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Dec, 2025
개발자 친구는 '너 미쳤나?', PM 친구는 '개발자 출신 좋아'라고 했다
개발자 친구는 '너 미쳤나?', PM 친구는 '개발자 출신 좋아'라고 했다 주말에 친구 둘 만났다 토요일 오후 3시. 개발자 친구 민준이 만났다. 카페에서 노트북 펼쳤다. 내가 쓴 PM 이력서 보여줬다. "야, 너 미쳤냐?" 첫 마디였다. "6년 경력에 6200? 이직하면 8000도 받는데. PM 가면 5500부터 시작인데?" 민준이는 10년차 백엔드다. 연봉 8800만원. 요즘 사이드로 테크 블로그 운영한다. 조회수 제법 나온다. "AI? 그거 다들 쓴다. 너만 쓰는 거 아니야. 개발자 수요 여전해." 내 Copilot 얘기 했다. 요즘 코드 40%는 AI가 쓴다고. 민준이는 고개 저었다. "그래도 개발자 필요해. 누가 코드 리뷰해? 누가 아키텍처 짜?" 맞는 말이다. 근데 주니어는? 5년 뒤에 신입 개발자 뽑을까?일요일 오후 2시. PM 친구 수진이 만났다. 강남 코워킹 스페이스. 수진이는 스타트업 CPO다. "개발자 출신 PM? 완전 좋지." 정반대였다. "개발 모르는 기획자 진짜 힘들어. 'API 연동하면 되잖아요' 이런 소리 하거든." 수진이는 비전공 PM이다. 2년 고생했다고 한다. 개발자랑 싸우고, 일정 못 맞추고, 신뢰 잃고. "너는 개발 6년 했잖아. DB 설계도 알고, 배포 프로세스도 알고. 그거 진짜 큰 무기야." 기분 좋았다. 근데 현실은? "대신 경력은 리셋이야. PM 1년차 연봉 받아야지. 5500 정도?" 700만원 깎인다. 개발자 커뮤니티는 반대다 월요일 점심. 회사 커뮤니티 슬랙 확인했다. '커리어 고민' 채널에 익명으로 물어봤다. "개발 6년차인데 PM 전환 고민됩니다." 30분 만에 댓글 12개. "왜요? 개발 재미없어요?" "PM은 정치질이에요. 개발이 낫습니다." "AI 때문이면 기획도 AI한테 대체됩니다." "6년차면 시니어인데 왜 포기하세요?" 한 명만 찬성이었다. "저도 고민 중입니다. 개발은 한계 보이더라고요." 그 사람한테 DM 보냈다. 답 안 왔다.저녁에 PM 커뮤니티 들어갔다. '프로덕트 오너스 코리아' 오픈채팅방. "개발자에서 PM 전환 어떤가요?" 15분 만에 댓글 8개. "완전 환영이에요!" "개발자 출신 PM 정말 귀해요." "저희 회사 개발자 출신 PM이 최고예요." "기술 스택 아는 PM 너무 좋아요."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 한 PM이 물어봤다. "Python, Django 하셨어요? 저희 회사 PM 지원 안 하실래요?" 진짜였다. 채용 공고 링크 보내줬다. 연봉은 5000~6000. 협의 가능. 1200만원 깎인다. 누가 맞는 걸까 화요일 오전. 출근길 지하철. 민준이 말이 맞나, 수진이 말이 맞나. 개발자들은 개발을 지키려 한다. 당연하다. 자기 영역이니까. "AI가 다 한다고? 과장이야. 개발자 여전히 필요해." 맞다. 지금은. 근데 3년 뒤는? 5년 뒤는? GPT-4 나왔을 때 다들 놀랐다. 1년 지나니까 다들 쓴다. Copilot 처음 썼을 때 신기했다. 지금은 없으면 일 못 한다. Devin 나왔을 때 개발자들 웃었다. "저게 뭘 하겠어?" 근데 6개월 뒤에 Devin 2.0 나오면? 1년 뒤에 GPT-5 나오면?PM들은 개발자 출신을 원한다. 이것도 맞다. "개발 모르는 기획자 답답해요." 현장에서 일해본 PM들 말이다. 설득력 있다. 근데 PM도 AI한테 대체되지 않을까? 수진이한테 물어봤다. "PM도 AI가 대체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일부는 대체되지. 근데 개발보다 늦을 거야." 왜? "사람을 설득하는 건 AI가 못 해. 이해관계 조율하고, 의사결정하고, 책임지는 거. 그건 사람이 해야지." 논리적이다. 근데 개발자들도 똑같이 말했다. 3년 전에. "코드 짜는 건 창의적 작업이야. AI가 못 해." 지금 GPT가 코드 짠다. 결국 타이밍이다 수요일 저녁. 아내랑 맥주 마셨다. "민준이 말도 맞고 수진이 말도 맞아." 아내가 웃었다. "둘 다 자기 입장에서 말하는 거지." 맞다. 민준이는 개발자다. 연봉 8800. 개발 잘하면 1억도 받는다. 실제로 그렇다. 수진이는 PM이다. 개발자 출신 PM 필요하다. 회사에서 찾고 있다. 실제로 그렇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근데 둘 다 내 상황은 아니다. 나는 6년차 중상위권 개발자. 지금 이직하면 8000 받는다. 5년 뒤엔? 모른다. AI 발전 속도 보면 불안하다. 근데 PM도 보장은 없다. 타이밍이 문제다. 지금 전환하면? 연봉 깎인다. 경력 리셋. 2년 뒤 전환하면? PM 자리도 경쟁 심해진다. 5년 뒤? 개발자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목요일 점심. 회사 복도에서 CTO 만났다. "한기획 님, 요즘 기획 문서 잘 쓰시던데요?" 가슴이 철렁했다. "아, 그냥 재미로요." CTO가 웃었다. "개발자가 기획까지 하면 좋죠. 근데 전업은 아깝지 않아요?" "아직 고민 중입니다." "고민되면 PM 겸직해보시죠. 우리 회사에서." 새로운 옵션이었다. 개발하면서 PM 일도 한다. 연봉 안 깎인다. 경력도 쌓인다. 근데 일은 두 배다. 정답은 없다 금요일 오후. 퇴근 2시간 전. 민준이한테 카톡 왔다. "야 너 PM 하지 마. 개발이 낫다." 수진이한테도 왔다. "우리 회사 PM 자리 생겼어. 지원해봐." 둘 다 진심이다. 둘 다 날 위한다. 근데 정답은 없다. 개발자 커뮤니티 들어가면 PM 전환 반대다. PM 커뮤니티 들어가면 개발자 출신 환영이다. 같은 현상, 다른 관점. AI가 개발자 대체한다 vs 여전히 필요하다. PM이 미래다 vs PM도 결국 대체된다. 다 맞을 수 있다. 다 틀릴 수 있다. 퇴근했다. 집 앞 편의점. 맥주 두 캔 샀다. 소파에 앉았다. 노트북 켰다. 왼쪽 화면엔 코드. 오른쪽 화면엔 PM 공고. 민준이 목소리가 들린다. "6년 버리냐?" 수진이 목소리가 들린다. "개발자 출신 PM 귀해." CTO 목소리도 들린다. "겸직해보시죠." 다 옳다. 다 틀리다. 결국 내가 정한다. 내 인생이니까. 아직 모르겠다. 근데 한 가지는 안다. 고민하는 게 정상이다. 이 시대에 안 고민하는 게 이상하다. 개발자 친구는 개발자 관점으로 본다. PM 친구는 PM 관점으로 본다. 나는 나 관점으로 봐야 한다. 맥주 마셨다. 두 번째 캔 땄다. 아직 금요일이다.두 친구 말 다 들었다. 근데 결국 내가 정한다. 월요일에 CTO한테 겸직 제안 다시 물어봐야겠다.
