤엔 더 아깝지 않을까? GPT한테 코드 짜달라고 하면 짠다. 내가 6년 동안 배운 걸 3초 만에 뱉어낸다. 물론 검수는 내가 해야 한다. 근데 그 검수가 6년의 가치를 정당화할까? 전문성이 초기화된다. 6년이 0년이 된다. 숫자로만 보면 손해다. 근데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 않나. 그렇게 믿고 싶다. 면접에서 뭐라고 말할까 "지원 동기가 뭔가요?" "AI 시대에 개발자 미래가 불안해서요." 이렇게 말하면 떨어진다. 당연하다. 누가 도망치는 사람을 뽑나. "개발하면서 기획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제품의 방향을 정하는 게 코드보다 중요하더라고요." 이것도 애매하다. 6년 하다가 이제 느꼈다고? 진심이 안 느껴진다. "개발자로서 제품을 만들면서, 사용자 관점에서 더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좀 낫다. 근데 면접관이 물으면? "그럼 개발하면서도 할 수 있지 않나요?" 할 말이 없다. 진짜 이유는 간단하다. 개발 계속하기 싫다. AI한테 밀릴 거 같다. 기획이 더 오래갈 것 같다. 근데 이걸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다. 포장해야 한다. "제품 전체를 보고 싶다", "사용자 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싶다", "더 큰 임팩트를 만들고 싶다". 거짓말은 아니다. 근데 전부도 아니다. 면접은 결국 포장의 기술이다. 6년 차가 신입 면접 준비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 주변의 시선 부모님한테 말했다. "저 기획자로 전환하려고요." 아버지가 물었다. "그게 뭐 하는 건데?" "제품 기획하는 거요. 어떤 기능 만들지 정하고, 일정 조율하고." "그거 개발자가 더 낫지 않아? 너 개발 잘한다며?" 설명했다. AI 얘기, 미래 전망, PM의 중요성. 10분 설명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도 개발이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더 이상 설명 안 했다. 이해 못 하신다. 60대한테 AI 시대를 설명하는 건 무리다. 회사 동료들도 비슷하다. "야 개발자가 연봉 더 높은데?" "기획은 스트레스 장난 아니래." "너 코딩 잘하는데 왜?" 다들 말린다. 근데 그 사람들은 내 미래에 책임 안 진다. 아내만 다르다.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나도 일하니까." 고맙다. 근데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현실은 냉정하다. 주변이 다 말리는 길을 가는 건 외롭다. 근데 다들 찬성하는 길이 정답일까? 그것도 모른다. 1년차 PM의 하루 유튜브에서 "PM 브이로그"를 검색했다. 1년 차 PM의 하루. 조회수 3만. 오전 9시: 데일리 스크럼. 어제 한 일, 오늘 할 일 공유. 오전 10시: 데이터 분석. GA4 보면서 사용자 이탈 구간 확인. 오전 11시: 개발팀 미팅. 다음 스프린트 기능 조율. 점심 후: 와이어프레임 작성. 피그마로 화면 그리기. 오후 3시: 디자이너 피드백. "이 버튼 위치 이상하지 않나요?" 오후 5시: 마케팅팀 회의. 다음 달 캠페인 일정 논의. 퇴근 전: 내일 회의 자료 정리. 보는 내내 생각했다. '나 이거 할 수 있나?' GA4는 본 적 있다. 근데 분석은 안 해봤다. 피그마는 쓸 줄 안다. 근데 화면은 안 그려봤다. 회의는 많이 했다. 근데 주도는 안 해봤다. 다 처음이다. 1년 차가 하는 일을 6년 차가 처음 한다. 이게 말이 되나? 영상 댓글을 봤다. "PM 꿈꾸는 대학생입니다. 도움 됐어요!" 나도 대학생 기분이다. 32살인데.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획 경력을 만들어야 한다. 면접에서 보여줄 게 필요하다. 노션을 켰다.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안"이라고 제목을 썼다. 주제를 정했다. 개발자를 위한 알고리즘 문제 추천 서비스. 실력에 맞는 문제를 AI가 골라준다. 타겟 유저를 정의했다. 코딩테스트 준비하는 주니어 개발자. 1~3년 차. 백준이나 프로그래머스 쓰는데 어떤 문제부터 풀지 모르는 사람들. 문제 정의를 썼다. 난이도가 너무 높으면 포기, 너무 낮으면 시간 낭비. 적절한 문제를 찾기 어렵다. 솔루션을 적었다. AI가 지난 풀이 기록을 분석해서 딱 맞는 난이도 문제 추천. 실력이 늘면 자동으로 난이도 상승. 여기까지 쓰는 데 2시간 걸렸다. 개발하면 30분이면 구조 잡는데. 유저 플로우를 그렸다. 피그마로 화면 흐름도 만들었다. 디자인은 못 한다. 그냥 네모 박스로 대충. 3시간 만에 8페이지가 나왔다. 완성도는 낮다. 근데 이게 내 첫 기획 문서다. 뿌듯했다. 동시에 불안했다. '이 정도로 면접 볼 수 있나?' 면접 탈락 메일 지난주에 넣은 PM 지원서 결과가 왔다. "귀하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였으나..." 탈락이다. 예상했다. 근데 막상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개발자 이력서로는 서류 통과율이 70%였다. 10군데 넣으면 7군데는 면접 봤다. PM 이력서는? 5군데 넣어서 5군데 다 탈락. 100% 탈락률. 메일을 다시 읽었다. "기획 실무 경력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당연하다. 경력직 공고니까. 신입 공고를 찾아봤다. "PM 신입 채용, 경력 무관". 근데 자격요건을 보니 "포트폴리오 필수". 포트폴리오가 뭔데?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안? 아니면 실제로 출시한 서비스? 후자면 난 없다. 다시 메일을 닫았다. 개발자로는 어디든 갈 수 있다. PM으로는 어디도 안 받아준다. 문이 안 열린다. 두드리고 있는데 열쇠가 없다. 열쇠는 "실무 경력"인데, 실무 경력은 어디서 쌓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PM 되려면 경력이 필요한데, 경력 쌓으려면 PM이 돼야 한다. 퇴사 타이밍 언제 그만둘까. 이게 제일 큰 고민이다. 지금 당장 그만두면? 수입 0원. PM 구하기 전까지 백수. 최소 3개월, 길면 6개월. 버틸 수 있나? 예금이 1500만원 있다. 한 달 생활비 250만원. 6개월이면 1500만원. 딱 떨어진다. 근데 이건 비상금이다. 다 쓰면 진짜 끝이다. 그럼 다니면서 구직? 지금 하는 중이다. 근데 안 된다. 면접 시간 맞추기도 어렵다. "오후 2시 면접 가능하세요?" 불가능하다. 회의 있다. 연차를 쓸까? 근데 PM 면접 볼 때마다 연차 쓰면 의심받는다. "쟤 이직 준비하나?" 제일 좋은 건 이직 확정된 후 퇴사다. 근데 그게 안 돼서 문제다. 차선책은 일단 버티기. 개발자로 다니면서 사이드로 포트폴리오 만들기. 1년 뒤 다시 지원. 근데 1년이면? 7년 차 개발자가 된다. 나이는 33살. PM 신입으로 들어가기엔 더 애매하다. 타이밍을 놓치는 게 두렵다. 근데 성급하게 그만두는 것도 두렵다. 그래서 매일 출근한다. 답 없이. 개발팀 회식 어제 개발팀 회식이었다. 고기 먹으면서 팀장이 물었다. "한기획씨는 앞으로 어떤 개발자 되고 싶어요?" 순간 멈췄다. 뭐라고 답하지? "음... 풀스택도 좋고, 아키텍처 쪽도 관심 있습니다." 거짓말이다. 풀스택도 아키텍처도 관심 없다. 관심 있는 건 PM이다. 근데 말 못 했다. 여기서 "저 기획 가고 싶어요"라고 하면? 분위기 이상해진다. "쟤 나갈 생각이네." 낙인찍힌다. 후배가 말했다. "형은 코드 리뷰 잘해주셔서 좋아요. 계속 같이 일했으면." 고맙다. 근데 미안하다. 나 떠날 생각이다. 두 얼굴로 사는 기분이다. 낮에는 개발자. 밤에는 PM 지망생. 회사에선 코드 리뷰. 집에선 기획 문서. 이중생활이 지친다. 근데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갈 곳이 정해지기 전까진 여기 있어야 한다. 팀장이 또 말했다. "우리 팀 내년에 시니어 한 명 더 뽑을 건데, 한기획씨가 리드 맡아줬으면." "...감사합니다." 리드는 못 한다. 내년엔 여기 없을 거다. 근데 그 말도 못 했다. 밤 12시의 노션 퇴근 후 11시. 씻고 나니 11시 반. 아내는 잔다. 나는 노트북을 켠다. 노션에 "PM 로드맵"이라는 페이지가 있다. 3개월 전에 만들었다. 할 일 목록:PM 책 10권 읽기 (완료: 10권) 기획 강의 듣기 (완료: 3개) 포트폴리오 만들기 (진행 중: 1개) 네트워킹 (완료: PM 2명 커피챗) 이력서 넣기 (진행 중: 5곳 탈락)체크 표시를 보니까 뿌듯하다. 근데 동시에 허망하다. 이렇게 했는데 결과는 전무. 새로운 할 일을 추가한다.사이드 프로젝트 2개 더 기획 PM 커뮤니티 가입해서 활동 블로그에 기획 관련 글쓰기언제 다 하지? 주말에? 근데 주말은 아내랑 시간 보내야 한다. 평일 밤? 지금처럼? 그럼 매일 12시 넘어서 잔다.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피곤하다. 근데 안 하면 더 불안하다. 6년을 버리는 게 두려우면 지금 더 해야 한다. 시계를 본다. 12시 17분. 내일 회의가 9시 반에 있다. 자야 한다. 근데 노션을 계속 본다. 아내가 뒤척인다. "안 자?" "응, 곧 잘게." 거짓말이다. 1시간은 더 깰 거다. 그래도 가야 하는 이유 두렵다. 연차 리셋, 연봉 감소, 전문성 초기화, 주변 반대. 다 무섭다. 근데 더 무서운 게 있다. 10년 뒤에도 여기 그대로 있는 것. 개발 10년 차가 되면? 연봉은 오른다. 8000만원, 9000만원. 좋다. 근데 그때도 주니어가 GPT로 짠 코드를 검수하고 있을까? 그때도 "이거 AI한테 시키면 되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5년 뒤 개발자 채용 공고가 지금의 절반이 되면? 경쟁은 두 배가 된다. 10년 차도 자르는 시대가 오면? 그때 가서 전환하면 늦다. 37살에 PM 신입? 불가능하다. 지금은 32살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아니, 늦었을 수도 있다. 근데 지금 안 하면 더 늦는다. 두려움과 불안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전환의 두려움 vs 정체의 불안. 나는 불안이 더 크다. 그래서 간다.6년을 초기화하는 건 두렵다. 근데 6년에 갇혀 있는 게 더 두렵다. 그래서 오늘도 PM 공고를 검색한다.
- 22 Dec, 2025
기획 전환은 도피인가 진화인가
기획 전환은 도피인가 진화인가 오전 10시, 코드 리뷰 주니어가 올린 PR을 본다. 200줄짜리 함수. 근데 잘 짰다. "GPT한테 물어봤어요." 3일 걸릴 걸 하루 만에. 내가 짰으면 더 오래 걸렸을 거다. 코멘트 단다. "수정 없음. Approve."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뭔가 이상하다. 나는 뭘 한 거지?점심, 기획자 앞에서 PM 지혜가 말한다. "이번 기능, 개발 일정 얼마나 걸려요?" "3주요." "2주 안에 안 돼요? 경쟁사가..." 짜증 난다. 근데 반박할 말이 없다. GPT 쓰면 2주 맞다. "2주 해볼게요." 식당 나오면서 생각한다. 저 사람은 AI한테 안 빼앗길까? 기획은 '왜'를 고민한다. AI는 '어떻게'만 안다. 그런가?오후 3시, 검색 "PM 연봉" "개발자 출신 PM" "AI 시대 기획자 전망" 탭이 12개 열려 있다. 다 비슷한 내용이다. 어떤 글: "기획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글: "GPT가 PRD도 씁니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브런치 하나 더 연다. 개발자에서 PM 전환한 사람. "제 선택은 옳았습니다. 코딩은 AI가 하고..." 닫는다. 너무 희망적이다. 불안하다. 오후 5시, 회의 기획 리뷰 회의. 지혜가 발표한다. "사용자 페인 포인트는 이거고요, 그래서 이 기능을..." 논리가 약하다. 데이터도 부족하다. 말하려다 참는다. 너 일이잖아. 근데 계속 생각난다. 저거 왜 안 물어봤지? 저 지표 의미 없는데? 회의 끝나고 지혜한테 슬랙 보낸다. "저 부분 데이터 더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답장: "오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기분이 이상하다. 좋으면서 찝찝하다. 나는 왜 기획자 일을 신경 쓰지?퇴근길, 지하철 유튜브 숏츠 본다. "AI가 대체 못 하는 직업 TOP 5" 기획자가 3위다. 이유: "전략적 사고" 댓글 본다. "ㅋㅋ 기획서도 GPT가 써주는데" 누가 맞는 거야. 옆자리 사람 본다. 노트북 켜고 코딩한다. Python이다. 동질감 느낀다. 그리고 허무함. 우리 다 똑같이 불안하구나. 집 도착한다. 현관문 열면서 생각한다. 나는 도망치는 건가, 준비하는 건가. 밤 10시, 아내와 대화 "오늘도 기획 생각했어?" "응." "하고 싶어?" "모르겠어. 하고 싶은 건지, 개발이 무서운 건지." 아내가 웃는다. "그게 뭐가 달라?" "...뭐?" "무서우니까 다른 거 찾는 거고, 다른 거 하고 싶으니까 지금이 무서운 거지." 말이 된다. 근데 답은 아니다. "전환하면 연봉 깎여." "얼마나?" "500? 1000?" "감당 가능하잖아." "응. 