- 02 Dec, 2025
업무의 40%가 'GPT한테 물어보고 복붙하고 수정'이 되던 날부터
업무의 40%가 'GPT한테 물어보고 복붙하고 수정'이 되던 날부터 알람이 울린다. 7시. 침대에서 나온다. 출근한다. 회사 도착. 9시 반. '오늘 뭐 할 거야?' 슬랙 메시지 확인. PM이 보낸 요구사항 3개. '어. 이거 복잡하네. 일단 GPT한테 물어봐야겠다.' 노트북 켠다. ChatGPT 탭 켠다. 프롬프트 입력한다. "Django에서 Elasticsearch 연동해서 사용자 검색 API 짜는데, 필터링은 카테고리별로, 정렬은 최신순, 캐싱은 Redis로 해 줄 수 있어?" 엔터. 엔터. 30초. 1분. 코드가 나온다. 완벽한 보일러플레이트. 에러 처리도 있고, 타입 힌팅도 있고. 내가 3시간에 걸쳐서 짜던 것. 아니, 내가 2년 전에 짜던 것. 요즘은 30초면 된다.그게 3시간이었고, 지금은 10분이다. 복붙한다. IDE에 붙인다. '이 부분은 좀 다르니까 수정하자.' 엔터. 탭. 대괄호 몇 개 바꾼다. 프롬프트 한 번 더 날린다. "그런데 여기 부분에서 대량 요청이 들어오면 Elasticsearch가 터질 수 있으니까, 대기열 처리 해 주고, 로깅도 넣어 줄래?" 엔터. 또 나온다. 문장이 아니라 완성된 코드. 내 손가락은 아무것도 안 한다. 읽기만 한다. 확인만 한다. '어, 이건 좀 이상한데' 하면서 또 프롬프트 한 줄 날린다. 30분이면 끝난다. 내가 일하고 있나? 이게 뭐 하는 건가?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하게는 6개월 전이다. 회사에 신입이 들어왔다. 24살. 대학교 다니면서 로또처럼 CS 공부했다는 애. 개발 경력 0년. '여기 신경망 개선해 줄 수 있어?' 내가 물었다. '네 다 해봤는데 이것도 안 되네.' 신입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구글링도 못 해본 것 같던 애. 아침 10시. 오후 3시. 저녁 5시까지 사라져 있었다. '뭐 하냐고?' 내가 물었다. 'GPT랑 작업하고 있습니다.' 신입의 대답. 내가 코드를 봤다. 완벽했다. 아니, 나보다 나았다. 예외 처리도 있고, 성능 최적화도 있고. 내가 처음에는 생각 못 한 부분까지. '이거 다 혼자 했어?' '아뇨. 프롬프트로 했어요.' 그 순간이다. 내 뇌가 느려진 게 느껴졌다. 마치 핸드폰이 버벅거릴 때처럼. '...아.' 그날부터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한 게.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이제 내 일의 구성은 대략 이렇다.GPT에 물어보고 복붙하고 수정: 40% 다른 사람 코드 리뷰: 30% 회의: 20% 실제로 머리 쓰면서 코딩: 10%40%라고 했지만 솔직하면 그때는 정말 "일"인가?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붙여넣는 게 일인가? Google Translate 검수하는 것도 일인가? 내가 이 정도면 '프롬프트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거 같다. 개발자가 아니라. 엔지니어가 아니라. 프롬프트. 엔지니어."코드를 이해하고 있는 거야?" 팀원이 물었다. 의도는 좋은 거 같았다. 근데 질문이 날 죽였다. "글쎄. 그 부분은 GPT가 이렇게 짰고, 내가 이렇게 생각해서, 이렇게 고쳤다." 지가 지금 뭐 설명하고 있는 건가? 내가 짠 코드인데, 내가 설명할 때 "GPT가"라는 주어가 나온다. 이상한가? 이상하다. 근데 계속된다. 회의실에서. "그래서 이 로직이 왜 이렇게 짜여 있어?" PM의 질문. "어... GPT가 이렇게 제안했고..." I don't know anymore. 나는 코드를 복사-붙여넣기 했을 뿐이다. 버그를 고쳤고. 테스트를 돌렸고. 프로덕션에 올렸다. 근데 왜? 왜 내 손이 키보드를 안 쳤을 때 나는 개발을 한 걸 느껴질까? 5년 뒤를 생각해 봤다. AI가 이 정도면 5년 뒤엔? 10배가 될 거다. 아니, 1000배. 그럼 내 일은? 없다. 주니어는 더더욱 없다. 아마도 SI 회사는 반 정도 없어질 거다. 스타트업은 개발자를 절반으로 줄일 거다. 그럼 내 선택지는?그냥 계속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산다. → 언제까지?다른 분야로 간다. → 어디로?더 깊이 파고든다. → 근데 이미 AI가 깊이 파고 있는데?기획으로 간다. → 아, 그게 있지.내 뇌가 멈춘 것 같다. 코딩할 때는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기획 문서 쓸 때는 뭔가 들어온다. 다른 사람의 코드를 보면 "이거 왜 이래?"가 나온다. 근데 내 코드를 짤 때는 아무것도 없다. GPT가 다 했으니까. 요즘 나는 이런 사람이다. 업무 중 가장 많이 하는 일: 채팅 업무 중 가장 재밌는 일: 기획 문서 작성 업무 중 가장 싫은 일: 실제 코딩 휴일에 하는 일: PM 인강 들음 저녁에 하는 일: 회사 프로젝트 기획 문서 작성 코딩은? 잘하기는 한다. 근데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면 AI가 더 잘하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AI와 비교가 되니까. 인간이 AI와 속도 경쟁을 하면? 지는 거다. 항상. 그래서 지는 대신 딴 길로 간다. 기획. 사람을 이해하는 것. 숫자로 설득하는 것. 미래를 예측하는 것. 아직 AI는 내 감을 못 따라온다. 아직이다.PM 공고를 본다. "기획 경력 3년 이상 우대." 내 경력은 0년이다. "프로덕트 마인드 강한 사람." 내 마인드는 뭐가 강한가. AI를 믿는 마음. "사용자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사용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나. 코딩만 했다. 근데 할 수는 있겠지. 개발자 출신 PM도 많잖아. 블로그 봤어. 링크드인 봤어. 트위터 봤어. 다 성공했다고 한다. 개발자 배경이 기획에서 무기가 된다고 한다. "이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부분의 영향도를 개발자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성능 최적화를 고려한 UX 설계입니다." 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불안하다. 이력서 냈어. 서류 떨어졌어. 왜냐면 기획 경력이 0년이었으니까. 회사는 기획 경력 3년을 원했으니까. "개발자 출신도 많고, 개발자가 기획을 배우는 건..." 아내가 말했다. "근데 너는 왜 시작을 못 하는 거야?" 그 질문이 제일 무섭다. 내일 아침. 알람이 울 거다. 7시. 침대에서 나올 거다. 샤워할 거다. 출근할 거다. 회사 도착. 9시 반. 슬랙 확인. "한기획님, 이 부분 코드 짜 줄 수 있어요?" "네. ChatGPT한테 물어봐 드리겠습니다." 웃음. 온라인상의 웃음. 나는 웃지 않는다.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붙여넣는다. 30분. 완성. "완료됐습니다." "빨라요." "네." 그리고 또 다음 일을 기다린다. 다음 프롬프트. 다음 복붙. 이게 5년인가. 10년인가. 언제까지인가. 기획 공고를 본다. 한 번 더. "기획 경력 3년 이상." 나는 여전히 0년이다. 개발자로 6년. 기획자로 0년. 둘 다 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6개월. 내일은 뭐가 될까. 내일도 GPT에 물어볼까. "내 커리어는 이대로 괜찮을까?"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뭐라고 할까. 아마 이럴 거다.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시작하세요." 근데 나는 시작하지 못한다. 왜냐면 그 조언도 AI한테 물어본 거라고 생각되니까.오늘도 버틴다. 내일도 GPT에 물어봐야 하니까.
- 02 Dec, 2025
코파일럿 쓰다 보니 뇌가 굳어가는 느낌
코파일럿 쓰다 보니 뇌가 굳어가는 느낌 출근한다. 모니터를 켠다. 첫 번째는 Copilot에게 물어본다. "이 함수 좀 짜줄래?" 한 줄 치자. 나머지는 알아서 완성된다. 편하다. 정말 편하다. 근데 언제부턴가 이상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라, 뇌가 움직이지 않는 느낌. 알고리즘을 직접 짜본 지가 너무 오래됐다. 손으로 손으로 손으로 짜다가, 어느 순간 AI를 손으로 쓰게 됐다. 손은 여전히 움직이는데, 그 안의 뭔가가 굳어가고 있다. 편함의 대가 Copilot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였을까. 정확히 기억 안 난다. 어느 날부턴가 슬랙에 뜬다. "Copilot이 개발 속도를 40% 올린다." 누군가 공유한 아티클. 그 다음 달엔 회사에서 라이선스를 산다. "좋은 도구 써라." 경영진이 말한다. 처음엔 신기했다. 테스트 코드를 쓸 때 "이런 경우도 추가해줄래?"라고 치면, AI가 케이스를 생각해낸다. 반복문을 한 줄 치자. 나머지 비즈니스 로직을 자동 완성한다. SQL 쿼리. 정규식. 리팩토링. 다 된다. 업무 속도는 정말 빨라졌다. 근데 이상하다. 퇴근해서 개인 프로젝트를 하려니까, 손가락이 느렸다. 전처럼 빠르게 알고리즘이 그려지지 않았다. 예전엔 문제를 보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로직이 떠올랐다. 지금은? 먼저 Copilot을 켜본다. 그러다 보니, 켜지 않으면 손가락이 떨린다. 안내 문장이 필요하다. AI 없이는 코드를 못 쓰고 있었다.편함이 능력을 갉아먹는다는 걸, 정말 따끔하게 느낀 건 이런 순간이다. 회의에 들어간다. 기획자가 새 기능을 설명한다. "이 로직에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기획자가 묻는다. 아차. 내가 봐야 한다. 근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냥 피곤했다. 어차피 Copilot에 물어보면 나올 것 같은데, 회의 테이블에서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네, 확인해볼게요"라고 한다. 이전 나라면? 5초 만에 봤을 것 같은데. 손으로 짚고 넘어간 일들 코파일럿 이전에, 나는 개발자였다. 처음 6개월은 for 루프도 맨 손으로 짰다. 제대로 짜지도 못했다. 버그가 있었다. 힘들었다. 근데 그 과정에서 뭔가 배웠다. 메모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스택과 힙이 뭔지, 왜 이 알고리즘은 O(n²)이고 저 알고리즘은 O(n log n)인지. 손이 아팠지만, 뇌는 살아 있었다. 매번 같은 실수를 했다. loop 변수를 초기화 안 하고 2시간 헤맸다. SQL에서 NULL 처리를 빼먹고 데이터 수천 개를 날렸다. Array indexing으로 off-by-one error를 낸 게 5번 이상. 고통이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고통이 내 손가락에 박혀 있었다. 6년 경력이면, 반복문은 눈감고도 짠다. 캐싱 로직도. 