근데..." "근데?" "기획도 나중엔 AI한테 밀리면?" 아내가 한숨 쉰다. "그럼 그때 또 찾으면 되지." 쉽게 말한다. 근데 틀린 말은 아니다. 새벽 1시, 노션 'PM 전환 계획' 페이지를 연다. 3개월째 업데이트 중이다. 3개월 차 목표: 사내 프로젝트 기획서 1개 작성 PM 인터뷰 3명 프로덕트 관련 책 5권2개 했다. 인터뷰를 못 했다. 무섭다. 거절당할까 봐. 새 페이지 만든다. 제목: '왜 기획인가' 타이핑한다. "AI가 코드를 짜는 시대. 나는 뭘 하고 싶은가?" 지운다. "개발이 재미없어졌다. 그게 AI 때문인가, 원래 그랬나?" 지운다. "기획이 좋아서인가, 개발이 싫어서인가?" 답이 안 나온다. 노션 닫는다. 유튜브 킨다. "개발자 커리어 고민" 검색. 영상 10개 본다. 다 다르게 말한다. 어떤 사람: "개발 끝까지 파세요." 어떤 사람: "빨리 전환하세요." 2시가 넘었다. 자야 하는데. 한 영상 더 본다. 제목: "도피와 성장의 차이" "도피는 뒤를 보고, 성장은 앞을 본다." 진부하다. 근데 멈춘다. 나는 뭘 보고 있지? 다음 날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생각한다. 어제 그 질문. 나는 'AI한테 밀리기 싫어서' 도망치나? 아니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가나? 둘 다인 것 같다. 회사 도착한다. 엘리베이터 탄다. 동료가 말한다. "어제 GPT한테 시킨 코드, 버그 10개 나왔어. 결국 내가 다 고쳤지 뭐." 웃는다. "그래도 밑작업은 해주잖아." "그게 고마운 건지 슬픈 건지." 동감한다. 자리에 앉는다. 슬랙 확인한다. 지혜가 보낸 메시지: "어제 말씀하신 데이터, 보니까 인사이트 나왔어요. 회의 때 공유할게요. 감사합니다!" 기분 좋다. 그리고 확신한다. 나 이거 좋아하는구나. 점심, 결심 식당에서 밥 먹는다. 지혜가 옆에 앉는다. "한기획 님, PM 관심 있으세요?" 심장이 뛴다. "어떻게 알았어요?" "요즘 질문하시는 거 보면... 개발자 질문이 아니라 기획자 질문이에요." "아..." "우리 팀 PM 하나 더 뽑는다는데, 지원해 보세요." "개발 경력만 있는데 될까요?" "개발 아는 PM이 제일 좋은데요?" 말이 된다. 근데 무섭다. "생각해 볼게요." "빨리 해요. 다음 주 지원 마감이래요." 사무실 돌아온다. 생각한다. 이게 기회인가, 함정인가. 오후, GPT와 대화 ChatGPT 킨다. 질문 친다. "개발자에서 PM 전환, 어떻게 생각해?" 답이 온다. 장점 3개, 단점 3개, 조언. 다 아는 얘기다. 다시 친다. "내가 도망치는 건지 성장하는 건지 어떻게 알아?" 답: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새로운 역할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현재 역할에서 무엇이 불만인지..." 뻔하다. 근데 맞다. 탭 닫는다. 오후 4시, 동료와 커피 개발팀 선배 민수 형이랑 커피 간다. 경력 10년차. "형, 요즘 개발 어때요? AI 나오고." "글쎄. 편하긴 한데, 실력은 안 늘어." "그쵸? 저도 그게..." "너 PM 생각하지?" "...어떻게 아세요?" "회의 때 보면 알지. 눈빛이 달라." 부끄럽다. "이상해요? 6년 했는데..." "아니. 나도 생각했어. 근데 안 했어." "왜요?" "무서워서. 새로 시작하는 게." "후회해요?" "글쎄. 근데 너는 해봐. 아직 젊잖아." 32살이 젊나? 근데 10년차한테는 젊다. "도망치는 것 같아서..." "도망이면 어때.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말이 된다. 사무실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형도 불안하구나. 오후 6시, 지원서 사내 공고를 다시 본다. "프로덕트 매니저 (PM) 경력직/신입" 요구 사항:사용자 중심 사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개발 프로세스 이해 우대마지막 거. 나한테 유리하다. 지원서 쓴다. "왜 PM이 되고 싶나요?" 1시간 쓴다. 지운다. 다시 쓴다. "개발을 하면서 '왜'를 묻게 되었습니다. 이 기능이 왜 필요한지, 사용자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코드는 '어떻게'를 다루지만, 저는 '왜'를 다루고 싶습니다." 진부하다. 근데 진심이다. 제출 버튼 앞에서 멈춘다. 10분 고민한다. 누른다. 밤, 집 아내한테 말한다. "지원했어. 사내 PM." "오! 잘했다." "떨어지면?" "그럼 또 지원하면 되지." "계속 개발자면?" "그것도 괜찮잖아." "근데 AI가..." 아내가 끊는다. "야. 5년 뒤 걱정은 5년 뒤에 해." 맞다. 일주일 후, 면접 1차 면접 통과했다. 2차는 실무진. 면접관 셋. 기획팀장, PM 두 명. "개발에서 기획으로 가려는 이유가 뭔가요?" 준비한 답: "사용자 관점에서..." 실제 답: "솔직히 말하면, AI가 나오면서 개발이 불안해졌습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제가 개발하면서 제일 재밌었던 게 '왜 이 기능이 필요한가' 고민하는 거였어요. 그게 기획이더라고요." 정적. 망했나? 팀장이 웃는다. "솔직하네요. 좋습니다." "기획도 AI한테 대체될 텐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르겠습니다. 근데 개발보다는 나을 것 같아요. AI는 데이터 분석은 잘해도, 사람 마음은 아직 모르니까요." "아직은요?" "네. 아직은." 또 웃는다. "합격하면 연봉 협상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획 신입이면..." "깎이는 거 알아요. 근데 1~2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습니다." "장기적으론?" "3년 안에 지금 연봉 회복하고 싶습니다." "자신 있어요?" "개발 6년 했는데, 배우는 건 자신 있습니다." 면접 끝. 복도 나오면서 다리 떨린다. 이틀 후, 결과 슬랙 온다.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심장 터질 것 같다. 연봉: 5200만원. 1000만원 내려간다. 고민한다. 10분. 수락한다. 아내한테 전화한다. "붙었어." "진짜? 축하해!" "근데 천만 원 깎여."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거잖아." "응." 끊고 나서 생각한다. 나 진짜 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도망친 건가. 아직도 모르겠다. 한 달 후, PM 첫 출근 개발팀 자리 정리한다. 6년 쓴 책상. 