동시성 처리도. DB 인덱싱도. 손가락이 기억한다. 뇌가 기억한다. 근데 Copilot을 키자. 손가락이 게을러진다. 첫 줄만 치면 나머지는 AI가 한다. 내 손은 '검수'만 한다. 그게 좋은 건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검수 권한을 가진 개발자가 필요하지 않아? 누군가는 AI가 짠 코드를 보고 '오케이'하는 일을 해야 하잖아." 6개월 지났다. 검수 능력도 떨어진다. 자동완성의 함정요즘 하루 일과. 아침 8시: 슬랙 확인. 팀장이 "어제 그 PR 머지했어?" 질문. 머지해야 하는 4개의 PR이 있다. 8시 10분: 첫 번째 PR 열기. 코드 40줄. "어? 이게 뭐지?" 한 줄씩 읽는다. Copilot이 짠 코드다. 주니어가 Copilot으로 짰다고 했다. 로직은 맞는 것 같다. 코드 스타일도 깔끔하다. 근데 뭔가 불안하다. 이전 나라면? 30초 만에 봤을 것 같은데, 지금은 2분이 걸린다. 3분. 결국 "좋습니다" 버튼을 누른다. 정확히 봤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부족했다. 슬랙 알림이 9개다. 마침표 같은 게 없다. 처음부턴 이상했다. 알고리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코드를 머지하는 게 맞나? 이런 일이 쌓인다. 한 달 지난다. 내가 안 짠 코드 500줄을 머지한다. 다 맞다. AI가 짠 거니까. 근데 그 과정에서 나는 뭘 했나? 어차피 검수만 했다. 정확히는, 검수하는 척했다. 중요한 건 이 부분이다. 검수를 하려면 원본 코드를 이해해야 한다. 원본을 이해하려면 손으로 짜본 경험이 필요하다. 손으로 짜본 경험이 없으면? 그냥 "문법 에러는 없는 것 같은데" 수준의 검수만 가능하다. 그런데 버그는 문법 에러에서 안 나온다. 6년이 5분 만에 녹는다아내가 물었다. "요즘 뭐해? 자꾸 한숨 쉬는데?" "그냥... 6년을 뭔가 버린 것 같아." "뭘?" "손가락. 뇌. 뭔가." 아내가 웃었다. "넌 아직도 개발자 잘하는데?" 맞다. 기술적으로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무언가가 휴면 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 회사에선 개발 속도가 40% 올랐다고 좋아한다. 퍼포먼스는 올랐다. 근데 뭔가 빠졌다. 내가 개발을 '하고' 있지,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보자. 새로운 기능이 들어온다. "유저가 업로드한 파일을 검증해야 해요." 예전 나: 요구사항을 정리한다. 파일 포맷은? 크기는? 보안은? 뭘 검증해야 하나? 어떤 알고리즘으로? 메모리는 괜찮나? 동시성은? 구현까진 시간이 걸린다. 2일. 3일. 근데 그 과정 모두가 내 거다. 지금 나: 요구사항을 가볍게 정리한다. "파일 검증이요." 컨트롤 + 스페이스. Copilot이 나머지를 한다. 2시간. 끝. 근데 정말로 최적의 구현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작동한다. 일이 빠르다. 진짜로. 근데 성장이 없다. 이게 내가 느낀 진짜 무서움이다. 연봉이 안 올라도, 리뷰가 안 좋아도 괜찮다. 근데 뇌가 안 자라는 게 무서웠다. 손가락도. 뭐가 필요한 의식이 없어진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지?" 하는 순간의 설렘. "아, 이렇게 풀면 되는구나"하는 쾌감. 그게 없다. 이제 건 그냥 "Copilot이 뭘 제시할까" 호기심뿐이다. AI가 짜고, 내가 본다 슬랙 메시지가 뜬다. 팀장이다. "다음 스프린트에 오거 인증 추가할 건데, 검토 좀 해줄래? 난 이 분야 약하거든." 오거 인증. 내가 2년 전에 짰던 거다. 코드를 오픈해본다. 아, 내가 짠 맞다. 손으로 한 줄 한 줄 짠 거다. 댓글도 있다. "여기서 state를 토큰에 저장하는 이유는..." 내가 쓴 댓글이다. 그 당시 나는 뭘 했을까. OAuth 2.0 스펙을 읽었다. 2시간. state 파라미터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려고. redirect_uri 검증. PKCE flow. 각 단계마다 공격 벡터. 머릿속으로 그렸다. 손가락으로 짰다. 지금은 뭘 할까. Copilot을 켜겠지. "OAuth 2.0으로 유저 인증해줄래?" 15초. AI가 완성한다. 스펙을 안 읽어도 된다. 동작하니까. "이거 괜찮나?" 팀장이 물어본다. "네, 괜찮습니다." 내가 정말로 확인했나? OAuth 스펙을 다시 읽고 본 거? 아니다. 그냥 "AI가 했으니까 괜찮겠지" 수준. 근데 뭔가 불안하다. 이전에 짠 코드를 보니까, 더 좋은 구현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확인할 여력이 없다. AI가 한 거니까 그냥 그대로 둔다. 결과는? 코드는 '작동한다'. 그런데 2년 뒤에 버그가 터진다면? 그건 내 책임인가, AI의 책임인가? 뇌의 근육 일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에 개발자 커뮤니티를 본다. "AI 시대에 개발자는 검수하는 직업이 되는 건가?" 이 질문이 자주 올라온다. 댓글들을 읽는다. "아니다. 고차원의 문제는 인간만 풀 수 있다." "근데 고차원의 문제도 AI가 곧 풀 수 있겠지?" "그래도 뭔가 인간의 직관이 필요할 거야." "... 모르겠다. 그냥 스킬업을 하자." "스킬은 뭘 해?" "음... 분야 전문성?" 질문이 답이다.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준비한다. 기획으로 전환할 준비. 코딩 말고 사용자를 생각하는 일. 알고리즘이 아닌 비즈니스. 손가락이 아닌 머리로 하는 일. 근데 이게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기획도 AI가 잘하니까.뇌가 굳어가는 느낌. 저건 느낌이 아니라, 정말인 것 같다.