동료들이 온다. "축하해." "연락하자." "잘하겠지." 민수 형이 마지막으로 온다. "잘하고." "형도요." "나는 뭐... 그냥 여기 있을 거 같다." "형도 할 수 있는데." "됐어. 나는 이게 편해." 악수한다. 기획팀 자리로 간다. 지혜 옆자리. "환영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노트북 켠다. 슬랙 채널이 바뀌었다. #dev에서 #product로. 첫 업무: "신규 기능 사용자 리서치" 코드는 한 줄도 없다. 데이터와 인터뷰만 있다. 낯설다. 그리고 떨린다. 점심시간. 지혜가 묻는다. "어때요? 후회 안 해요?" "모르겠어요. 아직." "언제 알 것 같아요?" "한 1년?" "그때까지 버텨요." 웃는다. "네." 3개월 후, 첫 기획 내가 기획한 기능이 배포됐다. "사용자 맞춤 알림" 개발은 내 전 팀이 했다. 코드 리뷰 요청 온다. 보고 싶다. 근데 참는다. 내 일이 아니다. 배포 후 지표 본다. 클릭률 12%. 목표는 10%. 성공이다. 근데 기분이 이상하다. 뿌듯한데, 허전하다. 직접 짠 게 아니라서? 아니면 원래 기획이 이런 건가? 지혜한테 묻는다. "기획하면 항상 이래요? 뭔가 한 거 같은데 안 한 거 같은 느낌?" "맞아요. 개발자는 결과물이 코드잖아요. 우리는 결과물이 '변화'거든요. 눈에 안 보여요." "적응돼요?" "시간 걸려요. 근데 어느 순간 보여요. 사용자가 행복해하는 게." 그날 밤. 앱 리뷰 본다. "알림 기능 좋아요! 딱 필요한 것만 와요." 별 다섯 개. 기분 좋다. 처음으로 확신한다. 나 제대로 온 거 같다. 6개월 후, 회고 노션 킨다. 6개월 전에 쓴 글. "기획이 좋아서인가, 개발이 싫어서인가?" 답 쓴다. "둘 다였다. 그리고 둘 다 괜찮다." 연봉은 5200만원. 1000만원 낮다. 근데 행복은? 측정 못 한다. 확실한 건:아침에 일어나기 편해졌다 회의가 지루하지 않다 GPT 쓰는데 죄책감 없다 (기획서 초안 시킬 뿐)불확실한 건:5년 뒤 PM도 AI한테 밀리나? 개발 안 하니까 실력 줄어드나? 이게 맞는 선택이었나?근데 알았다. 정답은 없다. 도피든 진화든, 움직인 게 중요하다. 멈춰 있었으면 더 불안했을 거다. 1년 후, 민수 형 연락 민수 형한테 연락 온다. "밥 먹자." 만난다. 형이 먼저 말한다. "나도 이직했어." "어디요?" "PM으로." "진짜요?" "너 보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웃는다. "잘하셨어요." "너 덕분이야. 용기 났어." "아니에요." "진짜야. 너 움직이는 거 보고, 나도 멈춰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어." 뭐라 대답할지 모르겠다. 형이 묻는다. "후회 안 해?" "가끔요. 근데 안 했으면 더 후회했을 것 같아요." "나도 그럴 것 같아." 헤어지면서 생각한다. 내 선택이 누군가한테 용기가 됐구나. 지금, 이 글 새벽 2시. 노션에 쓴다. "기획 전환은 도피인가 진화인가" 1년 고민한 질문. 답은: 둘 다다. 그리고 둘 다 아니다. 도피 같을 때도 있다. 개발이 무서워서 도망친 거 같을 때. 진화 같을 때도 있다. 내가 더 잘하는 걸 찾았을 때. 근데 중요한 건: 움직였다는 것. 멈춰서 '이게 맞나?' 고민하는 것보다, 일단 가보고 '아니면 돌아오지 뭐' 하는 게 나았다. AI 시대에 정답은 없다. 개발자도 불안하고, PM도 불안하고, 다 불안하다. 그럼 뭐 하지? 내가 덜 불안한 쪽으로 가는 거다. 나한테는 그게 기획이었다. 너한테는? 모른다. 네가 찾아야 한다.도피든 진화든, 움직이면 답이 보인다. 아직 안 보여도 괜찮다.
- 21 Dec, 2025
기획자의 로직이 틀렸을 때, 지적해야 할까 침묵해야 할까
회의실에서 오늘 오전 기획 리뷰. 신규 기능 발표였다. PM이 화면 공유했다. 사용자 플로우 설명 시작. 1단계, 2단계까지는 괜찮았다. 3단계 가니까 이상했다. "여기서 사용자가 결제하면, 포인트 차감 후 쿠폰이 발급됩니다." 잠깐. 순서가 반대 아닌가. 쿠폰 먼저 발급하고 결제해야 쿠폰 할인이 적용되는 거 아냐? 결제 후 쿠폰 발급하면 다음 주문에서나 쓰는 건데. 이거 사용자가 원하는 플로우가 아닌 것 같은데. 손이 올라가려다 멈췄다. 말해야 하나.6초의 계산 머릿속이 빨리 돌아갔다. 말하면: 회의 중단, 기획자 당황, 다들 나 쳐다봄, '역시 개발자 출신은 까다로워' 소리 들음, 튀어 보임, 기획팀에서 '저 사람 또...' 생각함. 안 말하면: 개발 들어가서 어차피 발견됨, 일정 밀림, 기획 수정, 재검토, 시간 낭비, 근데 내 책임은 아님, 나중에 말해도 되지. 말하면 도움이 되는 건 맞다. 지금 고치면 30분, 나중 고치면 3일. 근데 튀고 싶진 않다. 나 PM 전환 준비 중인데 기획팀이랑 사이 나빠지면 안 되잖아. 발표는 계속됐다. 4단계, 5단계. 아무도 안 물어봤다. 다들 노트북만 봤다.과거의 나 1년 전엔 바로 말했다. "저기요, 그 부분 로직이..." 그때는 개발자였으니까. 개발자가 로직 지적하는 건 당연했으니까. PM도 "아 맞네요, 수정하겠습니다" 했다. 별일 아니었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나 기획 전환 준비 중이라는 거 몇 명이 안다. 이 상황에서 기획 로직 지적하면 '자기가 더 잘한다는 거냐' 이렇게 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에 한 번 있었다. 다른 PM이 API 스펙 설명할 때. 파라미터 순서가 이상했다. 말했다. 친절하게. "이 순서보다는 이렇게 하면 더 효율적일 것 같아요." 그 PM이 "아 네... 검토해볼게요" 했는데 표정이 안 좋았다. 나중에 동료가 말해줬다. "너 요즘 기획에 관심 많다더니 진짜 그러네." 뭔가 미묘했다. 칭찬은 아니었다. 개발자 출신의 저주 개발 6년 하면 생기는 것. 로직 오류 발견 능력. 자동으로 작동한다. 끌 수가 없다. 기획서 보면 머릿속에서 코드가 돌아간다. 이 플로우면 이 함수 호출되고, 저 조건이면 저 분기 타고. 그러다 보면 보인다. '어? 이거 엣지 케이스 처리 안 됐네.' 저주인 이유는 이거다. 남들은 안 보이는데 나만 보인다. 디자이너는 UI만 본다. 마케터는 전환율만 본다. 기획자는... 뭘 보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로직은 깊게 안 본다. 개발자만 본다. 데이터 흐름, 예외 처리, 동시성 문제. 회의 때마다 보인다. 그럼 말해야 할 것 같다. 안 말하면 나중에 개발자가 고생한다. 근데 말하면 '저 사람 왜 저래' 된다.침묵의 대가 결국 안 말했다. 회의 끝났다. 다음 주 개발 시작됐다. 담당은 주니어였다. 이틀 지나니까 슬랙 왔다. "한기획님, 이 플로우대로 하면 쿠폰 할인이 적용이 안 되는데 맞나요?" 알았다. 어차피 발견되는 거였다. PM한테 물어봤다. PM이 당황했다. "어? 제가 잘못 썼나..." 기획서 다시 봤다. 30분 후 수정본 왔다. 일정은 하루 밀렸다. 주니어가 이미 반대로 짜놨거든. 점심시간에 그 PM 만났다. "아 제가 실수했네요, 죄송해요." 했다. 미안했다. 회의 때 말할 걸. 근데 말했으면? 그 자리에서 PM 창피했을 거다. 10명 앞에서. 그것보다 나은가? 잘 모르겠다. 정답은 없다 이런 상황 한 달에 3번은 된다. 기획 로직 오류. 명백하다. 개발자 눈에는. 말하는 게 맞다. 팀을 위해. 효율을 위해. 근데 정치적으로는 복잡하다. 특히 나처럼 기획 전환 준비하는 사람은 더 복잡하다. 지적하면 '개발자 마인드를 못 버렸네' 소리 듣는다. 안 하면 '왜 보고도 안 말했어' 된다. 선배 PM한테 물어봤다. 개발자 출신이었다. "나도 그랬어. 초반엔 입 닫았지. 튀기 싫어서. 근데 결국 말하게 되더라. 안 하면 나중에 더 힘들어." "그럼 어떻게 말해요?" "회의 중에 안 해. 1:1로 해. '제가 개발하다 보니까 이런 부분이 궁금한데요' 이렇게. 지적 아니라 질문으로." 아. 그 방법. 질문의 기술 다음 회의 때 시도했다. 또 로직 이상한 부분 나왔다. 손 안 들었다. 메모만 했다. 회의 끝나고 슬랙 DM 보냈다. "OO님, 아까 3단계 부분 제가 이해가 잘 안 가서 여쭤보는데요. 사용자가 A 액션 후 B로 가면 C 데이터는 어떻게 전달되나요? 개발하려면 이 부분 명확해야 할 것 같아서요." 10분 후 답장 왔다. "아 그 부분이요? 음... C 데이터는..." 타이핑 멈췄다. 3분 후. "어? 제가 빠뜨린 부분이 있네요. 수정해서 다시 공유할게요!" 완벽했다. PM 기분 안 나쁘고, 문제 해결됐고, 나도 튀지 않았다. 질문. 지적 아니라 질문. "제가 이해가 안 가서요" 이 한 마디가 마법이었다. 타이밍의 문제 언제 말하느냐도 중요하다. 회의 중 vs 회의 후. 공개 vs 비공개. 회의 중 말하면 효율적이다. 다들 듣고 바로 공유된다. 근데 PM 입장에선 부담이다. 실수를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회의 후 말하면 시간은 좀 걸린다. 근데 PM이 조용히 수정할 수 있다. 체면 지킬 수 있다. 어느 게 나을까. 정답은 '관계'다. PM이랑 친하면 회의 중에 해도 된다. "어? 그 부분 이거 아니야?" 농담처럼. PM도 "아 맞다!" 하고 넘어간다. 안 친하면 조용히 해야 한다. 1:1로. 나는 지금 기획팀이랑 관계 쌓는 중이다. 아직 친하지 않다. 그러니까 조용히 한다. 6개월 후엔? PM 되면? 그땐 회의 중에도 편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나도 로직 틀릴 텐데. 틀릴 권리 기획자도 틀릴 권리 있다. 개발자도 버그 만든다. 디자이너도 UI 수정한다. 마케터도 캠페인 실패한다. 기획자도 로직 틀릴 수 있다. 당연하다. 문제는 '개발자 출신'이 지적하면 다르게 들린다는 거다. 같은 말을 다른 PM이 하면 "아 맞네요!" 인데, 개발자가 하면 "저 사람 또 따지네" 된다. 불공평하다. 근데 현실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개발자는 '로직'을 무기로 삼는다. 논리적으로 맞다/틀리다를 명확히 가른다. 이게 기획자 입장에선 부담이다. "틀렸다"는 말이 "능력 없다"로 들린다. 실제로는 아닌데. 그냥 로직 오류일 뿐인데. 감정이 섞인다. PM 전환을 앞둔 나 요즘 계속 생각한다. 내가 PM 되면 개발자가 내 로직 지적할 거다. 당연하다. 나도 틀릴 테니까. 그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 맞네요, 수정할게요"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기획 경력 짧다고 무시하나' 이렇게 될까. 지금 내가 다른 PM한테 하는 짓이 나한테 돌아올 거다. 카르마다. 그래서 요즘은 더 조심한다. 말투, 타이밍, 표현. 질문 형식으로, 비공개로, 부드럽게. 나도 곧 지적받을 입장이니까. 실수할 권리, 배울 권리, 성장할 권리. 기획자한테도 있다. 개발자 출신이라고 다 아는 척하면 안 된다. 근데 또 명백한 오류를 보고 침묵하는 것도 이상하다. 팀워크가 아니다. 균형이 필요하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계속 찾는 중이다. 어제의 선택 어제 또 있었다. 신규 기능 기획. 사용자 권한 처리 부분이 이상했다. "관리자가 수정 권한을 주면, 일반 유저도 모든 데이터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데이터'가 문제였다. 다른 사람 데이터까지 수정 가능하면 보안 이슈다. 아마 '본인 데이터만'이 빠진 것 같았다. 회의 중엔 안 말했다. 끝나고 슬랙 보냈다. "OO님, 권한 부분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모든 데이터'가 다른 유저 데이터도 포함인가요? 아니면 본인 데이터만인가요? 개발 전에 확인하고 싶어서요." 5분 후 답장. "아! 본인 데이터만이요. 문서에 추가할게요. 잘 봐주셨네요!" 기분 좋았다. PM도, 나도. 이게 답인 것 같다. 지금은. 6개월 후의 나 기획 전환하면 달라질까. 개발자일 때랑 PM일 때. 같은 말을 해도 다르게 들릴 거다. 지금은 '개발자가 또 로직 따진다'인데, PM 되면 '기획자끼리 의견 나눈다'가 된다. 이상하다. 같은 내용인데. 근데 그게 조직이다. 직책이 대화를 바꾼다. 나는 어떤 PM이 될까. 개발자 의견 잘 듣는 PM? 아니면 '내가 더 잘 안다'는 PM? 후자는 되기 싫다. 절대로. 나도 개발자였다. 개발자가 로직 얘기할 때 이유가 있다. 귀찮아서 하는 게 아니다. 문제가 보여서다. 그걸 무시하는 PM. 최악이다. 나는 안 그럴 거다. 개발자 출신 PM의 장점이 뭔데. 개발자 말 이해하는 거잖아. 오늘의 결론 기획 로직 틀렸을 때. 말해야 한다. 근데 방법이 있다. 회의 중 X, 회의 후 O. 지적 X, 질문 O. 공개 X, 비공개 O. "이거 틀렸는데요" 대신 "이 부분 궁금한데요".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요" 대신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로직 오류입니다" 대신 "제가 이해한 게 맞나요". 같은 내용, 다른 포장. 유치하다고? 아니다. 이게 어른이다. 조직생활이다. 정확함만 중요한 게 아니다. 관계도 중요하다. 둘 다 지키는 게 진짜 능력이다. 나는 배우는 중이다. 개발자에서 PM으로. 로직에서 사람으로. 아직 서툴다. 실수한다. 어제도 회의 중에 바로 말해버렸다. PM 표정이 굳었다. 또 실패했다. 근데 괜찮다. 계속 배우면 된다. 6개월 후 나는 지금보다 나을 거다. 1년 후엔 더 나을 거다.말하되, 상처 주지 않게. 지적하되, 함께 성장하게. 그게 목표다.