- 02 Dec, 2025
Stack Overflow 트래픽 30% 감소, 개발자인 나는 왜 불안한가
Stack Overflow 트래픽 30% 감소, 개발자인 나는 왜 불안한가 뉴스 하나가 시작이었다 어제 아침. 슬랙에서 본 기사. "Stack Overflow 트래픽 30% 감소. ChatGPT 때문." 화면을 멈췄다. 10초간 아무것도 생각 안 났다. 그다음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Stack Overflow. 개발자의 성경. 코딩 6년 동안 내 손가락이 가장 많이 다녀간 사이트. 에러 메시지 나면 바로 들어가. 똑같은 에러 물어본 사람 있으면 다행이고 없으면 직접 물어본다. 밤 11시에. 새벽 2시에. 출근길에. 30% 감소. 숫자가 작아 보이나? 아니다. 개발 커뮤니티에선 지진이다. 그리고 그 지진의 진원지는 명확했다. ChatGPT. 아 맞다. 올해는 달랐다.6개월 전, 그 순간이 있었다 기억난다. 정확하게. 오후 2시 30분. 회의실. 백로그 고민하다가 나한테 넘어온 이슈. "이거 한 2주 정도 봐야 할 것 같은데 가능해?" 간단한 데이터 파이프라인. AWS Lambda, Kinesis, DynamoDB 엮여 있는 것. 복잡하진 않지만 세심한 부분이 많았다. 나는 3일 정도라고 했다. 실제론 4일 걸렸을 거 같은데 어쨌든 3일. 그 다음날. 주니어 개발자 김군이 와서 뭘 했냐고 물어본 건 아닌데, 답해줬다. 슬랙에서. 자세하게. 아키텍처 다그림으로, 고려사항도 다 적어서. 3일 뒤. "한기획 님, 이거 끝났어요. GPT랑 Copilot이랑 약간 깠는데 됐어요." 끝났다고? 코드 봤다. 깔끔했다. 로직도 맞았다. 테스트도 했다. 실제로 돌렸을 땐 한 번에 됐다. 하루. 반나절. 뭐 이 정도면 하루다. 나는 3일 했다. 이 친구는 하루 했다. 그 순간. 뭔가 끝났다. 느낌상으로. "차이가 뭐였어?" 그 친구 말이, "음... 저는 그냥 Copilot한테 전체 구조 물어봤고, 각 부분을 세부적으로 시켰어요. 그리고 테스트 코드까지 다 만들었어요." "그럼 넌 뭘 했어?" "복붙하고 깠어요." 네. 간단했다. 그 다음부터 내 업무는 달라졌다. 코딩을 덜 했다. 대신 코파일럿과 대화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언제부턴가 이게 내 가장 큰 기술이 됐다. 코드는 코드가 아니었다. 명령어였다. 좋은 명령어를 주면 좋은 코드가 나왔다. 나쁜 명령어를 주면 버그가 났다. 그리고 난 이미 개발자였으니까 어떤 명령어가 좋은지 구분했다. 2개월. 3개월. 반년. 내가 진짜 코딩한 건 뭐가 있나? 버그 수정. 연결 부분. 명령어 정제. 검수. 어? 이거. 이거 PM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이거 GPT 시키면 되지 않아요?' 입버릇이 생겼다. 팀 회의. 기획자가 신기능 설명. "이 부분 로직이..." 내가 끼어든다. "그거 재귀로 하면 복잡해질 것 같은데요." 그 다음은. "근데 사실 이건 GPT한테 시키면 바로 나오는 거 아닌가?" 같은 팀 개발자들이 나를 본다. 침묵. 1초. 2초. "그래. 그런데 너는 왜 아직 여기 있어?" 누가 뭐라고 한 건 아니지만, 다들 생각은 했을 거다. 우리가 한 달에 뭐 했지? 기술 토론? 아니다. 프롬프트 다듬기. 깨진 코드 고치기. 문서 작성하기. 내가 한 달에 진짜 "개발"한 건 며칠? 일주일? 사흘? 정말 솔직하게 답하면, 이틀. 나머지는? 코파일럿과의 협상. 문서 작성. 회의. 피로회복. 5년 뒤엔 뭐가 남아 있을까? 코파일럿이 나한테서 배워야 할 게 뭐가 있을까? 내가 배워야 할 건? 그 기사를 읽고 난 후 Stack Overflow 트래픽 30% 감소. 이게 뭘 의미하냐면. 개발자 30명이 쓰던 사이트를. 이제 21명이 쓴다는 거다. 9명은? 어디 가? 아. ChatGPT 쓴다. 물어보고 바로 답 받는다. 스택 오버플로우로 가서 댓글 10개 읽을 필요 없다. 바로 나한테 맞는 답을 준다. 그리고 그 9명이 개발자들이 하던 일을. 뭐가 하게 되나? AI가. 기사 댓글 봤다. "이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개발이다." "낫지. 개발자는 점점 줄어들겠지." "학생들한테 프로그래밍 배우라고 얘기하기가 쑥스럽다." "5년 뒤 개발자 채용 공고 숫자가 절반 줄 것 같아." 내가 썬 댓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썼다. 그런데 내 생각과 똑같았다. 6200만원. 올해 내 연봉이다. 3년 뒤? 이 직책, 이 실력이면? 연봉이 올라갈까? 떨어질까? 아무도 모른다. 신문도 안 나온다. "개발자 연봉, 2027년 30% 하락 예상" 같은 기사는 없다. 그런데 누가 하락 안 할 거 같아? 뭐가?기획으로 간다 결정했다. 6개월 전. 정확하게는. 결정이 내려졌다. 나는 그냥 따라갔다. 기획. PM. Product Manager. 뭐 다 하나다. 코딩 안 하고 생각만 한다. 돈 안 주고 정신만 준다. 개발자들한테 욕 먹는다. 근데 가능하면 전사에서 제일 권력이 좋다. 그리고 내 생각엔, AI한테 대체되기 기획이 더 오래 걸릴 거 같다. 개발은 메커니즘이다. 규칙이 있다. 2+2는 언제나 4다. AI는 그걸 극혐 잘한다. 기획은? 사용자 심리. 비즈니스 감각. 트렌드 읽기. 팀 관리. 협상. 정치. 이건 쉽지 않다. AI도. AI에게 물어봐도 답이 뻔하다. 그리고 기획 경험이 있다. 회사에서 이미 6개월간 자발적으로 기획 문서를 썼다. 