- 16 Dec, 2025
AI 시대에 개발자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중이다
6년이 무너지는 속도 아침 9시. 출근했다. 슬랙 켰다. 주니어한테 메시지 왔다. "한기획님, 어제 말씀하신 API 만들었어요. 검토 부탁드려요." 어제 오후 5시에 요청한 거다. 내 예상은 이틀이었다. 코드 열어봤다. 깔끔하다. 에러 핸들링도 있다. 테스트 코드도 있다. "빨리 했네?" "GPT한테 물어봤어요. 30분 걸렸어요." 30분. 나는 6년 전에 이거 배우는 데 3개월 걸렸다.점심 먹으면서 생각했다. 저 주니어는 나만큼 실력 늘까? 아니, 실력이 뭔데? 퇴근길 지하철. 개발자 커뮤니티 봤다. "요즘 코딩 인터뷰 의미 있나요?" 댓글 200개. 절반은 "GPT 시대에 알고리즘 외울 필요 없다" 절반은 "기본기 없으면 GPT도 못 쓴다" 둘 다 맞는 말 같은데. 둘 다 틀린 말 같은데. 자존감의 근거가 사라진다 나는 개발자로 6년 먹고살았다. 연봉 6200만원. 동기들보다 많이 받는다. 부모님께 자랑했다. "아들 잘됐어요." 그 자랑의 근거는 뭐였나. "남들이 못하는 거 나는 한다." "코드를 쓴다. 서비스를 만든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을 이해한다." 지난주 금요일. CTO가 전체 회의에서 말했다. "앞으로 개발 생산성 3배 높일 겁니다." "GitHub Copilot 전사 도입합니다." 월요일부터 써봤다. 함수 이름 쓰면 본문이 자동 완성된다. 주석 쓰면 코드가 나온다. 내가 쓰려던 거 90% 맞춘다. 화요일. 코딩하다가 멈췄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AI가 쓴 코드 읽고 엔터 치는 거? 수요일. GPT한테 물었다. "FastAPI로 인증 시스템 만들어줘. JWT 쓰고, Redis 캐싱하고." 3분 만에 완성본 나왔다. 내가 3일 걸릴 거. GPT는 3분. 1440배 빠르다.목요일 저녁. 아내한테 말했다. "나 6년 동안 뭐 한 거 같아?" "무슨 소리야. 잘하고 있잖아." "잘한다는 게 뭔데. AI가 나보다 잘하는데." 아내는 마케터다. "마케팅도 AI 쓰는데. 근데 일은 사람이 하잖아." "개발은 다른 거 같아. 진짜 AI가 대체할 거 같아." 금요일. 팀장이 1:1 면담 신청했다. "요즘 힘들어 보여요." "아뇨. 괜찮습니다." "코드 리뷰 횟수가 줄었어요. 바쁜가요?" "아니요. 그냥... 예전보다 검토할 게 적어서요." 팀장은 눈치챘을 거다. 내가 정체성 잃어가는 거. 숫자로 증명되는 퇴색 Stack Overflow 트래픽 30% 감소. 작년 대비. 개발자들이 안 간다. GPT한테 물어본다. 내 검색 기록 봤다. 작년 1월: Stack Overflow 방문 120회 올해 1월: 18회 내 Cursor 에디터 사용 기록. 하루 평균 AI 코드 제안 수용: 87회 직접 작성: 43회 비율: 67% 6년 전 내 GitHub 커밋. 일주일에 평균 23개. 지금: 9개. 커밋 메시지도 짧아졌다. "fix", "update", "AI suggestion applied"도망치듯 기획으로 3개월 전부터 PM 책 읽는다. "인스파이어드", "크래킹 더 PM 인터뷰", "프로덕트 매니저 실무 가이드" 벌써 10권. 노션에 기획 포트폴리오 만들었다. 회사 프로젝트 중 하나 골라서. "만약 내가 PM이었다면" 시리즈. 사용자 플로우 그렸다. PRD 썼다. KPI 정의했다. 재밌었다. 코딩보다 재밌었다. 근데 이게 도망인가? 아니면 전환인가? 개발자 친구한테 말했다. "나 PM 준비하는 중이야." "미쳤어? 개발자가 얼마나 좋은데." "AI가 다 하잖아." "그래도 검수는 사람이 해야지." 검수. 검수라니. 나는 창조자였는데. 이제 검수자가 되는 건가. PM 하는 대학 동기한테 물었다. "개발자에서 PM 전환 어때?" "좋지. 너는 기술 이해하니까 유리해." "연봉은?" "처음엔 깎일 거야. 근데 5년 보면 괜찮아." 5년. 5년 뒤에 PM도 AI한테 밀리면? 그건 생각하기 싫다. 무너지는 게 나만은 아니다 커뮤니티 글 봤다. "8년 차 개발자인데 주니어랑 생산성 차이 안 나요" 공감 댓글 300개. "요즘 코딩 면접 볼 때 AI 사용 허용하나요?" 논쟁 500개. "개발자 채용 공고 줄었죠?" 통계 링크 달렸다. 작년 대비 신입 채용 40% 감소. 블라인드 들어갔다. "AI 시대 개발자 커리어 어떻게 준비하세요?" 답변들:"풀스택 + DevOps 공부 중" "도메인 전문성 쌓기" "AI 엔지니어로 전환" "솔직히 모르겠음"마지막 답변에 좋아요 제일 많다. 다들 모른다. 나만 불안한 게 아니다. 그게 위로가 되나? 안 된다. 남은 건 뭔가 주말에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 시작했다. "AI 시대 개발자 커리어 전환 플랫폼" 아이러니하다. AI 때문에 불안한데 AI 써서 만든다. 기획부터 했다. 타겟 유저: 3년 이상 개발자 페인 포인트: 기술 퇴색 불안, 전환 방향 모름 솔루션: 경험자 인터뷰, 전환 로드맵, 포트폴리오 템플릿 PRD 쓰는 데 4시간 걸렸다. 재밌었다. 코딩은 GPT한테 시켰다. 2시간 만에 MVP 나왔다. 비율이 역전됐다. 예전엔 기획 1시간, 코딩 20시간. 지금은 기획 4시간, 코딩 2시간. 이게 미래 아닐까?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사람. "어떻게 만들지"는 AI가. 그럼 나는 "무엇을" 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게 PM이다. 그게 기획자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이것도 확신은 없다. GPT한테 물어봤다. "기획도 AI가 대체할 수 있어?" 답변: "부분적으로 가능합니다. 데이터 분석 기반 의사결정, 사용자 플로우 설계, PRD 초안 작성 등은 AI가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해관계자 조율, 전략적 우선순위 결정, 조직 내 정치 등은..." 읽다가 껐다. "다만" 뒤에 나오는 것들. 그것들이 얼마나 오래 갈까. 정체성이란 게 개발자 정체성. 6년 동안 그게 나였다. 명함에 "백엔드 개발자" 링크드인 헤드라인 "Python Developer" 자기소개 "코드 쓰는 사람입니다" 이제 그게 뭔지 모르겠다. 코드 쓰는 사람? AI가 쓴 코드 검수하는 사람? GPT한테 좋은 질문 던지는 사람? 어제 팀 회식. 신입이 물었다. "선배님은 왜 개발자 되셨어요?" "음... 뭔가 만드는 게 좋아서?" "저도요! AI 덕분에 더 많이 만들 수 있어서 좋아요." 그 말에 아무 말 못 했다. 신입은 순수했다. 나는 냉소적이었다. '넌 아직 모르는구나. 네가 만드는 게 아니라 AI가 만드는 거라는 걸.' 근데 그게 맞나? GPT가 없으면 나도 못 만든다. 예전엔 스택오버플로우 없으면 못 만들었다. 그 전엔 책이 없으면 못 만들었다. 도구가 바뀐 건가? 아니면 본질이 바뀐 건가? 밤에 아내한테 물었다. "정체성이 뭐라고 생각해?" "왜 갑자기?" "내가 개발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개발자지. 회사 다니잖아." "그게 아니라 진짜로."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문제 해결하는 사람이잖아. 코드로 하든 기획으로 하든. 그게 정체성 아니야?" 그 말이 위로가 됐나? 잘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또 불안하다.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월급은 들어온다. 6200만원. 12로 나누면 516만원. 세전이다. 동기 중에 가장 많이 받는다. 자랑이었다. 이제는 불안이다. '이게 얼마나 갈까?' 채용 공고 검색했다. "시니어 백엔드 개발자" 작년 이맘때: 120개 지금: 73개 39% 감소. "프로덕트 매니저" 작년: 45개 지금: 58개 29% 증가. "AI Engineer" 작년: 12개 지금: 89개 641% 증가. 숫자는 명확하다. 시장이 말한다. "순수 개발자는 줄인다." "AI 다룰 줄 아는 사람 뽑는다." "만들 사람보다 방향 정할 사람 뽑는다." 내 이력서 봤다. "Python, Django, FastAPI, AWS" "RESTful API 설계 및 구현" "대용량 트래픽 처리 경험" 이제 이게 무기가 아니다. GPT도 한다. 주니어도 한다. 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PM 이력서 만들어봤다. "기술 이해도 높은 PM" "개발 경험 6년, 기획 전환" "사용자 중심 프로덕트 설계" 근데 경력란에 쓸 게 없다. "PM 경력 0년" 지원했다. 5곳. 서류 탈락. 5곳. "기획 경력 3년 이상 우대" 우대가 아니라 필수다.6년이 무너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도망일지 전환일지 아직 모르겠지만, 멈춰있을 수는 없다.
- 15 Dec, 2025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가 내 입버릇이 된 시점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가 내 입버릇이 된 시점 처음 입에 붙은 순간 6개월 전이었다. 주니어가 내 옆자리에 앉아서 작업했다. "선배님, 이 API 어떻게 짜면 좋을까요?" 나는 당연히 구조부터 설명하려고 했다. 근데 그 친구가 먼저 GPT 창을 켰다. "일단 물어봐야죠." 5분 후. 작동하는 코드가 나왔다. 내가 설명하려던 거랑 거의 똑같았다. 아니, 더 깔끔했다. 그때 처음 말했다.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 뒤에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웃었다.주니어는 그 뒤로도 계속 GPT를 썼다. 함수 네이밍, 에러 디버깅, 테스트 코드 작성. 내가 3시간 걸릴 거 1시간 만에 끝냈다. "선배님도 쓰시면 되는데..." 맞다. 나도 쓰면 된다. 근데 왜 기분이 이상했을까. 두 번째로 말했을 때 1달 후. 팀 회의였다. 기획자가 물었다. "이 기능 구현 얼마나 걸려요?" 예전 같으면 "3일이요" 했을 것이다. 근데 이제는 달랐다. GPT한테 물어보면 하루 만에 나온다는 걸 알았다.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 하루면 될 것 같아요." 기획자 눈이 반짝였다. "오, 빨라졌네요!" 내 눈은 반짝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실제로 GPT한테 물어봤다. 요구사항 복붙하고, 기술스택 알려줬다. 30분 만에 70% 나왔다. 나머지 30%만 내가 수정했다. 하루도 안 걸렸다. 칭찬받았다. "한기획 님 속도 진짜 빨라졌어요." 고맙다고 했다. 속으로는 '내가 한 게 뭐지?' 생각했다.세 번째, 네 번째, 열 번째 그 뒤로 입버릇이 됐다.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코드 리뷰할 때 신규 기능 논의할 때 후배 교육할 때 이력서 쓸 때 아내한테 불평할 때심지어 부모님 전화에서도.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 개발자가 뭐 하냐고." 엄마는 못 알아들으셨다. "그럼 네가 편하겠네?" 편한가? 모르겠다. 작업은 빨라졌다. 야근은 줄었다. 퇴근 후 시간이 생겼다. 근데 뇌가 안 돌아간다. 예전엔 코드 짤 때 머리가 복잡했다. 구조 고민하고, 변수명 고민하고. 지금은? GPT한테 물어보고, 답 보고, '오 괜찮네' 하고 복붙. 머리가 편하다. 너무 편하다. 무섭다. Stack Overflow 트래픽 30% 감소 기사 봤다. Stack Overflow 방문자 30% 빠졌다고. 개발자들이 GPT한테 물어보니까. 댓글 봤다. "당연하지, 누가 스택오버플로우 가냐" "GPT가 더 친절함" "답변 기다릴 필요도 없고" 맞는 말이다. 나도 3개월째 Stack Overflow 안 들어갔다. 근데 생각했다. '5년 뒤엔 주니어 개발자 채용 공고도 30% 줄어들까?' 그 생각이 머리에서 안 떠났다.입버릇이 진짜 바꾼 것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 이 말 자주 하다 보니까. 진짜로 믿게 됐다. AI가 다 해준다고. 그럼 나는? 처음엔 농담이었다. 자조적 유머. 한 달 지나니 불안이었다. 두 달 지나니 확신이었다. '개발자로 5년 더 하면 안 되겠다.' 그래서 기획 책 샀다. 10권. PM 되는 법, 프로덕트 오너십, 사용자 인터뷰 가이드. 퇴근 후 읽는다. 주말에도 읽는다. 개발자 커뮤니티는 안 본 지 오래다. 이제 PM 커뮤니티 본다. '기획은 AI가 못 하지 않을까?' 근데 확신은 없다. 요새는 AI가 기획 문서도 쓴다. PRD도 작성한다. 그래도 개발보단 나을 것 같다. 아니, 나아야 한다. 그렇게 믿는다. 회의 시간에 기획자 보는 눈 요즘 회의 때 기획자 말에 집중한다. 예전엔 '빨리 끝나라' 생각했다. 