그것도 온전히. 리서치부터 와이어프레임까지. 대신 개발도 좀 설렁설렁했지만 뭐 상관없다. 결과가 좋았다. 기획자 욕 먹는 거 봤다. 개발팀에서 "저거 기획 개똥 같아" 이러면서. 근데 내가 개발팀 쪽인데, 이건 기획이 잘못한 게 아니라 개발팀이 회의 안 들은 거였다. 또 기획자 보니까 좀 편했다. 9시에 와도 괜찮고. 라이브 이슈 있어도 상관없고. 밤샐 일도 별로 없고. 연봉은 좀 깎인다. 초기엔. 기획 경력 0년. 나이 32. 새로 시작. 그럼 신입 기획으로 가나? 아니면 개발 배경을 살려서 테크놀로지 쪽 PM으로 가나? 다 서류 떨어진다. "기획 경력 3년 이상 선호." 3년. 나는 0년이다. 그래서 생각한 거.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기획팀으로 이직하자. 내부 이직. 급여 같고 위험이 최소화된다. 제안했다. "나 기획팀으로 옮기고 싶어요." "왜?" "개발보다 기획이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개발자 배경이 있으니까 데브옵스나 백엔드 리드 어때?" "아니고 기획이요." 침묵. "좀 생각해 볼게." 1주. 2주. 회신 없다. 아. 이게 답인가? 이 회사에선 안 되는 건가? 친구들은 뭐라고 할까 아내한테 말했다. "나 기획으로 전환할까 생각해." "왜?" 다 설명했다. 30% 트래픽 감소. 주니어가 하루에 끝낸 일. 코파일럿. 5년 뒤의 미래. 아내 말. "하고 싶은 거 해. 근데 연봉은?" "초기엔 깎여." "얼마나?" "아마... 4800? 5000?" "오우. 1000 이상이네." "그래." "근데 기획이 맞나?" "모르겠지만, 개발보다는." "그래. 좋아. 해봐." 편한 사람이다. 아내. 근데 그게 불안했다. 너무 쉽게 허락해 줬다. 좀 더 조심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마케터인 아내. 아마 생각은 같은 거 같다. 개발이 위험하다는 거. 부모님한테는 말 안 했다. 아직. "아버지, 나 회사에서 개발 안 하고 기획 할 거예요." "뭐라고?" 다 설명해야 하는데. AI. Stack Overflow. 미래 불확실성. 이런 거 부모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개발자가 좋은 거 아냐? 월급도 많고." "네 아버지 말이 맞아. 요새 개발자 연봉 좋은데 왜 바꿔?" 그냥 말 안 할 거 같다. 개발자 친구들한테는 어떻게 할까? "야 뭐 해? 개발 계속하지." "기획? 왜?" "코딩은 AI가 잘하지 않아?" "뭐야 그게. AI도 한계 있지. 원자 단위로 튜닝해야 하고..." "근데 언제까지 튜닝할 건데?" 침묵. 대신 PM 친구한테 물어봤다. 마케팅 회사에서 PM 하는 친구. "요즘 개발자 출신 PM 많아?" "많지. 좋아 사실. 개발 이해하니까." "기획 경력 없어도 괜찮나?" "학습 곡선은 가파르겠지만. 넌 개발자니까 충분히 해낼 거야." "연봉은?" "초기엔 내려가. 근데 2년 뒤엔 개발자보다 높다?" 2년. 2년을 버틸 수 있을까? 기획이 AI한테 대체 안 될까? 가끔 생각한다. 기획도 결국 데이터 + 논리인 거 아닌가? "여성 사용자, 25~35세, 월 구매력 300만원 이상. 이들이 원하는 기능은?" 이건 AI한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닌가? "기술 스택: Next.js, Python, Postgres. 개발 인력 3명. 2개월 내 MVP 출시 가능한 기능셋은?" 이것도. "우리 앱 DAU 5만. MAU 20만. 이탈률 35%. 개선할 기획안 5개." 이것도! 생각할수록 두렵다. 기획도 AI가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기획자는? 그냥 AI 답변을 검수하는 사람? 그럼 내가 지금 개발 검수하는 거와 뭐가 다르지? ChatGPT 검수 → Copilot 검수? 조금만 다른 거네. 근데 기획은 AI한테 생각을 전달하기가 개발보다 훨씬 복잡하다. 개발은 논리다. "배열을 정렬해. 조건은 이거야." 기획은? "우리 사용자가 행복하려면 뭐가 필요해? 근데 우리 회사는 이 정도만 투자할 수 있어. 그럼 뭐할래?" 이건 좀 더 추상적이다. 물론 AI가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개발이 AI에 의해 30% 트래픽이 줄어드는데, 기획은 언제 그럴까? 3년? 5년? 10년? 모르겠다. 그냥 좀 더 나중일 거 같다. 그리고 그 "나중"이. 내 커리어에겐 소중한 시간이다. 오늘의 결정 내일은 회사 기획팀에 메일을 보낼 거다. "기획팀 이직에 관심이 있습니다." 아마 안 될 거 같다. 그럼 외부 이직을 준비할 거다. 연봉 좀 깎이면 어때. 지금 6200만원으로 5년 뒤 뭐가 되는 것보다. 5000만원으로 5년 뒤 뭐가 되는 게 낫다. 정리하자면. AI가 코딩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건 사실이다. 나도 느껴본다. 하루하루. Stack Overflow 트래픽 30% 감소는. 그 사실의 증거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간다. 다른 곳으로. 기획. 여기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지만. 지금 여기보다는. 좀 더 오래 버틸 거 같다. 그리고 그게 답이다. 충분하진 않지만. 오늘 정도면 충분하다.내일 이직 제안서를 보낼 예정이다. 떨어질 거 같지만.