지금은 '저렇게 말하는구나', '저 로직은 왜 저렇게 짰을까' 생각한다. 기획자가 발표한다. "이 플로우가 사용자 경험상 최적일 것 같습니다." 속으로 생각한다. '저기 엣지 케이스 빠졌는데.' 예전엔 말했다. "여기 예외 처리 필요합니다." 요즘엔 말 안 한다. 나중에 슬랙으로 보낸다. 친절하게. "혹시 이 케이스는 고려하셨나요? 개발하다 보니 이런 경우도 있더라고요." 기획자가 고맙다고 한다. "역시 개발자 출신이 이런 거 잘 잡아내시네요." 기분 좋다. '아, 나도 저쪽 일 할 수 있겠다.' 노션에 만든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서 2주 전. 주말에 노션 켰다.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 기획해보기로 했다. 주제: 개발자 커리어 전환 돕는 서비스. 타겟 유저: 나 같은 사람들. 페르소나 작성했다. 32세, 개발 6년차, AI 때문에 불안, 기획 전환 고민. 완전 내 얘기다. 문제 정의, 솔루션, 핵심 기능, MVP 범위, 로드맵. 4시간 걸렸다. 재밌었다. 코딩보다 재밌었다. 이게 확신을 줬다. '나 진짜 기획 하고 싶은가 보다.' 아내한테 보여줬다. "어때? 내가 이런 거 기획해봤어." 아내는 마케터다. 기획 문서 많이 본다. "오, 괜찮은데? 근데 경쟁사 분석은?" 경쟁사 분석 빠졌다. "아 맞다." 추가했다. 비슷한 서비스 3개 찾아서 분석했다. 또 2시간 걸렸다. 그것도 재밌었다. "이 정도면 PM 지원해도 되는 거 아니야?" 아내가 말했다. "근데 경력이..." 맞다. 경력이 없다. 이력서에 'PM 희망'이라고 쓸까 이직 사이트 켰다. '프로덕트 매니저' 검색. 공고 10개 봤다. 9개가 '기획 경력 3년 이상'. 1개가 '개발 경력자 우대'. 그 1개 지원했다. 자소서에 썼다. "6년간 개발하며 기술과 비즈니스를 모두 이해하게 됐습니다. 최근 6개월간 PM 전환을 준비하며..." 거짓말은 아니다. 근데 쓰면서 생각했다. '이게 통할까?' 서류 탈락했다. 2주 뒤 답 왔다. "적합한 경력을 갖춘 지원자가..." 예상했다. 그래도 실망했다. 개발자 공고는 서류 통과율 80%다. 6년차면. 기획 공고는 0%다. 경력이 없으니까. 그래도 계속 말한다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 오늘도 말했다. 팀 미팅에서.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 우리가 집중할 건 뭘까요?" 리드 개발자가 웃었다. "한기획 씨 요새 그 말 많이 하네." 들켰다. "아, 그래요? 습관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그래서 뭐 할 건데?" 질문이었다. 뭐 할 건데? 대답 못 했다. 회의 끝나고 생각했다. 나는 뭘 하고 싶은가. AI한테 안 빼앗길 일. AI가 못 하는 일. 아니다. AI가 잘해도 상관없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 아내와의 대화 저녁 먹으면서 말했다. "나 진짜 기획 하고 싶은가 봐." 아내가 물었다. "개발은 싫어?" "싫은 건 아닌데... AI가 더 잘하잖아." "그럼 기획은 AI가 못 해?" 말문이 막혔다. "잘 모르겠어. 근데 개발보단..." "그럼 그냥 AI가 개발 다 하게 두고, 넌 감독만 하면 안 돼?" 생각 못 한 관점이었다. "그게... PM이잖아." "맞네." 우리 둘다 웃었다. "근데 PM도 AI가 나중엔 하지 않을까?" 아내가 말했다. "그럼 그때 또 바꾸지 뭐." 맞다. 그때 또 바꾸지 뭐. 개발자 친구의 반응 대학 동기한테 전화했다. 같이 개발 공부했던 친구. 지금은 대기업 시니어 개발자. "나 요즘 기획 쪽 알아보는데..." 친구가 웃었다. "야, 너 연봉 6200 받잖아. 기획 가면 5000도 안 줄걸?" "알아. 근데..." "근데?" "AI가 점점 코드를 더 잘 짜는데, 5년 뒤엔 어떻게 되려나." 친구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나도 그 생각 한다." 침묵. "근데 나는 그냥 계속 개발할 거야. AI 쓰면서." "그것도 방법이지." "너는 기획이 좋아?" 좋은가? "모르겠어. 근데 개발보다는 재밌을 것 같아." "그럼 해봐. 근데 쉽지 않을 거야." 알고 있다. 내 입버릇이 나를 바꿨다 결론은 이거다.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 이 말을 계속하다 보니까. 진짜로 변화하고 있다. 나 자신이. 처음엔 농담. 지금은 내 행동 지침. 기획 책 10권 읽은 것도. 노션에 프로젝트 기획서 쓴 것도. 이력서에 PM으로 지원한 것도. 다 이 말 때문이다. 입버릇이 생각을 바꿨고. 생각이 행동을 바꿨고. 행동이 나를 바꾸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출근했다. 스탠드업 미팅. "오늘 이 기능 작업할 거예요." 누가 물었다. "얼마나 걸려요?" 나는 대답했다.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 오후에 끝낼게요." 다들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근데 속으로는 다른 생각. '이 일 언제까지 할까?' '기획은 언제쯤 시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AI랑 같이 개발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을까?' 모르겠다. 확실한 건 하나. 이 말 계속할 것 같다.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 이게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보려고. 입버릇이 된다는 것 말이 습관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지나면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이미 지났다. "요즘 AI가 다 해주는데..." 이 말은 이제 내 일부다. 불안의 표현이자, 변화의 신호. 도망이자, 도전. 6개월 전엔 농담이었다. 지금은 진담이다. 6개월 후엔 뭐가 될까. 행동일까, 결과일까. 아니면 후회일까. 계속 말하면서 찾아볼 것이다.오늘 코파일럿이 함수 3개 자동완성 해줬다. 고맙다고 말했다. 컴퓨터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