- 02 Dec, 2025
주니어가 하루 만에 끝낸 걸 내가 3일 걸렸던 날
주니어가 하루 만에 끝낸 걸 내가 3일 걸렸던 날 평상일처럼 시작된 월요일 오전 10시. 난 기획팀에서 넘어온 새로운 기능 명세서를 들고 개발팀 자리로 돌아왔다. 결제 시스템 개선 작업이었다. 난도가 있지만 충분히 내 경험 범위 안이라고 생각했다. 6년을 개발자로 일했으니까. 백엔드 팀장인 나는 당연히 이 일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거라고 예상했다. "한 번 봐 줄래?" 신입 개발자 김준영이 내 자리에 가져온 문서를 본 건 금요일 오후 3시쯤이었다. 나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을 거의 온종일 이 작업에 매달려 있었다. AWS 아키텍처 설계, 데이터베이스 스키마 변경, API 엔드포인트 설계, 예외 처리까지. 내가 만족할 만한 구조가 나올 때까지 계속 수정했다. 중간중간 코드 리뷰도 받았고, 혹시 놓친 부분이 있을까 봐 선임들한테도 물어봤다. 일이라는 게 이런 거다. 신중함과 경험이 정말 중요한 거다. 그런데 그 신입이 건넨 문서를 보고 내 얼굴이 굳었다. 명세서를 정확히 파악한 설계, 깔끔한 데이터 모델링, 예외 처리까지 전부 들어가 있었다. 내가 4일 동안 고민해서 만든 것과 거의 똑같았다. 아니, 어쩌면 더 체계적이었다. 그것도 겨우 하루 만에. "이거 어떻게 한 건데?" 내 목소리가 좀 딱딱했을 거다. "아, 저 GPT한테 명세서 던져 주고 아키텍처 설계해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틀린 부분들만 수정했거든요. 제 사실 생각은 API 응답 구조 부분인데, 그건 당신이 더 잘 아실 것 같아서..." 그 말을 끝끝내지 못했다. 내가 끊어 버렸거든. "알겠어."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4일 대 1일의 벽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내가 4일이 걸린 일을 저 신입이 하루에 했다. 그 차이가 뭘까. 경험? 능력? 아니면 정보 접근? 6년 전, 내가 신입일 때는 이런 작업을 할 때 선임에게 물어보고, 책도 찾아 보고, 스택오버플로우도 뒤지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배웠다. 왜 이렇게 설계해야 하는지, 어떤 함정이 있는지, 언제 어떤 패턴을 쓰는지. 나는 그 모든 경험을 쌓아서 지금의 나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봉도 더 받고, 더 중요한 일을 맡기고, 후배들이 내게 물어봤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되는 거지? 김준영이가 써 주는 프롬프트만 좋으면, 더 이상 나는 필요 없는 걸까.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이거였다. 그 신입은 공부를 덜 해도 된다는 거다. 내가 6년에 걸쳐 머릿속에 집어넣은 모든 지식, 패턴, 실수들로부터의 배움. 그 모든 게 이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으로 대체된다는 뜻인가. 실제로 김준영이는 왜 그 API 구조를 그렇게 설계했는지 정확히 모를 거다. 다만 GPT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만약에 조금 다른 요구사항이 생기면? 그때도 또 ChatGPT를 물어볼 거겠지. 시간이 가면서 자기 사고력은 점점 약해질 거고.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회사 입장에선 결과만 중요하니까. 그 깨달음이 정말 끔찍했다.경험의 가치는 이미 사라졌다 화요일 아침, 나는 스택오버플로우 트래픽 30% 감소 뉴스를 다시 읽었다. 6개월 전에도 본 뉴스인데, 그때는 남 얘기처럼 들었다. 이제는 달랐다. 개발자들이 스택오버플로우에 가서 고민을 공유하고 답을 찾는 대신, 이제 그냥 ChatGPT에게 묻는다. 스택오버플로우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 가고 있는 거다. 내가 신입일 때 그렇게 소중했던 커뮤니티가 말이다. 그 이유가 뭘까. 단순히 속도가 빠르기 때문일까. 아니다. 이건 패러다임의 변화다. 개발이라는 게 이제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서 "AI한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더 위험한 건 이거다. 너무 많은 개발자가 AI한테 설명을 잘 하려니까, 정작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는 잊어 버린다는 것. 나도 그랬다. 요즘 코딩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이거 GPT한테 시키면 되는데 왜 내가 하지?"였다. 그 생각이 점점 자동화되면서 나는 더 이상 진정한 의미의 '개발'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냥 AI가 만든 코드를 검수하는 역할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내 생각은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하지?" 이 질문이 내 전 인생을 뒤흔들어 버렸다. 기획이라는 도피처 그 질문을 품고 일주일을 더 지냈을 때, 나는 기획팀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획자들은 뭘 하나. AI가 뭘 못 하는가. 당연히 전략이다. 방향성이다. 의사결정이다. 우리 서비스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AI는 그걸 할 수 없다. 할 수 있더라도, 결국 인간이 그 결과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한다. 기획자는 AI 시대에도 필요한 직군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선명해졌다. 요즘 들어서 기획 문서를 작성할 때가 제일 재밌었다. 마케팅 임원한테 설득해야 할 논리를 짜고, 사용자 시나리오를 그려 보고, 요구사항을 정의할 때.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코딩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코딩은 점점 더 '만드는 행위' 자체가 재미 없어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AI가 만들어 주니까. 하지만 기획은? 기획은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결국 인간의 의도를 담아야 하는 영역이다. 사실 그건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기획 책 10권을 읽기 시작했다. '프로덕트 오너십', '린 제품 관리', '인터스텔라 기획'.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카페에 앉아서 기획 인강을 들었다. 회사에서 하는 기획 업무를 유심히 관찰했다. 기획자들이 뭘 놓치고 있는지, 내 개발 배경으로는 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김 팀장, 그런데 이 기능 정말 개발 가능하기는 해요? 추정 시간이..." 회의 중에 기획자가 물었을 때, 나는 정확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발과 기획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느껴 버렸다. 아, 나는 개발자 + 기획자가 될 수 있겠다.하지만 현실은 물론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획 공고를 보면 죄다 "기획 경력 3년 이상"이다. 개발 경력 6년이 왜 되지 않지? 그건 "개발은 기획이 아니니까"라는 회사의 논리일 거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다. 기획과 개발은 완전히 다른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1차 탈락을 당했다. 그리고 2차, 3차 탈락을 당했다. 신입 기획 지원으로 가려는 시도도 있었다. 근데 신입 기획 공고는 정말 드물다. 대부분의 회사는 기획자는 경험자를 원한다. 개발자는 신입을 뽑으면서 말이다. 그게 참 아이러니다. 코딩 스킬은 배워도 되는데, 기획 마인드는 못 배운다고 생각하나 봐. 아니,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다. 개발자는 교육으로 키울 수 있지만 기획자는... 음. 아내가 옆에서 말했다. "그래도 해 봐. 네 개발 경험이 분명히 도움이 될 거야." 그 말은 맞지만, 그 말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이다. 기획 포지션을 노리는 개발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개발과 기획을 다 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 되기보다는 "어디 속할지 모르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6개월이 지났을 때, 나는 여전히 개발자였다. 매일 코딩했다. 하지만 마음은 기획에 가 있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집중력이 떨어졌고, 코드 리뷰 때도 조금씩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배들이 알아챘을 거다. 아, 이 팀장은 이제 개발에 흥미가 없다는 걸. 그리고 그게 또 다른 불안을 낳았다. 개발도 못 하고 기획도 못 하는 놈이 되는 거 아닐까. 진정한 의미의 "어정쩡한 개발자". 그럼 내가 정말 필요한 건 뭘까 김준영이의 하루가 내 4일을 이겨 낸 이후로, 내가 내린 수많은 결론들이 있다. 첫째, 개발자로서의 내 가치는 이미 정점을 지났다. 아니, 이미 하강중이다. AI가 빨라진 이상 경험으로는 못 이긴다는 걸 알았다. 둘째, 그렇다고 해서 기획이 만능은 아니다. 기획도 언젠가 AI한테 대체되겠지. 다만 그건 10년은 더 걸릴 거 같다. 셋째, 진짜 필요한 건 무엇인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건 순수한 기획만으로도, 순수한 개발만으로도 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기획으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개발자가 기획을 이해하는 개발자가 되는 것이다. 기획자가 개발자를 이해하는 기획자가 되는 것처럼. 근데 그게 가능할까. 내 회사에서는 지금까지 그런 사람을 본 적 없다. 대부분은 한 직군 안에서 깊게 파거나, 크로스펑셔널로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정착지를 못 찾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금요일 오후, 나는 퇴사를 생각했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신혼이고, 연봉도 6200만원인데 기획으로 가면 4000만원대가 될 게 분명했다. 그 차이를 어떻게 감수할까.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다시 생각해 본다. 5년 뒤, 정말로 주니어 개발자는 필요 없을까. 혹은 나는 필요 없을까. 개발과 기획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특별한 가치가 있을 순 없을까. 아무도 정확한 답을 줄 수 없다. 어쨌든 내일은 출근한다 월요일 오전 10시, 나는 또 기획팀에서 온 명세서를 들고 개발팀으로 돌아갔다. 이번엔 실시간 알림 시스템이었다. 복잡한 아키텍처가 필요할 거 같은 작업이다. 김준영이가 물었다. "팀장님, 이거 저도 한 번 해 볼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 봐. 그리고 어떻게 했는지 내한테 설명해 줘." "네, 알겠습니다." 그 신입의 어깨가 펴지는 게 보였다. 한 번 더 그럴 기회를 준 팀장에 대한 고마움일 거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기획팀 쪽을 봤다. 기획자들이 회의 중이었다. 작은 화면에 와이어프레임이 떴다. 그들이 뭘 논의하고 있는지 귀가 쏠렸다. 결국 이 조직이 만드는 모든 걸 시작하는 곳은 저거다. 코드가 아니라, 질문이다. 왜? 무엇을? 누구를 위해?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나는 또 뭘 해야 할까.내일은 퇴근 후 기획 인강을 한 강 더 들어야겠다.